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룡사터가 꽤나 유명세를 타는 이유는 누가 뭐래도 황룡사 9층탑이 있었다는 사실 때문이지 싶습니다. 말이 9층탑이지 사실 남아있었다면 정말 어마어마한 규모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나무로 만든 탑이 있었던 터 부근에는 안내판이 남아 있습니다. 삼국유사의 기록과 발굴 결과에 근거한 안내판 내용만을 가지고 본다면 상당한 규모가 됩니다. 1238년에 불타서 없어졌다니 너무나 아쉽기만 합니다.
목탑지 흔적입니다. 몽골의 군대가 여기까지 쳐들어와서 분탕질을 해댔으니 남아 있는 것이 없는게 당연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 우리 역사에는 우리 군대가 외국에 원정을 가서 어떻게 했다는 기록이 드문 것일까요? 좋은 의미로 본다면 우리가 평화를 사랑하는 지극히 선량한 민족이지만 나쁘게 보면 그만큼 폐쇄적이고 무능력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지정학적인 위치를 가지고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식으로 해석을 하기도 합니다만 그게 다일까요?
나는 천천히 사방을 둘러봅니다.
이 텅빈 벌판에 자리잡은 가람이라면 규모도 어마어마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발굴기념비 뒷면에는 9층탑의 모양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서양 여러나라들처럼 처음부터 석조로 만들었다면 남아 있는 흔적이라도 있겠지만 목조로 된 것이니 불에 타버리면 재밖에 남을 것이 없겠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다 부질없는 생각들이지요.
온 사방에는 꽃샘 추위 가운데에도 봄기운이 가득했습니다.
어느 정도 구경을 한 나는 발걸음을 돌려 돌아나가기로 했습니다.
처음 들어왔던 곳으로 나가기로 합니다.
황룡사지에서는 박물관이 가까우므로 박물관에 가보기로 했습니다.
반월성과 박물관 사이의 빈터에는 유채가 가득 심어져 있었고 흰나비들이 떼지어 날고 있었습니다.
반월성 비탈에 붙어사는 나무들도 긴 잠에서 깨어나는 흔적이 역력했습니다.
저 갈대들이 푸르게 변하면 계절은 완연한 봄이겠지요.
안압지 앞 빈터엔 모처럼의 연휴를 맞아 나들이를 온 승용차들과 관광버스들이 즐비하게 서있었습니다.
나는 아쉬운 마음일랑 던져두고 박물관 속으로 들어갔던 것이죠.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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