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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살이/세상사는 이야기 1 My Way (完)

그리운 아버지

by 깜쌤 2009. 8. 2.

 

 

 양력 8월7일은 선친께서 돌아가신지 2년이 되는 날입니다. 시간이 났을 때 아버지를 뵙기 위해 찾아가기로 했습니다. 파계마을에서 모퉁이를 돌았더니 국립묘지 영천호국원의 영천대첩기념탑이 보였습니다.

 

 

 지도에서 보는 저수지 옆을 지나고 있습니다.

 

 

 경주에서 자전거를 타고 떠난지 두시간 반이 지나서야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입니다.

 

 

 경주용 사이클이라면 시간이 단축되었을 것이지만 나는 내가 가진 산악용 고물 자전거를 타고 갔습니다. 현곡을 지나서는 경주시와 영천시의 경계를 이루는 산꼭대기까지 이어지는 가파른 도로를 오르기 위해 정상까지 자전거를 끌고 올라갔습니다. 땀이 비오듯 쏟아졌지만 불효자식인 나같은 모자란 인간을 키우기 위해 애쓰셨던 선친의 고생을 생각하니 참을만 했습니다.

 

 

 그리하여 입구에까지 다다른 것입니다.

 

 

선친은 저기에 누워 계셨습니다.

 

 

 밑에서 세번째 단에 주무시고 계십니다.

 

 

 6.25 전쟁때 철도를 지키면서 군수물자를 운반하시느라고 목숨을 걸고 노력하고 고생한 댓가로 국립묘지인 영천호국원에 주무실 자격을 얻으셨습니다.

 

 

 선친께서는 참으로 점잖은 분이셨습니다.

 

 

 학문적인 소양과 창조적인 두뇌를 가진 분이셨지만 그 뛰어난 재주를 못살리신 것이 두고두고 마음에 걸립니다.

 

 

비석을 붙들고 한참을 꿇어앉아 있었습니다. 이제는 어디가서 아버지를 뵈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호국원에는 고요함이 사방을 적시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여기 이 묘역도 만원이 되어서 지금부터는 납골당에 모시는가 봅니다.

 

 

 나는 일어나서 묘지 부근을 한참 더 서성거리다가 돌아섰습니다.

 

 

 자판기에서 뽑은 커피 한잔으로 피로를 달래보았습니다.

 

 

 선친을 남겨두고 다시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다시 경주로 돌아가야 합니다.

 

 

 영천대첩비가 하늘로 우뚝 솟아올라 있습니다. 선친의 말씀에 의하면 대구 다부동과 영천 갑티재, 안강에서 엄청난 전투가 있었고 전사자들의 시체가 즐비했었다고 하시더군요.

 

  

 젊으셨던 날 고생을 하셨다던 선친의 흔적을 찾아서 일본의 '나라'까지 가보았지만 거기서는 선친이 머무르셨던 곳을 도저히 짐작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이 왜 그리 허허로웠는지 모릅니다. 나는 가슴 한켠에 뚫린 구멍으로 바람을 흘려보내며 페달을 밟았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은 극심한 피로로 인해 완전히 늘어지고 말았습니다.

 

"아부지요, 정말 다시 한번 더 뵙고 싶습니더."

 

 

불효자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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