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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08 조지아, 터키-두 믿음의 충돌(完

낙원을 찾아서 1

by 깜쌤 2008. 9. 7.

 

 

 

 

 전운(戰雲)이 감도는 나라를 빠져나오기 기분이 홀가분하기 그지 없었다. 설혹 전쟁터에 갇히더라도 나야 뭐 이한몸 죽으면 그만이지만 같이 모셔간 분들에게 만에 하나라도 안좋은 일이 벌어진다면 뒷감당 할 길이 없어진다. 그런 기분은 리더만이 가지는 부담이기도 할 것이다. 

 

조지아의 사르피에서 우리는 국경을 넘어 터키의 호파로 온 것이다. 이동한 장소와 경로를 지도에서 붉은 점과 선으로 표시를 해두었다. 우리의 목적지는 Trabzon이라고 써 놓은 곳의 n자 부근에 있는 바르할이라는 곳이다. 론리 플래닛에 보면 '천국"이라는 식으로 의견을 달아둔 곳이니 기대가 큰 것이다.

 

바르할을 가기 위해서는 먼저 호파에서 아르트빈으로 가야했다. 아트빈에서는 다시 유슈펠리로 가고 유수펠리에서 바르할로 가는 것이니 오늘은 부지런히 이동해야 한다. 우리들이 호파 시외버스 터미널에 도착한 시각이 이제 겨우 아침 7시 부근이었던 것이다.

 

  

 

 

우리가 가고자 하는 곳은 아주 험한 산골짜기이니 은행이 있을리가 없다. 터키에서는 당연히 터키 돈을 써야하는데 이 나라 돈이 없으니 버스타기부터가 불가능해진다. 당연히 환전부터 해야하는 문제가 발생했다. 우리가 터미널에 도착하자 버스와 택시를 모는 운전기사들이 몰려들었다.

 

"어디로 갈려고 합니까?"

"아르트빈이오."

"바로 이차가 아르트빈으로 갑니다."

"몇시에 출발합니까?"

"7시 반이외다."

 

겨우겨우 물어서 알아낸 정보인데 차비가 없으니 문제다. 7시 반이라면 이제 한 30분 뒤면 차가 출발한다는 이야기다. 이 차를 놓치면 또 얼마나 기다려야 할지 모른다. 주위에 모여든 사람들에게 은행위치를 물었다. 그랬더니 순수하면서도 눈치빠른 사람들이 놀라운 제안을 하고 나왔다.

 

"이 버스를 타시오. 은행까지 데려다 주리다."

 

우리가 이런 제안을 뿌리칠 이유가 없다. 은행은 시내 한가운데 있는데 시내까지 가려면 택시나 버스를 타야한다. 그런데 아트빈으로 가는 미니버스가 우리를 싣고 시내 은행까지 데려다 주겠단다. 우리는 배낭을 싣고 버스에 탔다. 다른 사람 몇이와 함께 타고 휑하게 달려서 도착한 곳은 사설환전소였다. 나도 이제 그 정도 눈치를 때려잡을 줄 안다. 틀림없이 환율은 은행과 조금 차이가 날 것이다. 7시 조금 넘은 시간에 정상적인 은행은 문을 열리가 없으니 사설환전소로 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운전기사가 외국 손님을 환전소로 모시고 가면 서로서로 좋은 일이리라.

 

환율을 확인해보고 달러를 터키 리라로 바꾸었다. 한꺼번에 많이 하면 손해를 볼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우리가 가는 곳 자체가 깊은 산골이니 손해볼 각오를 하고 일단 300달러를 바꾸었다. 위조지폐 문제가 발생할 경우를 대비해서 환전소에 받은 작은 영수증도 모두 여행일기장에 붙여두었다.

 

그리고는 큰 돈은 복대속에 넣고 오늘 쓸 돈 정도만 주머니 속에 챙겼다. 큰돈을 주머니 속에 넣어두고는 돈을 쓸때마다 다꺼내어 남에게 보여가며 잔돈을 지불하는 것은 지극히 위험한 알이다. 그런 철없는 행동은 범죄를 유발하는 원인이 되므로 하루 쓸 돈 정도만 주머니 속에 넣고 나머지 돈은 감춰두어야 한다. 여행에서 무엇보다 신경써야 할 중요한 일 가운데 하나는 생존본능에 충실해지는 것이다. 절대로 잊어버리면 안된다. 유로를 준비한 젊은이들은 환전시에 터키의 지정학적인 위치 때문인지는 몰라도 달러보다 훨씬 더 유리한 값으로 터키 돈을 살 수 있었다.  

