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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10 중국-신강성:실크로드(完)

타쉬쿠르간으로 1

by 깜쌤 2010. 9. 17.

 

 얼마나 잤는지 모른다. 깊은 잠을 잘 수가 없으니 자주 깰 수밖에 없다 . 우리가 앉은 곳은 2명이 마주보게 되어 있다. 마주 보고 있는 상황에서 앞사람과의 간격이 좁으니 다리조차 마음대로 펼 수가 없었다. 거기다가 의자가 직각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니 잠을 자려고 해도 각이 나오지 않는다.

 

 눈을 붙이는 시간이 점점 짧아졌다. 에어컨이 너무 강력해서 추위를 느꼈기 때문이다. 의자가 딱딱해서 깊은 잠을 잘 수가 없는데다가 에어컨까지 강력하니 드디어 한기(寒氣)를 느꼈다. 나는 추위에  약하다. 한기가 들면 몸이 걷잡을 수없이 떨린다. 심장은 터질듯이 마귀 뛰면서 가빠오기 시작하고 호흡이 빨라진다. 그런 고통이 한 이십여분간 계속되면 사람이 늘어지고 만다. 그런 현상이 오기전에 옷을 껴입어야했다.

 

 조끼를 꺼내입고도 모자라 겨울용으로 가져온 기능성 보온셔츠를 하나 꺼내 덧입었다. 그제서야 몸이 진정되기 시작했다. 시계를 보니 새벽두시였다. 바깥 경치는 짐작이 되지 않는다. 반달은 져버린지 오래 전이다.  우리 기차는 극도로 황량한 타클라마칸 사막의 북쪽 언저리 어디쯤인가를 달리고 있을 것이다. 

 

 

 내 앞에 앉아있던 신혼부부는 아커쑤(阿克苏  아극소 阿克蘇)에서 내렸다. 새벽 4시경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고보니 자는 동안에 쿠처를 지나쳐버린 셈이다. 쿠처는 절대 놓칠 수 없는 역사적인 의미를 지닌 도시인데 쿠처의 그림자도 보지 못했으니 아주 중요한 것 하나를 놓쳐버린거나 마찬가지다. 전한시대 때부터 여기 아커쑤는 고묵국(故墨國 고모궈)으로 얄려져 왔다. 삼장법사도 여기를 통과한 사실이 있다. 

 

 중요한 기차역을 지나칠 때마다 승무원이 돌아다니며 큰소리로 역이름을 외쳐댔다. 내가 어렸을 때 심야에 기차가 역에 도착하면 역무원이 창밖에서 석유를 적신 솜횃불을 들고 기차역 이름을 외쳐대었던 장면이 생각났다. 석유방울이 뚝뚝 떨어지면서 파란 불꽃이 함께 떨어지던 모습들이 스쳐 지나갔다. 

 

  

 해가 뜨고 나서도 차창 밖으로는 같은 장면이 계속되었다. 기차를 탄지 벌써 하루가 지났는데도 황량한 풍경속을 냅다 달리기만 했다. 그러다가 아주 거대한 습지를 지나치기도 했다. 지도를 꺼내 살펴보니 천산산맥과 곤륜산맥에서 흘러나온 물들이 강이 되어 흘러 가다가 사막속으로 스며들어 버린다. 여기 강들은 바다로 향하는게 아니라 사막 한가운데를 향해 흐르는 것이다.

 

 사막을 향해 흐르던 물들이 한번씩 밖으로 솟아나오기도 하는 모양이다. 솟아나온 물들이 어떤 곳에서는 넓고 너른 습지를 이루기도 하고 어떤 곳에서는 완만한 경사의 강이 되어 사막을 적시기도 하다가 다시 사라져 버린다.

 

 모래가 바람에 날려 철길을 덮는 것을 막기 위해서 철길 주위로는 작은 칸들을 만들고 거기에 풀을 심기도 하고 짚같은 것으로 덮기도 했지만 역부족인것 같다. 자연의 엄청난 힘을 인간이 어떻게 이길 수 있으랴?

 

 

 지겹게 달리던 기차가 마침내 종착역인 카슈가르에 도착했다. 한족 중국인들이 하는 말로는 카스이고 한자로 기록하고 우리 식으로 읽으면 객십(喀什)이다. 여기는 우루무치와 함께 위구르인들의 핵심거주도시이다. 우루무치는 이미 한족이 다수를 차지해서 위구르 사람들의 도시라는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이다.

