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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깜쌤의 세상사는 이야기 : '난 젊어봤다' - 자유 배낭여행, 교육, 휘게 hygge, 믿음, 그리고 Cogito, Facio ergo s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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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야생화, 맛/맛을 찾아서

서민들의 구수한 체취를 느끼고 싶다면 건천식당으로 고고~~

by 깜쌤 2011. 5. 25.

 

퇴근후에 모이기로 했습니다. 목요아침모임에 참가하는 분가운데 좌장격인 교수님께서 한번씩 가시는 맛있는 집이 있다고 해서 이번 기회에 모두 모여서 한번 찾아가보기로 한 것입니다. 교수님 정도가 되면 살아온 과정이나 현재의 지위가 저같은 범부(凡夫)와는 격이 다르니 어디 좋은 곳에만 가시는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고 시장안의 좌판집을 좋아하신다는 것이어서 거기가 어디인지 더더욱 궁금했습니다.

 

    

우리가 모인 곳은 경주아래시장 공용주차장이었습니다. 공식명칭은 중앙시장이라고 봐야겠지요? 시간이 되자 모두들 정확하게 잘 찾아오셨습니다. 이젠 재래시장 안으로 들어가볼 차례입니다.

 

 

재래시장도 요즘은 깔끔하게 손질을 해서 예전처럼 그리 지저분하지도 않으며 터무니없이 바가지를 씌우는 짓도 잘 하지 않습니다. 초대형 마트처럼 기계적이거나 사무적인 것도 아니어서 재래시장에는 사람사는 맛과 구수한 정이 넘쳐흐르기에 은근히 기대가 되었습니다. 

 

 

시장건물 바깥에서 하는 난전만해도 요즘은 제법 깔끔해졌습니다. 좋은 현상입니다.

 

 

우리는 중앙시장 공용주차장에서 들어가는 문을 통해 안으로 향했습니다.

 

 

개인 가게에 매달린 간판 디자인이 똑같으니 훨씬 더 단정하고 깔끔하게 보입니다. 자기만 튀겠다고 온갖 지저분한 색으로 알록달록하게 꾸미는 것보다는 훨씬 낫습니다. 이런데서부터 변화된 모습을 찾을 수 있으니 정말 흐뭇합니다.

 

 

교수님이 앞장서서 저희를 안내해 가신 곳은 건천식당이었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제법나른 공간이 나타나는데 이 구역 속에는 작은 식당들이 오밀조밀하게 제법 들어차 있습니다. 저번에도 여기에 한번 와서 음식을 먹어본 곳이지만 그때는 다른 식당이었습니다. 자잘한 가게들이 너른 공간에 몇개 집중해서 몰려있는 모습이 싱가포르의 호커 센터와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싱가포르의 명물 가운데 호커 센터(Hawker Center)라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나라로 치자면 포장마차 정도의 음식점들을 열린 공간에다가 모으고 기본적인 위생시설을 갖추어준뒤 개방적인 분위기 속에서 음식 장사를할 수 있도록 해 둔 것이라고 보면 됩니다.

 

 

이 호커 센터가 싱가포르의 명물이 되었습니다. 싱가폴을 방문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씩은 꼭 들러야하는 명품 음식 코트가 된 것이죠. 우리나라의 재래시장안에 자리잡은 이런 가게들도 조금만 더 연구하고 지원을 해주고 신경쓰면 세계적인 명물이 될 것인데 왠지 2%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조금 빗나간 이야기입니다만 배낭여행을 다니면서 나는 오래오래 전부터 제주도의 진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제가 보기로는 제주도는 하와이나 싱가포르를 능가하는 기막힌 천연자원임에도 불구하고 정부당국에서 진주의 가치를 깨닫지 못하고 그냥 묵혀둔다는 생각을 참 많이 했습니다.

 

70년대 80년대 들어 신혼여행지로 제주도가 조금 각광을 받는다 싶어서 배가 불러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바가지 상혼이 극성을 부리고 불친절하며 물가까지 비싸지니 한동안 우리나라 사람들도 제주도 가기를 외면하고 동남아시아로 몰려간 적이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입구의 건천식당 좌판을 꿰어차고 앉았습니다. 겨울에는 좌판이 따뜻하도록 전기시설을 해두었지만 지금은 여름으로 들어서는 계절이니 그럴 필요가 없었습니다. 이런 곳은 겨울에 와야 제격입니다만 굳이 철을 가려서 뭐하겠습니까?

 

 

건천식당 아주머니는 사람이 수더분하면서도 점잖았습니다. 시장에서 잔뼈가 굵었다고 해서 막되게 행동하지도 않으니 구수한 분위기때문에라도 사람들이 오는 모양입니다. 저번에 왔을때는 다른 집에서 돼지국밥을 먹었습니다만 오늘은 이 장소를 추천하신 교수님께서 저희들에게 소곰탕과 수육을 대접하시겠다고 합니다. 소곰탕과 궁합이 맞는 기본 반찬을 차려두었습니다. 

