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도에 왔다면 어디를 봐야할까? 보고싶은 곳도 많고 가고싶은 곳도 많다. 하지만 시간이 문제였다. 우리에게 주어진 한정된 시간을 유용하게 쓰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나는 고민했다.
외도를 갈까? 아니면 조선소 주변을 머뭇거려볼까?
그도저도 아니라면 배를 타고 해금강을 볼까?
고만하는 사이에 자동차는 거가대교를 빠져나와 거제시청으로 향하는 도로를 신나게 달리고 있었다.
요금소를 지나자마자 구제역 방역을 위한 장치가 보였다.
새로 닦은 도로가 한결 여유롭다. 무엇보다 산뜻해서 너무 좋았다.
더 망설일 것도 없었다. 거제도 포로수용소를 가보기로 마음먹었다. 우리는 시내에서 굴국밥으로 점심을 해결한 뒤 포로수용소로 향했다.
1950년 6월 25일에 시작했던 한국전쟁에서 잡힌 많은 포로들을 수용했던 곳이 거제도 포로수용소이다. 우리나라에서는 6,25전쟁이라고 부르지만 사실 마땅한 이름은 아니라고 본다. 외국언론들은 일반적으로 한국전쟁이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어떤 역사학자들은 '김일성의 난'으로 부르는게 어떠냐는 식으로 이야기 하기도 한다. 조선시대에 벌어진 많은 반란사건의 경우 반란주동자의 이름을 따서 '이괄의 난'이니 "홍경래의 난'이니 하는 식으로 부르기도 한다는데 착상을 한것 같다.
문제는 이 전쟁은 반란과는 차원을 달리한다는 점이다. 한반도 북부를 점령하고 있는 실체적인 존재가 무력도발을 일으킨 사건이므로 어떤 식으로 이름을 붙이는 것이 합당한가 하는데는 여러가지 의견이 분분하다. 이제는 이런 것에도 신경을 써서 어떤 식으로든지 이름을 붙여두어야 할 처지다.
그것은 그렇다치고 어쨌거나 우리는 지금 포로수용소가 있었던 장소가 보이는 곳에 들어와있다.
POW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이 말을 알고가면 거제도 포로수용소를 관람할때 이해하기가 편하다. 영어판 위키백과를 참고하면 그 정의는 아래와 같이 내리고 있다.
A prisoner of war (POW, PoW, PW, P/W, WP, PsW) or enemy prisoner of war (EPW) is a person, whether civilian or combatant, who is held in custody by an enemy power during or immediately after an armed conflict : 출처 - 영어판 위키백과
"민간간이건 군인이건 간에 무장충돌후 적군에 의해 붙들려 억류상태에 이른 자"를 말한다는 뜻이리라.
결국 POW라는 말이 전쟁포로를 뜻하는 말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사실 이런 역사적인 장소를 그간 너무 홀대해왔다는 느낌이 들었다. 조금 먹고 살만해지게되자 신경을 쓰게되는 모양이다.
역사유적지 개발전략은 싱가포르같은 나라들로부터 배울 필요가 있다. 그들이 자랑하는 센토사섬을 가보면 별것도 아닌 자그마한 사건을 관광자원화하여 실컷 우려먹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자기들의 역사를 선전하며 자랑하는 효과까지 거두고 있는 것이다.
거제도 포로수용소는 국제적인 장소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그런 가치를 너무도 등한시했다. 그뿐이랴? 거제도 포로수용소 폭동사건이나 반공포로 석방같은 일들은 전사(戰史)에 남을 사건이 아니던가?
우리는 입장권을 사서 입장했다.
인근지역을 깔끔하게 조성해서 볼만한 구경거리를 만들었다.
입구에는 전쟁을 일으킨 전쟁범죄자와 관련인물들의 모형을 전시해두었다. 제일 앞에 서 있는 인물이 김일성이다.
머리가 벗겨진 제일 앞사람이 모택동이고 뒤는 팽덕회다. 중국 근대사를 주름잡은 인물들이라고 볼 수 있다.
반대쪽에는 유엔군측 관련인물들이 서있었다.
이쯤해서 위키백과에 나오는 거제도 포로수용소 시설에 관한 자료를 소개해드린다.
"1950년 11월 27일 유엔군에 의해 거제시 옛 신현읍, 연초면, 남부군 일대의 1,200헥타르 규모의 수용소가 설치되었고, 1951년 2월부터 포로수용소 업무가 시작되었다. 포로수용소는 60, 70, 80, 90 단위의 숫자가 붙은 구역으로 나뉘었고, 1개의 단위구역(enclose)에는 6,000명을 수용하였다.
