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긴 닭고기를 사기 위해 보문으로 자전거를 타고 내달았다. 아는 분이 통닭집을 운영하는데 이 불경기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싶어서 찾아간 것이다. 그 분이 시내까지 배달을 오려면 틀림없이 자동차를 타고 와야하는데다가 거리 또한 너무 멀기에 내가 직접 가기로 한 것이다.
물론 우리 집 부근에도 단골로 주문하는 통닭집은 있다. 주문만 하면 단번에 가져다주는 분들이지만 내가 잘 아는 분이 가게를 시작했으니 시간적인 여유가 있는 어제 같으면 내가 기를 쓰고 찾아가는 것이다. 경주시내에서 보문으로 가는 자전거 길은 서서히 오르막이 계속되므로 힘이 든다. 그러니 약 한시간 정도는 페달을 밟아야만 하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가게 문이 잠겨 있기에 헛수고를 한셈이 되었다. 전화를 드려보니 어디 멀리 다니러 가셨단다. 마트에 가서 커피를 한깡통 사마신 뒤 시내로 돌아내려오는 길에 제법 많은 수로 이루어진 새떼를 만났다. 논에 저렇게 앉는 것을 보니 까마귀 떼임에 틀림없다. 카메라를 꺼내 들었는데 건전지가 다 되었다는 신호가 온다.
방금 꼭 짜낸 물수건에서 다시 물기를 짜낸다는 심정으로 카메라를 새로 켰다. 경고음이 들리면서 렌즈가 본체로 들어가기 전에 결사적으로 눌러 보았다. 새들이 내는 소리와 몸 색깔을 보니 까마귀다. 갈가마귀인지 까마귀인지는 잘 모르겠다.
적어도 천여마리 정도는 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머리 위 전선에 앉아있던 녀석들은 내가 카메라를 꺼내자 마자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역시 눈치는 빠른 녀석들이다.
시튼이 쓴 <동물기>에는 까마귀 은별(실버 스팟)이야기가 나온다. 이 무리들 가운데는 어떤 녀석이 대장노릇을 하는지 구별이 안된다.
분명히 지휘부는 존재할 것이다. 새들 중에서 가장 영리한 녀석이 까마귀라고 하지 않던가?
호두를 물고 와서는 도로에 떨어뜨린 뒤 자동차들이 지나가면서 부수어주면 도로로 내려와서 알갱이를 파먹는다는 녀석들이다.
시튼의 '동물기'에도 아주 영악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나는 녀석들을 천천히 따라가며 셔터를 눌렀다.
그러던 나는 조금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아무리 봐도 무엇인가 수상했던 것이다.
까마귀 무리 속에 배가 하얀 녀석들이 대량으로 섞여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분명히 몇마리는 까치가 맞는 것 같았다. 까치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무래도 이상했다.
까치와 까마귀가 이렇게 대량으로 함께 무리를 지어 섞여서 나는 모습은 처음 보았기 때문이다. 까치의 비행모습은 나도 잘 아는데 이것들은 조금 수상하다.
그렇게 생각하자 머리속이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알량한 내지식으로는 까마귀 종류를 모두 정확하게 구별하기가 어렵다. 어쨌거나 까마귀 몸체는 검은 것이 특징이니 배가 하얀 녀석들은 까치일 것이라고 믿는 것이 옳지 싶다.
똑딱이 카메라이므로 최대한 끌어당겨 찍은 것이 이모양이다. 이럴땐 좋은 카메라를 가지고 다녀야한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스릴러의 제왕'이라는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이 만든 영화 <새>를 떠올렸다. 얼마전에 들은 소문으로는 그 영화를 리메이크 한다고 하던데.....
샌프란시스코 부근의 한적한 시골마을에서 새떼들이 인간을 습격한다는 기상천외한 발상으로 만들어진 영화 <새>!
저 녀석들이 집단 사이코가 되어 나를 습격한다면 도망갈 방법이 없지 싶다. 제일 좋은 방법은 자동차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겠지만 나는 지금 자전거를 타고 있다.
까마귀는 성경속에도 몇번 등장한다. 선지자 엘리야와 노아의 대홍수 이야기에 까마귀가 등장하는 것이다.
까마귀들이 가득한 벌판과 작은 공원 옆으로 시가지가 있는 것이 천만다행이다.
내가 영화속의 주인공이 될 것 같지는 않았기에 안심을 하고 다시 셔터를 눌러보았다.
살아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아름다운 풍광과 다양한 동식물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행운이던가?
내 기억에 의하면 시튼의 동물기에 나오는 까마귀 대장 실버스팟은 나중에 올빼미에게 희생된다.
이 녀석들은 모두 어떤 일생을 살게 될까? 까마귀의 천적은 올빼미인 모양이다.
카메라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게 되어 나는 사진찍기를 단념하고는 그만 시내로 돌아오고 말았다.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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