 

 

수육을 시켰더니 소머리고기와 내장을 썰어서 육수에 넣고 끓여서는 따끈하게 데워주십니다. 음식을 보는 감각이 남다른 것 같습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이런 장소에서 먹는 것을 극히 꺼려하는 분도 있겠습니다만 근본태생이 고급스럽지 못한 깜쌤같은 사람에게는 아무런 제약조건이 못됩니다. 육수가 끓으면서 구수한 냄새가 사방으로 퍼져나갑니다.

 

 

 

소머리고기와 처녑이 나왔습니다. 처녑은 소나 양같은 동물의 위(밥통)를 말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천엽'이라고도 씁니다. 어떤 글에 보니 소의 첫번째 위를 ''이라 하고 두번째 위는 '벌집', 그리고 세번째 위를 '처녑(=천엽)', 네번째 위는 '막창' 혹은 '홍창'이라고 한다는군요. 어찌되었거나간에 처녑에게는 씹는 맛이 제법 있습니다. 

 

  

마늘 다진 것을 넣고 풋고추와 붉은고추를 잘게 썬 것과 파를 썰어낳은 간장에다가 찍어먹는 맛도 일품입니다.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실제로 그런 현상을 본적이 없으니 비유하기가 조금 그렇습니다만 하여튼 모두들 게눈 감추듯 빨리 맛있게 드십니다. 그래도 바탕이 모두 점잖은 분들이라 천하지 않아서 좋았습니다. 

 

 

나는 땡초를 된장에다가 푹 찍어서 베어물고 먹기 시작했습니다. 너무 매워서 눈물이 흐를 정도였지만 그렇게 해두고 먹어야 음식맛이 한결 더 좋아진다는 이상한 습관이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이런 서민적인 분위기를 좋아합니다. 최고급음식을 찾아다니며 우아하게 먹어보는 것은 내겐 너무 심한 돈낭비같아서 애시당초부터 그런 습관이나 취향을 아예 갖지도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된장도 집에서 직접 담근 것이어서 그런지 구수한 내음이 밑바탕에 가득했습니다. 이런 된장에 찍어먹어야 제맛이 나는듯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어떤 맛으로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습니다.  

 

 

대폿집, 선술집, 목로주점 같은 말들이 사라지고 있는 지금 이런 식당들이 주는 정감은 각별합니다. 우리네 서민들의 인생살이가 길표 신발을 신고 시장표 음식을 먹으며 사는 것이지 뭐 별거 있겠습니까? 그래도 요즘은 생활수준이 많이 올라서 나같은 사람도 한번씩은 널리 알려진 브랜드가 붙은 물건을 지니기도 하니 예전 같지는 않습니다만...... 

 

 

국물이 아주 뽀얗습니다. 소고기를 듬뿍 넣어주셔서 그런지 배불리 먹었습니다. 이런 것을 보고 물반 건더기 반이라고 해도 될것 같습니다. 돼지국밥과는 또다른 맛이 있습니다. 조금 싱겁다고 느끼면 소금으로 간을 맞추면 됩니다. 돼지국밥은 새우젓으로 간을 맞추지만 소고기곰탕은 아무래도 소금으로 간을 해야 제격이 될 것같습니다.

 

 

 

반찬으로는 양파절임이 나왔습니다. 그 한가지만 있는게 아니지요.

 

 

무말랭이무침, 부추무침, 곰삭은 김치, 멸치조림이 함께 나왔습니다.

 

 

다른 것도 더 주시겠다는 것을 사양했습니다. 같이 갔던 일행가운데 한분이 밖에 가서 철이 이른 수박을 구해오셨습니다. 얼마나 시원했던지 뒷풀이겸 디저트로는 그저그만이었습니다. 결국은 그만 과식하고 말았습니다.

 

 

중앙시장에는 여러개의 출입문이 있습니다. 만약 제7문으로 들어가면 입구 바로 왼쪽편에 우리가 찾아갔던 음식점이 나오게 됩니다.

 

 

 

큰지도보기를 클릭하시면 더 자세하게 위치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음식점 간판들이 보이네요. 음식점 소개하는 것은 정말이지 힘들고 어려운 일가운데 하나입니다. 사람마다 입맛이 다르기 때문이죠. 오늘 제가 말씀드린 곳은 대단한 맛을 지닌 그런 음식점이라기보다 서민들의 체취와 살아가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고 느껴볼 수 있는 곳이어서 한번 이야기를 꺼내본 것이라고 여기면 됩니다.

 

 

메뉴는 지극히 간단합니다. 사진 속에 메뉴가 나와있으니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고급스러움이나 깔끔함을 추구하는 분들께는 기호에 맞지 않을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히 글을 올려보는 것은 제 자신부터가 서민이기 때문입니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