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차장에 자전거를 세워두고 유적지를 구경하면 됩니다. 나는 기념관 옆 치산서원부터 보기로 했습니다.
치산서원은 조선시대 영조때에 세워져 박제상(朴提上)과 부인을 모시고 제를 지낸 곳이었다고 합니다.
입구의 홍살문과 멀리 보이는 치술령이 충신의 높은 뜻을 품고 있는듯 합니다.
그분의 생몰연대에 관해서는 정학하게 단정하기 어렵지만 5세기 초반에 활약을 한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삼국유사에는 성이 김씨로 기록되어 있다고도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박제상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내물왕의 큰아들이 되는 눌지왕이 왕위에 오른 후 눌지왕이 고구려와 왜(오늘날의 일본)에 인질로 보낸 동생들을 보고 싶어하자 그 구출과 귀환임무를 맡아 고구려에 가서는 복호를, 왜에 가서는 미사흔을 구출해 신라로 돌려보낸 인물입니다.
홍살문을 통과한 뒤 삼강문 앞에 섰습니다. 삼강문이라고 이름을 붙인 것은 삼강오륜과 관계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나는 다시 한번 더 고래를 돌려 치술령을 바라보았습니다. 흰구름들이 마음대로 넘어다니는 고개이건만 박제상 부인의 한은 어디에 맺혀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제 삼강문을 거쳐 안으로 들어갑니다.
오른쪽 입문으로 들어갑니다.
반듯한 강학당인 관설당(觀雪堂)이 보이고요.....
공부하는 서생들의 기숙사겸 공부방 정도로 쓰였던 동재가 강학당 오른쪽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동재안에는 앉은뱅이 책상이 펴져 있었습니다. 밥상이라고도 볼 수 있겠지만 책을 펴놓고 보면 책상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나는 동재 마루에 걸터앉아서 관설당을 바라보았습니다.
걸어 들어온 입구입니다.
동재 맞은 편의 서재 뒤로는 박제상 기념관이 있습니다. 충신의 얼을 상징하는 양 구름들이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마구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관설당은 아주 단정하게 정리되어 있었습니다.
박제상에 관한 많은 글들이 표구되어 전시되고 있었습니다.
대들보와 서까래가 너무 아름답습니다.
아까 동재라고 불렀던 건물의 정확한 이름은 경의재입니다.
나는 관설당 뒤쪽으로 가보았습니다. 굴뚝의 모양과 배치가 아주 독특합니다.
담너머로 보이는 건물은 기념관입니다.
강학당인 관설당 뒤에 성인문이 있습니다. 아마 성인문 속에는 위패나 영정을 모시둔 사당이 자리잡고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오늘따라 구름이 왜 이리 아름다운지 모르겠습니다.
관설당 뒤에 서서, 열린 문을 통해 내가 들어온 입구를 살펴봅니다. 이런 아름다움은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건물들에게서 나는 옛향기를 맡습니다.
박제상의 부인인 금교부인 김씨를 기리는 건물입니다.
남편을 그리워하며 몸부림치다가 망부석(望夫石)이 되었다는 그 부인 말입니다.
댓돌위에 벗어둔 운동화 한켤레가 신발 주인의 신분을 이야기해주는 듯 했습니다.
나는 부인 김씨의 애타는 마음을 느껴보려고 눈을 감았습니다. 아울러 처자를 그리워했을지도 모르는 박제상의 마음씨도 함께 생각해보았습니다.
사방은 고요했고 하늘에는 구름만 솟아올라 날아가고 있었습니다.
이제 나갈 시간이 되었습니다.
망해문(望海門)이라.......
관설당을 지나면서 충신의 발자취를 마음 속에 거듭거듭 새겨둡니다.
어리
버리
'경주, 야생화, 맛 > 경주 돌아보기 Gyeong Ju 1 (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충신의 발자취 3 (0) | 2009.09.28 |
---|---|
호반에서 (0) | 2009.09.27 |
정! 정! 정! ~~ (0) | 2009.09.24 |
충신의 발자취 1 (0) | 2009.09.23 |
서당이라..... (0) | 2009.09.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