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을 달리자 드디어 숲이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기름진 토양은 점점 사라져가고 척박하고 메마르고 건조한 흙색깔을 보인다 싶더니 나중에는 바위들이 많은 산에 키작은 나무들이 돌돌 뭉쳐 버티는 모습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자동차는 마침내 좁은 협곡을 건너 신비탈로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험한 산을 오르던 자동차는 산비탈에 의지하여 조금 묻은 평평한 땅을 주차장으로 쓰는 버스 터미널에 도착한 것이다.
굳이 확인해보지 않아도 여기가 바로 아트빈인 것이다. 론리 플래닛의 설명과 닮은 지형이니 아르트빈일 수밖에 없다. 우리가 미니버스에서 내리자 많은 호객꾼들이 몰려들었고 우리는 다시 한 시간쯤 뒤에 유수펠리로 떠나는 다른 미니버스 운전사와 교섭하여 요금을 확인한 뒤 타게 된 것이다.
메르세데스 벤츠회사에서 만들어낸 미니 버스의 지붕위에서 짐 정리를 하고 있는 양반이 버스 기사이다. 지붕 위 제일 왼쪽 보라색 배낭이 내 배낭이다. 별것 아닌 물건이 든 배낭이지만 여행자에게는 없어서는 안될 필수품이 들어있는 배낭이므로 바르게 싣는지를 확인해두어야 한다. 잊어버릴 경우를 대비해서 자동차 번호판을 넣어 찍어둔 것이다.
독실한 회교도들이 사는 나라답게 차량 뒤에는 "알라 코루순"이라는 문구를 써놓았다. 네이버와 다음에서 검색이 안되기에 할 수 없이 미국 야후에 가서 조사를 해보니까 그 말의 의미는 "May God protect me!"라는 뜻이라고 한다. 많은 승용차나 트럭 뒤 혹은 옆에 저 문구가 붙어 있었다. "알라가 나를 보호해 주시기를!"정도의 의미가 될 것이다.
미니 버스가 출발할 때까지 아트빈 버스 터미널 주위를 둘러보기로 했다. 워낙 산비탈에 붙어있는 도시이니 길은 한줄기 밖에 없다. 올라가거나 내려가는 길 뿐인데 경사도가 심하니 굳이 가볼 필요조차 못 느낀다. 할수없이 담벼락에 붙어서서 경치를 살피는 수밖에 없었다. 골짜기에 보이는 저 물이 흐르는 곳을 막으려고 하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저 산에 난 도로들은 무엇이라는 말인가? 무슨 공사를 저렇게 하는가 싶었다.
아래를 보니 강가에 요새가 보였다. 망루를 겸한 요새 같다. 여기 이 골짜기를 예전부터 아르메니아 골짜기라고 불렀던 모양이다. 에르주름에서 유수펠리와 아르트빈을 거쳐 호파로 나가는 이 외줄기 골짜기 부근은 동로마제국과 페르시아가 소유권을 놓고 다투었다고 한다. 우리 역사로 치자면 삼국시대 초기의 이야기다. 한때는 아랍민족들 손에 넘어가기도 했지만 오랫동안 아르메니아 사람들의 영토였다. 현재는 터키 영토로 변했지만 아르메니아 시대의 많은 교회와 유적들이 곳곳에 존재한다.
엄청난 산들이 사방을 둘러싼 첩첩산중에 아르트빈이라는 도시는 자리잡고 있다. 그것도 평지가 거의 없는 산에 제비집마냥 붙어 있는 모습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마구잡이로 산을 파헤친 모습을 넣어 사진을 찍어보았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까 우리가 탄 버스는 저 멀리 흰구름이 걸려있는 높은 산에 나있는 그 길로 달리는 것이었다. 저런 길이 한참이나 계속되는 것이니 자연 경관의 훼손이 말로 다할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버스 터미널에서 본 도시의 모습이다. 길이 아래위로 한줄기 밖에 없으니까 목적지를 찾기는 쉽겠다.
차들은 외줄기로 난 길을 오르내리고 있었고...... 여기까지 초대형 버스들이 올라온다는 사실이 신기하기만 하다. 터키의 버스회사 시스템은 엄청 대규모여서 우리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이다.