 

   

 기차에서 내린 우리는 집찰구를 향해 발을 뗐다. 중국에서는 집찰구로 나가는 것 조차 전쟁이다. 워낙 많은 사람들이 몰리므로 일행을 잃어버리는 것은 식은 죽 먹기다. 다행히 우리는 어른들이니 서로서로 눈치껏 일행을 확인해나가며 걸음을 옮긴다.

 

 

 카스는 중국 최서쪽의 기차역 가운데 하나다. 여기에 기차역이 만들어진 것은 최근의 일이다. 중국정부에서 서부 대개발 사업을 역동적으로 펼치기 위해서 철도를 만든 것이겠지만 이 철도 하나때문에 해마다 엄청난 수의 한족이 위구르인들의 거주지역으로 이주하기가 아주 수월해졌다. 

 

 이제  이삼십여년만 지나면 신강이나 티벳은 완전히 한족의 땅이 되고 말 것이다. 말로는 소수민족 보호가 어쩌고저쩌고 떠들어대지만 입에 발린 소리에 지나지 않음을 삼척동자라도 다 안다. 결론적으로 이야기해서 티베트와 신강의 중국화는 철도를 통한 한족의 대량이주로 급속도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으며 이는 결국 티베트와 신강의 독립을 영원히 불가능한 쪽으로 만들어갈 것이라는 사실이다.

 

  

 중앙아시아로 영향력과 세력을 넓히기 원하는 터키 정부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 위구르인들과 일부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터키계통의 민족들이므로 터키 정부에서는 이 지역에서의 영향력 확대를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안다.

 

 터키정부의 노력은 이슬람 세력의 확대와 연관성이 있다. 중앙아시아에 인접한 지역에서 한족이 다수화되면 이슬람 세력이 약해질 가능성이 높지만, 반대로 이주한 한족의 이슬람화가 이루어지면 중국의 골칫거리로 등장할 가능성도 있다.  

 

 

위구르족도 만주족과 같은 운명을 밟게 될지 아니면 장족처럼 간신히 명맥을 이어가며 남을 것인지 현재로서는 잘 짐작이 되지 않지만 어쨌거나 간에 독립가능성은 그만큼 사라져 가는게 틀림없다.

 

 나는 돌아갈 기차표 구입을 위해 매표청에 들어가 보았다. 중국 서쪽 끝머리의 아주 외진곳에 자리잡은 카스라고 해서 기차표 구하기가 수월한 것도 아니다. 기차표를 파는 곳의 분위기는 중원이나 여기나 다 비슷했다.

 

 나는 이쯤에서 고민에 빠졌다. 타쉬쿠르간을 가면 도로사정상 외길이니 갔던 길을  다시 되돌아나와야 한다. 카스로 다시 나오면 그 다음의 이동이 문제가 된다. 기차를 타고 다시 우루무치로 돌아가느냐, 아니면 타클라마칸 사막의 남쪽을 끼고 가다가 사막을 가로질러 우루무치로 돌아가느냐 하는 것에 대한 결단이 필요했다.  

 

 

 나는 사막 남쪽을 돌아가는 쪽으로 마음을 굳혔다. 그러나 기차표를 구할 수 있다면 지금 온 방법처럼 기차를 타고 돌아갈 수도 있겠다. 카스역은 시내 중심가로부터 약 십여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으므로 일단 시내로 들어가야만 했다. 역광장은 아주 컸다. 광장 한모퉁이에는 과일가게들이 즐비하게 자리잡았다.

 

 

 일단 시내로 들어간 다음에는 장거리 버스터미널로 가서 타슈쿠르간 가는 방법을 모색해야했다. 우리가 여기까지 온 이유는 카스를 방문하고 난 뒤 시간을 내어 타쉬쿠르간까지 가보기 위해서였다.

 

 시간이 더 있다면 여기에서 타쉬쿠르간을 거쳐 파키스탄으로 들어간 뒤 이란까지 가서 국경을 넘어 터키로 들어갈 수 있다. 한때는 그런 여행 방법을 생각해보기도 했지만 파키스탄의 치안상태가 염려되어 시도해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지금은 그럴만한 시간적인 여유조차도 없으니 계획은 계획으로 끝내야 할 처지였다.

 

 

 우리는 배낭을 매고 과일가게를 지나 시내버스를 타기 위해 발걸음을 뗐다. 그런데 여기에서 시내버스를 타려는 순간 나는 다시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되는데.....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