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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09 일본-서부 일본(完)

쿠라시키 미관지구 2

by 깜쌤 2009. 6. 18.

 

 쿠라시키라는 도시는 오카야마에서 가까운 바닷가의 도시다. 연한 회색이 중심이 된 도시색깔이 차분하게 다가왔다.

 

 

 길을 따라서 내려가다보니 휴식공간이 보였다. 다리도 아픈터라 조금 쉬어가기로 했다.

 

 

 한쪽벽면에는 벽걸이화분을 붙여놓았다. 벽에 연결된 작은 관으로 물을 공급하도록 해 둔 것이 특징이랄까?

 

 

 입구의 모습이다. 그냥 길거리 한곳에 만들어둔 휴식공간이지만 나그네들에게는 참으로 유용한 곳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점심을 먹어야했기에 두리번거리다가 휴식공간 부근의 작은 우동집에 들어가기로 했다. 싼값에 한그릇을 먹을 수 있는 게 있었기 때문이다.

 

 

 그 유명한 덮밥 체인집을 빼고서 일본 음식 한그릇을 400엔에 먹을 수 있는 곳이 그리 흔하지는 않은 것 같았다. 죽으나사나 돈을 아껴야하는게 내 처지이니 400엔짜리우동 한그릇에도 감지덕지할 따름이다.

 

 

 쿠라시키 미관지구는 쿠라시키 기차역에서 걸어가도 충분하다. 한 15분 정도만 걸으면 되므로 굳이 차를 탈 필요는 없을 것이다. 미관지구가 어디냐고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사람들이 몰려가는 곳으로 따라만 가도 되는 처지였으니까 말이다. 평소에는 어떤 상황인지 모르지만 우리가 갔던 날은 그랬었다.

 

 

 에도시대 말기의 스타일로 만들어진 집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곳! 일본인에게도 향수를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하지 싶다. 그런 옛 건물들을 깔끔하게 개조하여 문화의 거리로 만든 곳이 쿠라시키라고 봐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쿠라시키의 모든 거리를 미관지구(美觀地區)로 지정해 둔 것은 아니다. 시내로 들어온 물길인 운하지대 일부를 미관지구로 지정하여 정비를 해 두었다. 연휴를 맞아 몰려온 엄청난 수의 관광객들이 길거리를 가득 메웠는데 붉은 복장을 한 두 아가씨가 우리의 눈길을 끌었다.

 

 

 미관지구 곳곳에는 다양한 종류의 박물관들이 즐비하다고 한다. 그러니 문화의 거리가 되는 모양이다.

 

 

 안내문 제일 밑에는 한글도 나오므로 읽어봐두시면 이해하기가 편할 것이다.

 

 

 하얀 벽들과 회색 지붕과 고요한 물길과 단정하고도 깔끔한 환경이 어우러져 일본 특유의 멋을 만들어내는 곳이 바로 쿠라시키다.

 

 

 화장실 앞을 가로막은 작은 시야차단용 설치물이 손님을 대하는 일본인들의 세심한 마음씀씀이를 보여주는 것 같다.

 

 

 나는 문득 "가라스"라는 말을 떠 올렸다. 가라스! 돌아가신 선친께서 내가 어렸을 때에 자주 쓰셨던 말 가운데 하나인 것으로 기억한다.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몰랐다가 나중에 커서 알게 된 말이다. 다시 생각해보니 그게 바로 글래스(Glass)의 일본식 발음이었던 것이다. 유리창 많은 집을 보며 선친을 떠올리다니.....

 

 

 아까 위에서 잠시 소개했던 아가씨들이 서 있던 뒤편에서 찍은 모습이다.

 

 

 국수를 맛보고 싶었지만 가격단위가 너무 높았다. 그러니 구경만 하고 치워야한다.

 

 

 일본식의 간결한 창문과 음료수 전시...... 창문에 비치는 행인들의 모습......

 

 

 이런 집은 상당한 수준의 고급 음식점 같다. 드디어 물길이 눈앞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담쟁이로 뒤덮힌 집들과 행인들, 그리고 물길.......

 

 

 운하에는 잉어들이 그득했다.

 

 담쟁이로 덮힌 집은 카페였다. 카페 엘 그레코! 한자로 '가배'라고 써 둔 것으로 보아 커피집인 모양이다. 엘 그레코라고 하면 그리스 출신의 스페인 화가가 아니던가? 이런 모습을 보면 이 거리의 특징을 쉽게 알아낼 수 있을 것 같다.

 

 

 운하다. 쿠라시키 미관지구 한가운데를 흐르는 운하......

 

 

 쿠라시키나 오카야마가 있는 이곳은 예전부터 비옥한 농토로 유명했단다. 전국시대(戰國時代) 말기에 여기를 차지하고 다스렸던 우키다 히데이에만 해도 57만석 영주였으니 물산의 풍부함을 알 수 있겠다. 영지 곳곳에서 생산된 곡식과 물산을 모아 저장하던 창고가 있던 곳이 바로 이 거리였던가 보다. 

 

 

 구글 어스로 검색해보면 이 곳이 바다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임을 알 수 있다.

 

 

 운하에는 옛 모습을 재현한 나룻배가 떠더니고 있었다.

 

 

 그리스 스타일의 이 건물이 오오하라(大原) 미술관이다.

 

 

 미관지구에 어울리지 않게 왠 신고전주의 양식의 건물이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오오하라 케이사부로(大原孫三郞)는 섬유산업으로 돈을 벌었다고 한다. 일찍부터 예술품 수집에 눈을 뜬 그는 번돈을 잘 활용하여 엄청난 양의 서양미술품을 사들였던 모양이다. 그렇게 수집한 미술품을 전시하는 공간으로 만든 곳이 오오하라 미술관이라고 한다. 처음의 미술관은 1920년대에 문을 열었다니 대단한 인물임을 알 수 있겠다.

 

 

 갓 돋아나기 시작한 수양버들의 새잎이 봄의 정취를 돋구었다.

 

 

 저 집은 또  무엇을 하는 집일까?

 

 

 모든 것이 눈에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