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깜쌤의 세상사는 이야기 : '난 젊어봤다' - 자유 배낭여행, 교육, 휘게 hygge, 믿음, 그리고 Cogito, Facio ergo sum
  • 인생 - 그리 허무한게 아니었어요. 살만했어요
배낭여행기/10 중국-신강성:실크로드(完)

토욕구 1

by 깜쌤 2010. 12. 9.

어제 저녁 우리들은 새로운 행선지에 대해 의논을 해두었다. 투르판을 너무 마음에 들어한 우리들이 다음 행선지로 찍어둔 곳은 토욕구라는 골짜기였다. 납닥한 집들이 산을 배경으로 해서 다닥다닥 붙어있는 토욕구(吐峪溝)를 그린 그림 한장이 우리들의 호기심을 가득 불러 일으켰다.

 

 열심히 조사해본 결과 그림의 배경이 되는 곳이 토욕구였다. 위구르 사람들의 전통마을이라는 것이다. 외국인에게 개방된 것도 얼마전의 일이라니 가봐야겠다는  마음이 마구 솟아 올랐다. 개방된지 십여년밖에 안되었다는 사실이 더더욱 신선하게 다가왔다.

 

 

 아침 식사후에 차를 알아보아야했다. 방향은 대강 알고 있다. 어제 갔던 고창고성부근인데 더 멀다는 것이다. 어제 사용했던 차주인을 만나보았으면 했지만 그를 만날 수 없었기에 내가 직접 차를 구하러 갔다.

 

 투르판 버스터미널 구역을 벗어나서 야시장 부근에 갔더니 운전기사들이 소복하게 모여있었다. 볼펜과 메모지를 꺼내들고 필담(筆談)을 할 각오를 했다. 예상대로 그들은 영어를 할 줄 몰랐다. 그렇다면 다음에는 필담으로 나가야 한다.  

 

 토욕구를 가고 싶다고 했더니 모두들 자기 마음대로 가격을 불렀다. 어떤 사람은 500원, 어떤이는 300원을 부르기도 했다. 한사람이 200원을 불렀다. 나는 일단 제일 낮은 가격을 부르는 사람을 찍었다.

 

 왕복 차비에다가 두시간 동안 머무르는 조건이었는데 한결같이 200원 밑으로는 못가겠다는 것이다. 나는 호텔에 큰형님이 계시는데 그분에게 여쭈어봐야 한다는 핑계를 대고 마지막 가격을 부르라고 했다.

 

 그래도 200원이다. 나는 내 카드를 꺼내들었다. 180원! 그 가격에 가려면 가고 말려면 말라고 했더니 나와 교섭을 했던 위구르인 기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 부근에 모여서있던 수많은 사람들이 모두다 한마디씩 해댔다. 그 가격으로는 가면 안된다는 뜻이리라. 그 정도는 눈치로 때려잡아도 안다.

 

 

토욕구는 고창고성에서도 동쪽으로 다시 13km 정도 더 가야하는데 화염산 밑에 자리잡고 있단다. 우리는 어제처럼 차를 타고 토욕구로 향했다. 운전기사는 영어를 거의 할 줄 몰랐다. 그가 손짓발짓으로 하는 말에 의하면 거의 30년간을 우루무치에서 시내버스 운전을 했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자기 승용차를 한대 구해서 이젠 자가용 영업을 하며 산다고 했다.

 

 

 

그럼 바로 위에 올려둔 그림 지도를 눌러보자. 지도 왼쪽의 빨간점이 있는 곳이 투르판 시내다. 지도 가운데 부분의 빨간 줄은 화염산의 위치를 나타낸다. 오른쪽편 노란 화살표가 가리키는 곳이 토욕구다.

 

 

토욕구도 화염산의 산자락에 묻어있는 마을이다. 화염산 중간중간에는 산을 토막낸듯이 보이는 골짜기가 몇개 있다. 물이 흐르는 골짜기가 산을 가로질러 들어있으니 생선토막처럼 보이기도 한다. 투르판을 기준으로 해서 보았을때 두번째 토막의 골짜기라고 보면 되겠다.

 

 

마을 속으로 들어가지 않고 분위기만 살피려면 칠현사(七賢寺) 부근의 마당에 서서 훑어보면 된다. 우리 차의 운전기사도 처음에는 그런 식으로 우리를 유도했다. 그렇게 겉만보고 구경을 하려면 거기까지 간 보람이 없다.

