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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08 조지아, 터키-두 믿음의 충돌(完

조지아 빠져나가기 3

by 깜쌤 2008. 9. 5.

 

20라리에 만족했는지 기사는 중간에 차를 세워 약수터를 소개해주었다. 졸지에 우리들은 조지아에서 약수까지 마셔보게 되었다.

 

 

 

 

오른쪽으로는 흑해(黑海)가 자리잡았다. 그렇게 검게 보이지도 않는듯 했지만 흑해라고 부를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저 앞이 국경이다. 조지아쪽의 국경마을 이름은 사르피이다. 오른쪽 바닷가로 보이는 모스크의 미나렛은 터키 영토쪽에 있고 트럭이 오고 있는 쪽은 조지아인 것이다.

 

 

 

 

 

 이제 다 왔다. 우린 이제 저 철책을 통과해서 터키로 넘어가야 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여행기를 보면 여기 세관들과 공무원들은 부정부패에 제법 맛을 들인 모양이다. 뒷돈을 요구받았다는 사람들이 꽤 되는 듯 했다.

 

우리를 실어준 기사 양반은 이번 전쟁에서도 잘 살아남았지 싶다. 전쟁터와는 상관없는 지역에 살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이탈리아어를 조금 할 줄 아는 것으로 보아 그리 판단력 없는 사람은 아닐 것이다.

 

 

 

 

 

조지아쪽 마을의 모습이다. 시계를 보니 아직 아침 7시가 되지 않았으니 무엇이라도 조금 먹고 국경을 넘는 것이 유리할 것 같았다. 그래서 자동차들이 세워져 있는 마을쪽으로 가 보았더니 카피점과 몇개의 작은 가게들이 손님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빵집으로 찾아들어가서 빵을 시켰다. 커피 한잔과 함께......  

 

 

 

 

 제법 맛이 있었다. 여기까지 오자 그제서야 마음이 푸근해지며 입맛이 돌았다. 이제 국경을 넘으면 상황이 좀 좋아지리라. 너무 일찍 넘어가는 것이 아쉽기만 하지만 혹시 아는가? 이게 가장 최선의 방법인지.....  다 아는 이야기이지만 더 구경하겠다고 머뭇거리며 남았더라면 꼼짝없이 전쟁터에 갇힐뻔 했다.

 

 

 

 

 

 요기를 한 뒤에 계산을 하니 14라리가 되었다. 1인당 3.5라리인 셈이다. 계산을 할때 빵맛이 최고였다며 잔돈으로 받은 1라리를 다시 주었더니 주인 아줌마는 한껏 기분이 좋은지 어쩔줄을 몰라했다. 작은 돈으로 기분 좋게 만들어 주는 것은 멋진 일이 아니던가?

 

이제는 국경을 넘어야 한다. 일찍 입국하는 이유는 조금 있으면 사람들이 몰려들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늦어져 버린다. 배낭을 매고 내가 앞장서서 조지아쪽의 출입국 관리소로 패스포트 컨트롤을 받기 위해 들어갔다. 출국을 하는 것이니 그냥 쉽게 스탬프를 찍어준다. 그 다음엔 계속 걸어서 터키쪽 입국 심사를 받으러 갔다. 담당 공무원은 내 여권을 아주 유심히 살핀다. 컴퓨터 화면에 온갖 기록이 다 떠오르기 때문이지 싶다. 

 

나는 지금까지 터키를 4번 여행했다. 한번은 그리스의 사모스 섬에서 쿠사다시로 입국했고 한번은 불가리아에서 에디르네로 입국했으며 한번은 이란에서 도우베야짓으로 입국했고 이번에는 조지아의 사르피에서 호파로 입국하는 것이니 이상하게 여길 만도 하겠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해보면 터키 매니아임을 알수도 있을 것이다. 한참을 들여다보던 관리는 입국 스탬프를 찍어주었고 뒤따라 넘어오는 우리 팀 멤버들에게는 아주 쉽게 찍어주었다. 우리 뒤로 많은 조지아 사람들이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배낭여행자들은 세관신고를 할 일이 거의 없다. 배낭 속에는 구질구질한 물건들 밖에 없으니 세세히 신고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국경을 넘을 때는 어떤 일이 있어도 남이 부탁하는 물건을 들어주면 안된다. 절대로 잊어버리지 않아야 할 일이다. 세관을 통과한 뒤 밖으로 나오면 터키땅이다. 이젠 국경에서 가장 가까운 도시인 호파로 이동해야 한다.

 

 

 

 

 

 

이동하는 방법은 두가지이다. 하나는 택시를 타는 것이고 하나는 언제올지 모르는 돌무쉬(터키 미니버스)를 기다리는 것이다. 당연히 택시를 타야하지만 요금을 모른다. 그래서 나는 같이 국경을 넘어온 조지아 여자들에게 가서 물었다.

 

"호파까지 택시로 가려고 한다. 요금은?"

"보통 20달러줍니다."

"고맙소, 아가씨들!"

 

그렇게 대답하고 뒤를 돌아보니 택시 운전기사가 나를 보고 20달러를 부르고 있었다. 두말없이 타기로 했다. 국경에서 터키의 첫도시인 호파까지는 약 18킬로미터의 거리이다. 조금 남은 조지아 돈은 주머니 속에 넣어두고 달러를 준비했다.  

 

 

 

 

 

 터키 운전기사는 정치적인 의견부터 꺼내기 시작했다. 누가 묻지도 안했는데 이야기를 시작한다.

 

"부시 노! 아메리카 노! 잉글란드 노!"

"코리아 굿?"

"야판 굿, 꼬레 굿!"

 

이런! 하필 일본 좋다는 소리가 먼저 나올게 무어란 말인가? 내가 만났던 많은 터키 사람들은 일본이 좋다며 아우성이었다. 이런 것을 보면 우린 항상 왜인들에게 한수 뒤쳐진다는 사실을 느낀다. 그는 작은 폭포 옆에 차를 세우고는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

 

 

 

 

 

 뒤를 돌아다보니 바닷가 언덕 위에 집들이 여기저기 자리 잡았다. 이런 곳에 살면 전망 하나는 끝내줄 것 같다.

 

 

 

 

 

 폭포를 뒤로 하고 그의 택시는 다시 속력을 내기 시작했다.

 

 

 

 

  드디어 시가지가 보였다. 제법 멋진 도시이다. 기사는 우리를 호파 마을 버스터미널에 내려다주고 휑하니 사라져 버렸는데.......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