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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10 인도네시아-적도의 천국:자바,발리,롬복(完

버스 안에서 밤을 새우고....

by 깜쌤 2010. 2. 10.

 

 어스름이 내려앉고 있었다. 발리해협 저 너머 우뚝 솟은 발리섬쪽이 갑자기 조금 더 밝아지는 듯했다. 옅기는 하지만 저녁노을 때문이었을까?  

 

 

 나는 사진을 찍기 위해 부두로 향하는 통로위로 올라섰다.

 

 

 저녁때가 되어서 그런지 부두에는 서서히 적막감이 돌기 시작했다. 우리는 야간버스를 타고 조그자카르타로 향해 달려갈 것이다. 조그자카르타는 다른 말로 요그야카르타라고 발음하기도 한다. 인도네시아의 수도인 자카르타가 아니다. 자카르타와 조그자카르타는 엄연히 다른 도시이다. 두 도시의 위치를 정확히 비교해서 알아보려면 바로 아래의 지도를 눌러보시기 바란다. 

 

 

 

이 지도를 클릭하면 아주 크게 뜰 것이다. 우리는 지금 오른쪽 아랫부분의 붉은 점으로 표시해둔 곳에 있는 것이다. 오늘밤 버스를 타고 지도 한가운데 있는  붉은 색 점, 그러니까 조그자카르타까지 이동할 생각인 것이다. 자카르타의 위치는 지도 제일 왼쪽 끝머리에 있다. 붉은 점으로 표시를 해두었으니 확인해보시기 바란다.

 

 

 조그자카르타는 줄여서 족자 혹은 욕야라고도 하는 모양이다. 인도네시아의 경주같은 도시라고 여기면 된다. 그렇게 표현해도 크게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그 곳에는 세계문화유산만 해도 두군데가 자리잡고 있다. 앞으로 천천히 소개를 하겠지만 결코 만만한 도시가 아닌 것이다.

 

 

 우리는 안내소에 가서 배낭을 찾아왔다. 오후 5시반이 조금 넘어서 안내소 직원의 친구라는 사나이가 와서 우리를 데려갔다.

 

 

 그가 우리를 데려간 곳은 부두 맞은 편 도로가에 자리잡은 그의 작은 여행사였던 것이다. 이제 대강 이해가 된다. 이 여행사 사장은 안내소 직원과 공생관계에 있었던 것이다.

 

 

 바닷물이 반짝거렸다. 저녁 햇살을 받아.....

 

 

 우리는 사장 가게에 앉아서 곧 온다는 버스를 기다렸다.

 

 

 안내소의 직원은 분명히 바뉴왕이에서 버스가 출발한다고 말했었다. 나는 우리에게 다가올 빅 버스에 데해 큰 기대감을 가지고 기다렸다.

 

 

 그러나 버스는 오지 않았다. 6시반이 넘어서 사방에 어둠이 진하게 내릴 때에도 버스는 오지 않았던 것이다.

 

 

 정확한 시간을 알려주었더라면 우리가 저녁이라도 먹을 수 있을텐데......

 

 

 그들은 우리의 이런 사정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었다. 남을 배려하는 마음은 아무나 가지는게 아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버스는 바뉴왕이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발리섬의 우붕 장거리 터미널에서 출발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우린 이 사람들에게 농락당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실제로 버스는 페리에서 내려왔던 것이다. 그것도 7시가 넘어서 말이다.

 

어쨌거나 우리가 짐칸에다가 배낭을 넣고 타고보니 우리자리에는 이미 다른 사람들이 앉아있었다. 그렇다면 좌석번호는 무엇때문에 표시하는가 말이다. 그냥 사람이 다 차는지 여부를 알아보기 위한 수단이었던가 보다.

 

나는 은근히 불쾌해졌다. 장거리 대형 버스라면 기본 질서는 지켜져야 하는 것이지만 그런 것은 없었다. 그냥 빈자리에 앉으란다. 장거리를 달리는 버스이므로 속에 화장실이 있다. 대형버스지만 의자는 불편했고 에어컨은 강력했다. 그래도  태국이나 말레이지아의 버스처럼 지나치게 강하지 않아서 천만다행이었다.  

 

 

 이젠 무조건 자야했다. 잠을 자 두어야만 내일 일정이 편하다. 나는 곧 잠이 들었다. 한참을 달리다가 버스는 섰고 대형휴게소 앞에 버스는 정차했다. 사람들은 차장으로부터 카드 비슷한 것을 받아서는 어둠속으로 하나씩 사라져갔다.

 

알도보니 그게 바로 저녁 식사표란다. 나보고도 내려서 식사를 하라고 권해왔지만 늦게 밥을 많이 먹어두면 편안한 잠을 자기가 어려울 것 같아 한끼를 건너뛰기로 했다.

 

 

 한 삼십여분 쉬었던가 보다. 다시 버스는 출발했고 나는 몸을 이리저리 꼬아가며 의자위에서 밤을 세웠다.

 

 

 눈을 뜨고보니 아침 다섯시다. 버스는 시골길을 달리고 있었다. 평화로운 농촌 풍경이다. 아직 솔로(Solo)까지도 오지 못하고 있었다. 솔로는 조그자카르타 부근에 있는 유명한 고적도시이다.

 

 

 왼쪽으로는 화산이 보였다. 무슨 화산이 이렇게도 많은지 모른다. 나는 창밖의 경치를 살핀다. 버스는 이런저런 정류소에 들렀고 그런 뒤에는 달리기를 계속했다.

 

 

 

위 지도를 눌러보셨는가? 아래쪽에 붉은 선을 그어둔 도시가 조그자카르타이다. 중간의 붉은 선 밑에는 그 유명한 보로부두르가 자리잡고 있다. 빨간 점이 찍힌 산의 앞 화산(연기가 보이는 산)이 므라삐 화산이고.....

 

 

 

 우리 버스를 모는 기사는 할아버지였다. 그 어른에게는 여유가 있어서 좋았다. 크게 속도를 올려 달리지 않았으니 그게 오히려 더 우리에게는 편안함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바른대로 말하자면 버스가 속도를 올릴 형편이 안되었다. 도로는 욍복 2차선이었고 주행방향과 반대방향 도로위에는 모두 오토바이로 가득차 있었기 때문이다.

 

 

 버스 앞뒤로 오토바이가 빽빽하게 붙었다.

 

 

 농촌 경치는 평화롭기 그지 없었지만 도로위에는 교통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마침내 기차는 기찻길을 건넜다. 아무리 봐도 기찻길은 협궤같다.  대신 복선(複線)이다.

 

 

 버스가 달리는 오른쪽으로 프람바난(쁘람빠난) 유적지가 비쳤다. 그렇다면 다 왔다는 말이되기도 한다. 한 16키로미터만 더 가면 될 것이다.

 

 

 얼마나 오랫만에 보는 신호기이던가?  이제는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사라진 신호기이건만 여기서는 아직도 멋진 기능을 발휘하고 있는 중이다.

 

 

 버스는 고가도로로 접어들었다. 그런데 말이다, 무슨 낙서가 도로 시설물에 저렇게도 많단 말인가?

 

 

 앞차는 검은 매연을 뭐처럼 뿜어대며 맹렬한 속도로 앞으로 나가고 있엇다. 가슴이 답답해졌다.

 

 

깜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