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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살이/좋은 세상 만들기 To Make Better

안중근이 운다

by 깜쌤 2009. 10. 22.

 

 이토 히로부미 정도는 다 알 것이다. 그 사람이 누구인지 도저히 모르겠다고 나오면 너무 곤란하다. 굳이 어떤 일을 한 누구라고 설명하지 않겠다. 요시다 쇼인(吉田松陰, 1830-59)이나 기토 다카요시(木戶孝允, 1833-72), 다카스기 신사쿠(高杉晉作, 1839-67) 같은 자들까지 안다면 당신은 대단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적어도 일본에서 그들은 영웅이다. 일본인들이 보기에는 너무도 자랑스런 메이지(明治)시대의 영웅들이기 때문이다. 요시다 쇼인은 조선멸시론을 주창한 자이고 기토 다카요시는 정한론(征韓論)의 선구자쯤 되는 자이다. 그런 이론을 실제 행동으로 옮긴 자가 안중근의사에게 사살당한 이토 히로부미다. 

 

이런 자들의 고향이 東萩이다. '동추'라고 읽으면 된다. 는 싸리나무 정도를 의미하는 말이라고 보면 된다. 화투를 칠 줄 아시는가? 붉고 검은 점으로 이루어진 싸리, 속칭 칠싸리를 떠 올리면 쉬울 것이다. 일본인들은 히가시하기( 혹은 히가시항이)정도로 소리를 내는 모양이다. 그들의 고향 히가시하기는 부산에서도 가깝다.

 

나는 거기를 한번 가보고 싶었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라는 말을 떠올리는 의미도 있거니와 그런 인간들을 길러낸 마을에 대한 정보를 수집해서 우리 아이들에게 보여주며 가르칠 자료를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나는 시모노세키역에 가서 히가시하기로 가는 기차편을 알아보았다. 지난 5월에....

 

 

 기차역 속에 자리잡은 관광안내센터에서 가는 방법에 대한 문의를 했더니 제일 위 사진에서 보는 것과 같은 출력물을 내어주며 상세한 설명을 해주었다. 오늘 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제일 위의 사진에 관한 내용이다.

 

그날 시모노세키에서 히가시하기로 가는 방법은 JR노선을 이용할 경우 5가지 경우가 있었던 모양이다. 소요시간은 2시간 50분인데 오후 2시 58분에 출발할 경우 오후 5시 48분에 도착한다는 것이다. 중간에 두번 갈아타야 한다며 갈아타는 시각과 기차역까지 표시해가며 자세하게 알려주는 것이다.

 

내가 놀란 것은 그런 사실이 아니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에 관한 자료인 것이다. 기차를 타고 갈 경우 내가 배출하는 이산화탄소의 양은 2.0Kg이다. 자동차를 탄다면 18.2Kg이라는 것이다. 동시에 각 구간별로 내가 배출하는 이산화탄소의 양이 정확하게 나와있는게 아닌가? 

 

 나는 이 종이를 받아들고 충격을 받았다. 우리가 그렇게 멸시하고 미워하며 사갈시(蛇蝎視) 여기는 일본인들의 저력이 이 종이 한장에 여실히 드러나 있었다. 그들은 벌써부터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둘러싼 무역전쟁을 대비하며 생활속에서 실천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구환경오염이 어쩌고 자연보호와 환경보존이 저쩌니 해가며 그렇게 똑똑한 듯이 입에 거품을 물고 떠들어대는 일부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들을 살펴보면 기가 차는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말로만 외쳐대면 뭐 하는가? 나는 엄청난 생활의 불편을 감수해가며 지금까지 자동차를 구입하지 않고 살아왔다. 내가 자동차에 깊은 원한을 가진 사람은 아니란 것을 미리 밝혀둔다.

 

 

 

먼거리를 다녀올 일이 생길 경우 어지간하면 대중교통수단인 기차나 버스를 타고 다녔다. 시내를 돌아다녀야 할 경우에는 당연히 자전거를 탔다. 자전거를 탄지가 이미 30년이 넘었고 자동차를 구입하지 않아서 겪는 불편함도 많이 겼었다. 자동차 산업으로 우리나라가 벌어들이는 외화도 엄청나고 관련산업에 종사하는 분들이 엄청 많다는 것 정도는 알기에 분에 넘치는 자동차를 구입해서 타는 사람을 향해 손가락질 하지도 않았다.

 

다만 그저 큰 차 타기를 좋아하는 세태와 대중교통수단으로서 가장 이상적이고 상당한 매력적인 메리트(Merit)를 지닌 기차에 지속적인 투자할 줄 몰랐던 정부시책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1909년 10월 26일,안중근의사가 만주 하얼빈에서 이토를 처단했으니 올해가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올해 10월은 특별한 의미가 있기에 지난 5월에 일본에 다니러 갔을때 이토의 고향을 가보고 싶었던 것이다. 

 

서기 2000년 여름, 기차를 타고 하얼빈에 가서 하차할 때 플랫홈을 밟으며 안중근의사의 의거현장을 찾아보았지만 정확하게 찾아 확인하지 못하고 돌아왔다. 그게 너무 아쉬워 하얼빈 교외에 자리잡은 731부대 기념관까지는 기어이 찾아가서 일본 제국주의 세력의 만행을 확인하고 왔었다. 

 

그런데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상세하게 기록한 종이 한장에 왜 이렇게 마음이 아파오는지 모르겠다. 오늘 우리가 처한 현실을 생각해보며 안중근 의사의 영정 앞에 고개를 숙인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