각 구역의 하부 구조로 수용동(compound)이 있었고, 전체 수용소는 4개의 구역과 28개의 수용동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중앙 계곡에는 제6구역, 동부 계곡에는 제 7, 8, 9 구역이 설치되었다. 또한 이러한 시설과 규모를 자체 지원할 수 있는 비행장, 항구, 보급창, 발전선박, 병원, 도로, 탐조등을 설치하여 운영하였다."
"포로수용 [편집]
1951년 6월까지 북한 인민군 포로 15만과 중공군 포로 2만명 등 최대 17만 3천명의 포로를 수용하였고, 그 중에는 여자포로도 300명이 있었다. 그러나 강제징집 등의 이유로 송환을 거부하는 반공 포로와 송환을 원하는 친공포로 간에 유혈사태가 자주 발생하였고, 1952년 5월 7일에는 당시 수용소 소장이었던 도드 준장이 포로들에게 납치되었다가 석방되는 등 냉전시대 이념갈등의 축소판과 같은 양상을 띠고 있었다."
자료글 출처 : 위키백과
포로들을 관리하던 포로수용소 책임자가 포로들에게 포로로 잡히는 어처구니없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으니 지금 생각해도 어찌 그런 일이 다 생겼는가 싶기도 하다.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얽힌 이야기는 워낙 다양해서 옮기려면 끝도 없을 지경이다. 바로 위 사진을 자세히 살펴본 뒤 아래사진을 보기로하자.
<사진출처 : 구글>
중공군(=오늘날의 중화인민공화국 군대, 중국군)의 개입으로 국군과 유엔군은 후퇴작전을 펼치는데 이것이 너무나 유명한 1,4후퇴라는 사건이다. 북한을 탈출하여 남녘으로 내려오기를 원했던 사람들이 폭격으로 끊어진 대동강철교를 넘어오는 이 사진은 라이프(Life)지에도 실려서 국제적으로 유명해졌다. 이 사건을 모형으로 만들어둔 것을 찍어둔 사진이 저 위에 있다.
6,25전쟁을 모르는 지금 세대들에게는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얽힌 사건들은 꿈같은 이야기로 들릴지도 모르겠다.
이제 거제도는 너무도 많이 변했다.
거제는 울산광역시와 함께 대한민국 안에서도 평균소득이 가장 높은 지역에 들어간다. 전쟁의 고통을 딛고 일어선 기적같은 도시인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우리의 역사를 너무 홀대해왔다. 입시생들에게 과도한 부담을 준다는 명목으로 한국사를 학교에서 가르치지도 않는다는게 말이나 되는 이야기던가?
자기나라 역사조차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는 얼빠진 나라가 지구위에 과연 몇나라 정도 존재할까?
찬찬히 보려면 제법 시간이 걸릴 것이다.
한번은 가볼만한 곳이다.
거제도에 가는 분이라면 절대로 놓치지 말기를 당부드리고 싶다.
다시 한가지 자료만 더 소개해 드린다. 글 출처는 위키백과이다.
반공포로의 석방 [편집]
1953년 6월 18일 이승만 대통령의 반공 포로의 일방적인 석방으로 27,389명이 탈출하였고, 친공 포로의 소환과 등 존재의 이유가 없어져서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 조인으로 인해 폐쇄되었다.
현재는 잔존건물 일부만 남아서 이곳에 당시 포로들의 생활 상이나 모습, 의복, 무기 등을 전시해 놓고 있으며, 최근 기존의 시설을 확장하여 거제도 포로수용소 유적공원으로 탈바꿈하여 전쟁의 역사와 산 교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2]
거제도 포로수용소 유적은 1983년 12월 20일에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99호로 지정되었고, 야외 캠프와 일부 유적터만 남아 있던 포로수용소 유적지를 확장하여 1999년 유적관을 1차로 개관하였고, 2002년 11월 30일 유적공원을 준공하여 2차로 개관하였으며, 2005년 5월 27일에는 흥남철수작년 기념 조형물을 준공하여 거제도 포로수용소 유적공원으로 탈바꿈하였다.[3] - 자료글 출처 : 위키백과
포로수용소 관람을 끝낸 우리들은 다시 경주를 향해 달렸다. 비록 우리들의 삶이 제법 팍팍하기는해도 전쟁의 상처를 딛고 번영을 구가하는 시장의 활기찬 모습이 커다란 위안으로 다가왔다.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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