 

돈은 반드시 그 자리에서 확인해야 한다. 확인을 다할때까지는 환전창구를 벗어나면 안되는 법이다. 꼼꼼하게 천천히 액수를 확인한 후에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나와도 뒤에 선 사람들은 아무 소리 하지 않는다. 절대로 서두르면 안되는 것이다. 만약  액면단위가 높은 큰 돈으로만 받았다면 그 자리에서 잔돈을 섞어서 작은 돈으로 바꿔달라고 요구해야 한다. 그래야 시내버스 같은 것도 탈 수 있고 과자 부스러기라도 하나 사먹을 수 있다.

 

 

 

 환전을 하고 차에 올라타고 나니 다시 쌔앵 달려 버스터미널 부근에 돌아왔는데 아르트빈 갈 사람들이 모두 도로가에 나와서 한곳에 모여 있었다. 기사가 타라고 신호를 하자 모두 다 올라타버린다. 순식간에 자리가 다 메워지자 운전사는 터미널 속으로 들어가지도 않고 출발해버리는 것이었다. 7시 반에 출발한다던 차가 7시 15분에 출발해버렸다. 

 

이제사 가만히 보니 아까 우리와 함께 은행까지 같이 와준 사람은 단순한 손님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들은 우리와 함께 했고 운전기사에게 은행가자는 이야기를 해준 것이다, 고맙다. 이런 작은 친절이 그 나라의 인상을 결정하는 것이다. 우리가 만사형통한 팀이라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일이 너무 쉽게 쉽게 잘 풀리기 시작했다.

 

 

 

  

 바닷가에 자리잡은 국경도시 호파를 벗어난 미니버스는 곧바로 험준한 산악도로로 기어 오르기 시작했다. 밋밋한 평지를 달리는 것보다 산지를 달리는 것이 경치감상에는 더 유리하다. 흑해를 끼고 있는 지형이므로 산에는 숲이 울창하다. 확실히 바닷가쪽으로 숲이 존재한다는 학설이 맞긴 맞는가보다. 그렇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남아프리카의 나미비아 사막같은 경우에는 아예 바닷가에서부터 사막이 존재한다니까....

 

 

 

 

 아르트빈으로 가는 버스는 험한 산길을 감아서 달리는 것 같이 산으로만 올라가더니 이윽고 거대한 고개를 넘기 시작했다. 아래쪽으로 보이는 경치가 일품이었다.

 

 

 

 

 고개 정상부근에서 가쁜 숨을 몰아쉰 버스는 약간의 내리막길을 내려간다는 기분이 들 정도로만 살짝 비탈진 길을 줄기차게 달려나갔다.

 

 

 

  

 그러면서도 버스는 점점 깊은 산골짜기 속으로 들어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드디어 산골짜기 속에 자리잡은 도시 하나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런데 말이다, 아무리 봐도 이 도시가 자리잡은 곳이 심히 수상하기 그지 없다. 산비탈에 자리잡은 작은 도시였던 것이다.

 

 

 

 마을은 계곡 이쪽과 저쪽을 이어주는 다리 너머로 자리잡고 있었다.

 

 

 

 다시 산비탈을 기어오르기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드디어 거대한 댐이 하나 등장했다.

 

 

 

 

 으흠.....  이 골짜기 전체를 가로지른 것이구나. 그렇다면 이제부터 환상적인 경치와 흉한 경치를 동시에 구경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단 댐에 물이 차 있을 경우에만.....

 

 

 

 

 

 내 예상은 크게 빗나가지 않았다.

 

 

 

 

골짜기 속에 들어있던 수많은 마을들을 산 위로 옮겨야만 했을 터이니 산 중턱부터 마을이 여기저기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경치하나는 끝내주는 수준이다.

 

 

 

 

 얼핏보면  멋지다. 사람사는 마을이 있다면 당연히 산비탈을 깎아 도로를 내어주어야 한다. 자세히 보면 온 산 전체에 흉하디 흉한 생채기가 그득했다.

 

 

 

 

 다행히 이 부근에는 조금 덜하다.

 

 

 

 호수 건너편 마을들은 규모가 작으니 깎아낸 산비탈의 면적이 조금 적지만 자동차가 다니는 이쪽은 도로를 크게 내어야 했으니 꼴이 말이 아니게 된 것이다. 그제서야 론리플래닛에 소개된 내용들이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했다.

 

 

 

 

 참으로 답답한 터키 당국이다. 환경보존이 우선이냐 개발이 우선이냐 하는 것은 내가 간섭할 것이 아니지만 개발을 하면 환경훼손은 최소한으로 해야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 아니던가? 나는 답답한 마음을 안은 채로 차창밖에 펼쳐지는 경치를 감상만 하기로 마음 먹었다.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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