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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안 여기저기 돌아다니기/나라안 여기저기 in Korea

봉화에 닭실마을이 있다 1

by 깜쌤 2011. 3. 1.

 

 봉화! 부르고 나니까 참 그리운 이름이 되었습니다. 봉화라고 부르니까 여자분 이름같지만 그게 아니고 지명이름이죠. 경상북도 북부지방에 자리잡은 작은 읍입니다. 봉화군이라는 행정구역 자체는 크지만 실제 사는 사람은 3만5천명정도 된다니까 대도시의 큰 동 인구 정도가 살고 있는 곳입니다. 

 

 

나는 봉화에 가보기 위해 집을 나섰습니다. 집에서 경주역까지는 걸으면 한 십오분 정도 걸리니까 당연히 걸어갔습니다. 아침 8시 44분에 청량리로 올라가는 무궁화호 기차를 탈 생각이었던 것이죠.

 

 

요즘 기차는 약속한 장소에 정확하게 대어줍니다. 빈자리가 제법 많아서 조용하게 갈 수 있겠다 싶어 좋아했습니다만.....

 

 

뒷자리에 앉은 철없는 여학생들이 슬슬 수다를 떨기 시작합니다. 개념없는 아가씨들은 정말이지 보기가 너무 흉합니다. 외모에 신경쓰는 것만큼 내면의 아름다움도 가꾸어 나가면 좋으련만...... 

 

 

안동까지는 약 두시간 정도 걸립니다. 아름다운 금모래가 가득했던 낙동강 모래밭은 이제 다 꿈속의 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안동에서 내려 봉화로 가는 버스를 타겠습니다만 기차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니 영주까지 가기로 했습니다. 사실 처음부터 영주까지 가는 기차표를 샀었습니다. 안동에서 내려 봉화로 가는 버스를 타도 됩니다.

 

 

안동을 지나고 나면 옹천이라는 곳에 기차가 잠시 서게 되는데 이 동네에서는 제법 많은 인재가 납니다. 진주 강씨 집성촌이 있어서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역구내와 바깥을 가로지르는 경계선에는 솟대가 가득하게 솟아있었습니다.

 

 

통과하는데만 3분 정도가 지나는 터널을 지나고 나면 내성천이 보입니다. 봉화에서 흘러내려오는 물줄기입니다.

 

 

이 아름다운 모래밭이 곧 있으면 물에 잠길 것입니다. 공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영주댐 건설현장이 여기에서 제법 가깝습니다.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간이역이 되어버려서 기차도 그냥 통과하는 평은역을 지나자마자 댐공사현장이 잠시 나타났다가 순식간에 사라져버립니다. 저기 산그림자가 진하게 내려앉은 물이 감돌아나가는 곳에 댐이 만들어지고 있는 중입니다.

 

 

내성천 줄기가 지나고나면 이번에는 영주쪽에서 흘러내려오는 물줄기가 나타납니다. 물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흘러나가는데 사진 끝머리에 무섬마을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죠. 도로 끝머리에 산허리가 잘록한 그 부근에서 영주쪽에서 내려온 물과 봉화방면에서 내려온 물이 합쳐집니다.

 

  

나는 이 부근을 지날때마다 이 아름다운 모래밭이 언제까지 살아남아날까 싶어서 가슴이 조마조마해집니다. 지금까지 그런대로 제법 여러 곳을 다녀보았지만 이런 식으로 모래가 예쁘게 깔린 강은 해외에서도 잘 만나볼 수가 없었습니다.

 

 

드디어 영주역에 도착했습니다. 경주에서는 거의 3시간이나 걸린 셈이 되었습니다. 역을 빠져나온 나는 영주시내버스 터미널을 향해 걸었습니다.

 

 

영주역에서 걸었더니 한 20분 전후해서 도착하는 것 같더군요.

 

 

봉화로 가는 버스는 10분 간격으로 자주 있다고 합니다. 먼저가는 것을 타기 위해 기다렸더니 좌석버스가 걸리네요. 요금은 1800원이었습니다. 33번 버스였습니다.