버스 앞에 서있는 사람의 키와 버스 높이를 비교해보기 바란다. 대형버스들의 높이는 보통사람 키의 두배 정도이다. 길이도 우리나라 버스들보다 월등하게 길어서 초대형임을 단번에 알 수 있다. 주로 벤츠회사 제품들이다.
우리가 타고갈 미니버스들이고...... 우리 팀멤버들의 배낭이 자동차 지붕위에 얌전하게 자리잡고 있다.
나는 사진기를 꺼내 여기저기를 눌러 보았다. 망대 겸 요새를 줌렌즈로 끌여당겨 찍어보았다. 줌렌즈라고 하니까 거창하게 생각하기 쉬운데 나는 삼성회사에서 생산한 똑딱이 카메라를 쓴다. 그래도 사진은 잘만 찍혔다.
이젠 아르트빈이라는 도시 구조를 대강 이해할 수 있지 싶다.
우리는 그저 빈둥거릴 수밖에 없었다. 나는 론리 플래닛을 꺼내어 유수펠리와 바르할에 관한 기사를 읽어보며 정보를 확인해 두었다.
산비탈에 이정도의 공간을 갖는 터미널이 존재하는 것만 해도 천만다행이다.
터키 화장실의 내부 모습이다. 어떻게 사용하는지는 짐작해보면 될 것이다. 거의 모든 화장실은 무료가 아니다. 반드시 돈을 내어야 하는데 비싸게 받는 곳은 우리 돈으로 거의 700원 이상을 받기도 했다. 대단한 사람들이다.
버스 터미널의 모습이다. 건물 밑은 절벽이다.
한쪽 모퉁이에는 조잡한 상징물이 자리잡고 있었다.
산허리엔 구름이 걸려있고 포플러가 우거진 비탈 밑으로 난 도로가에는 유도화가 만발했는데......
터키 영토임을 강조하는 대형 깃발이 펄럭이고 있었다. 이곳의 진정한 주인은 과연 누구일 것 같은가?
하늘로 치솟은 나무 가지 사이로 향수(鄕愁)가 걸려있는 듯 했다. 나는 이상하게도 포를러 나무 이파리가 바람에 잔잔하게 팔랑거리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저려온다. 이 못말리는 값싼 싸구려 감상주의에서는 언제쯤 되어야 해방이 될지......
버스가 떠날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골짜기 건너 바로 옆산에서는 구름이 점점 아래로 깔리며 내려오고 있었고.....
앞산에도 구름이 휘감아 내리기 시작했다. 가끔씩은 빗방울이 뿌려지기도 했다. 산중이니 기후 변화가 심하다.
우리는 이따가 저 길을 따라서 고개를 넘을 것이다.
그 생각을 하니 아뜩해지기만 했다.
마을마다 모스크가 자리 잡았다.
드디어 우리 차도 점점 만원이 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가지고 타는 짐의 양도 보통이 넘는다. 기사 양반은 아주 싹싹한 사람이어서 불평 한마디 없이 온갖 궂은 일을 성심껏 처리해 주는 모습을 보였다.
저 젊은 부부는 앞으로 어떤 운명을 가지고 살게 될까?
버스 안 벽에는 요금표가 부착되어 있었다. 유수펠리까지는 13리라이다. 1리라는 약 일천원 정도로 보면 되겠다. 이제 터키의 물가도 너무 올라 버렸다. 그러니 여행지로서의 매력을 서서히 잃어가고 있는 것이다.
드디어 우리가 탄 버스는 길을 떠났다. 온갖 종류의 사람들을 싣고서 말이다. 운전기사의 재량으로 남녀간의 좌석조정을 하기도 했고 운전기사가 안하면 차 안에 탄 사람들끼리 알아서 적당히 자리를 바꾸기도 했다. 주로 여자들은 여자들끼리 앉았다. 이런 법칙에는 외국인도 예외가 아니다.
아까 골짜기 건너 저편 산머리 부근으로 멀리 보이던 도로를 우리 자동차가 지나갈때 아르트빈 시를 보며 찍은 사진이다. 아르트빈 시가 산허리에 걸려 있음을 확실히 알 수 있다.
아르트빈! 참 대단한 곳에 자리잡은 도시이다. 에르주름에서 호파까지 가는 길은 정말이지 한번은 지나가 볼만하다. 이 정도의 경치를 보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니겠는가? 한참 신나게 잘 달리던 우리 버스는 이윽고 정지 신호를 받고는 산허리에 멈추에 서고 말았는데.......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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