 

 

언덕에 서서 아래를 한번 훑어보고 가버리면 얼마나 허무한가? 우리도 그런 식으로 겉핧기 구경을 하는 실수를 할뻔했다.

 

 

마을 부근은 극도로 황량하다. 다만 골짜기 아래쪽으로는 푸른 벌판이 조금 있어서 그나마 자연이 조금 살아있다는 느낌이 든다.

 

 

우리는 마을 위쪽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골짜기 건너편을 살펴보았다. 너른 마당에 원주민인 위구르 사람 몇몇이 보이길래 슬금슬금 다가가 보았다.

 

 

화염산쪽으로 둥근 지붕을 가진 작은 건물이 보였다. 무덤 아니면 사원인 것 같은데...... 

 

 

골짜기 속에는 아담한 마을이 하나 자리잡고 있었다. 흙으로 만든 납닥한 집들이 가득했다.

 

 

마을 중간에는 모스크가 하나 턱하니 솟아 올랐다.

 

 

회교도들이 전통방식대로 살아간다니 점점 더 호기심이 생겼다.

 

 

골짜기 안쪽으로 포도밭이 보였다. 더 안으로 들어가면 토욕구 천불동이 있다고 한다. 불교 유적지가 남아있다는 말이다.

 

 

저 앞에 계단이 보이는가? 거기가 위구르인들이 거룩하게 여기는 성소의 입구쯤 된다.

 

 

계단 옆에는 벽면에 걸개를 덧댄 응접실 비슷한 공간이 있었다. 하지만 바닥과 벽은 먼지투성이였다.

 

 

위구르 노인 한사람이 이 계단 앞에서 우리들의 출입을 막았다. 이방인은 못들어가게 하는 것 같았다.

 

 

붉은 흙벽돌집에 달린 노란색 문짝이 초라한 가운데 나름대로의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

 

 

뭐하는 집일까?

 

 

산비탈에는 그들이 거룩하게 여기는 성소가 자리잡았는데........  여기 이 지방에 최초로 회교를 전한 현자(賢者)들의 무덤이 있다는 사실은 나중에 알았다.

 

 

비록 우리들 눈에는 초라하게 보일지라도 현지인들이 거룩하게 여기는 장소라면 마땅히 존중해주어야 한다.

 

 

우리는 돌아서기로 했다. 원주민이 막는데 굳이 들어가볼 필요가 없는 법이다. 무리하게 나서면 사고나기 십상이다.

 

 

알고보니 여기는 회교도들에게 상당히 거룩한 장소여서 신지앙(= 新疆 신강)에 사는 순례자들이 제법 많이 찾아오는 곳이었다.

 

 

 

회교도들에게는 7대 성지(聖地)가운데 하나라는 말이 나돌고 있을 정도였다.

 

 

이 나무 부근에서 어떤 노인이 정식출입구는 여기가 아니고 따로 있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러니 그쪽으로 내려가란다. 우리는 진짜 출입구를 찾아서 마을로 들어가보기로 했다.

 

 

초라하지만 깔끔하게 정리해둔 이런 집들에게는 왜그런지 호감이 간다.

 

 

우리는 정식 입구를 찾아갔다. 승용차를 그늘에 세워두고 우리는 문표(門票)파는 곳을 찾았다.

 

 

벌써부터 사방이 뜨겁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입장료는 거금 30원이다. 비싸다. 가이드를 사용할 경우에는 팀당 100원이란다. 여행자를 봉으로 아는 모양이다.

 

 

이런 바가지 요금을 보면 정나미가 확 떨어진다. 아, 정말 지독한 인간들이다. 돈에 환장한 것 같은 사람들이 중국인들 아니던가? 중국에 산다는 오십여섯 종류의 인종 구별없이 중국인들은 모두 돈벌이에 혈안이 된 것 같았다.

 

 

어리

버리

 

 

 

 

'배낭여행기 > 10 중국-신강성:실크로드(完)' 카테고리의 다른 글

토욕구 3   (0) 2010.12.13
토욕구 2  (0) 2010.12.11
지하수로 2  (0) 2010.12.07
지하수로 1  (0) 2010.12.06
교하고성 2  (0) 2010.1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