 

 

영주에서 봉화는 제법 가깝습니다. 버스도 한 15분 정도면 도착합니다. 나는 일단 봉화역앞에서 내렸습니다.

 

 

오후 4시 반에 안동을 거쳐 경주와 부전으로 가는 기차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므로 미리 기차표를 구해두었습니다. 봉화에서 세시간 정도면 경주에 닿을 수 있습니다.

 

  

나는 역무원의 하락을 얻어 승강장에 나가보았습니다.

 

 

봉화에는 아주 오래전에 종조부께서 사셨습니다. 철도에 근무를 하셨기에 한두번 찾아와본 기억이 납니다. 초등학교 저학년때의 일로 생각되는데 특별히 생각나는 장면이 없지만 작은 기억의 조각들은 조금씩 남아있습니다. 

 

 

역구내 한곳에는 봉화를 대표하는 명물 축제들과 상징성이 강한 홍보물이 그려진 기차가 서있었습니다. 멋진 아이디어라고 생각합니다.

 

 

역건물 바로 옆에는 메타세콰이어 나무가 서 있었습니다.

 

 

철길 너머로 내성천 둑이 보였습니다.

 

 

나는 다시 역건물을 통과해서 도로쪽으로 나가봅니다.

 

 

응달에는 지난 겨울에 내린 눈이 조금 남아있었습니다.

 

 

역앞 광장에는 인적이 드뭅니다. 시골에 사람들이 없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봉화읍은 내성천을 사이에 두고 발달해있습니다. 나는 역부근 쉼터에서 해바라기를 하는 어른께 철도관사 건물의 위치를 여쭈어보았습니다. 이젠 모두 뜯겨나가서 남아있는 건물은 한채도 없다고 하면서 손가락으로 위치를 가리켜주셨습니다.

 

종조부께서는 철도관사에 살고 계셨더랬습니다. 이제는 철도관사같은 그런 건물을 만나기가 어렵습니다. 디지털 카메라가 진작에 나왔더라면 사진이라도 한번 찍어두었을 것을...... 언제 기회를 봐서 다른 곳에라도 남아있는 철도관사 건물을 찾아나서야겠습니다.

 

 

나는 닭실마을까지 걸어가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다음(DAUM) 지도로 검색을 해보았더니 그리 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봉화군청 앞을 지나칩니다. 봉화군의 명물로 춘양목이라는 소나무가 있습니다. 금강소나무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진 소나무의 대표적인 집산지가 춘양이라는 마을이었기에 한때는 춘양목이라고만 해도 다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봉화군청 앞에는 하늘로 쭉 뻗은 멋진 금강소나무가 심겨져 있었습니다. 

 

  

나는 시장으로 들어가서 민생고를 해결하기로 했습니다. 국밥집을 찾아가서 순대국밥을 시켰는데 맛은 그저그런 수준이었습니다.

 

 

음식점을 잘못 고른 것 같습니다. 함께 내어주는 새우젓의 선도도 떨어지고 순대는 두어개 정도만 들어있었습니다. 구제역 확산의 여파일 것이라고 애써 위안을 삼아봅니다.

 

 

밥을 먹고나도 시간이 조금 남았습니다. 기억하기 좋도록 오후 1시에 다시 출발했습니다. 이젠 내성천을 가로질러 놓여있는 다리를 지났습니다.

 

 

이젠 얼음이 제법 많이 녹았습니다. 강변 개발에 제법 신경을 쓴 흔적이 보입니다.

 

 

봉화를 대표하는 축제로는 은어축제가 있습니다. 원래 은어는 바다에서 자라 육지로 올라오는 녀석인데 요즘은 찾아보기 어려운 귀한 물고기가 되었습니다. 은어가 산다는 말은 물이 그만큼 깨끗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햇살이 물에 잠겨있었습니다. 봄이 멀지 않은 곳까지 다가온 것 같은 날이었습니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