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빌리시 거리를 지나다가 우리는 케밥집을 하나 찾았다. 우연히 발견했는데 모두들 들어가는 것에 의견의 일치를 보았으므로 쉬어가게 된 것이다. 가게는 거리에 면해 있었지만 음식을 먹는 공간은 안마당 비슷한 곳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터키 음식 가운데 전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 아마 케밥일 것이다. 케밥의 종류는 워낙 많으므로 꼭 이것이다라는 식으로 찍어서 이야기하기가 어렵다.
조지아에서는 이 음식을 카밥(Kabab)이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누가 원조인지 나는 모른다. 분명한 것은 이런 케밥 종류의 음식이 터키에도 있으며 조지아에도 있고 이란에도 있으며 그리스에도 있고 오스트리아에도 있었으며 헝가리에도 있다는 사실이다. 내 생각이지만 여행자가 가장 손쉽게 구해서 먹을 수 있는 것은 되네르 케밥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둥글거나 네모나게 넓덕한 모습으로 구운 얇은 빵에다가 잘 구운 양고기나 닭고기를 썰어서 넣고 양파나 고추, 감자튀김 혹은 여러가지 야채를 끼워넣기도 해서 둥글게 혹은 납닥하게 말기도 해서 내어주는 음식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우리가 흔히 먹는 샌드위치나 햄버거처럼 간단히 들고 먹을 수 있기에 간단히 한끼 떼우기에는 그저 그만인 음식이다.
우리는 양고기 케밥 둘에다가 닭고기 케밥 둘을 시켰다. 그런 뒤 그것을 반씩 잘라서 서로 바꾸어 먹었으니 한사람이 닭고기 케밥 반개와 양고기 케밥 반개씩을 먹은 셈이다. 물론 양은 많으므로 한개만 먹어도 배가 든든하다. 케밥으로 배를 불린 우리들은 다시 걸었고 앞에서 이야기한대로 장거리 버스 정류장까지 찾아온 것이다.
시간이 제법 남았기에 지하철 역에서 빈둥거리기도 하고 터미널 부근 수퍼에서 찬물을 몇병씩이나 사먹으면서 시간을 떼웠다. 그 많던 사람들이 휑하게 사라져버린 버스터미널 부근에서 놀다가 화물 보관소에 가서 배낭을 찾았고 7시 50분경이 되어 약속장소에 갔더니 바투미로 가는 미니 버스가 대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미리 배낭을 버스 뒤에 싣고 좌석을 잡았다. 장거리를 가야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보다 미리 타서 중간정도 위치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우리나라로 치면 9인승이나 12인승 봉고 정도로 여기면 되는 정도의 작은 버스이다.
버스는 정확하게 8시경에 출발했다. 이런 버스들이라면 목적지에 도착해서 운임을 주는게 옳은 일이다. 그렇게 하려고 마음먹고 있었는데 출발전에 차량 주인 정도로 생각되는 사나이가 승객들로부터 돈을 걷었다. 모두가 다 돈을 내는 분위기였으므로 우리도 돈을 내어야 했다. 영수증 같은 것은 물론 없다. 현금박치기인 것이다. 그러니 한가지 의문점이 생길 수밖에 없다.
중간쯤 가서 아무 곳이나 차를 세워놓고 목적지인 바투미라고 우기면 어쩔 수 없이 내려야 하니 황당한 일을 당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약간은 불안했지만 현지인들도 같이 타고 있으니 터무니없는 짓은 하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우리 팀에도 덩치가 좋은 사람이 둘 정도 끼어 있으니 함부로 해코지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확신이 섰다.
버스는 중간 중간에 들르면서 사람들을 더 태웠고 나중에는 완전히 만원이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차가 전복이라도 되면 빠져나갈 길이 없다. 방정맞은 소리이지만 사고로 인해 화재라도 발생하면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겠다 싶었다. 그런데 중간에 끼어탄 한 사나이는 휴대전화를 걸고 받는 자세가 아주 냉정했는데 눈빛조차 대단히 매서운 사나이였다.
내가 보기엔 조직폭력배원이거나 아니면 막가는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말은 알아듣지 못하지만 그가 말하는 모습과 목소리 톤으로 보아 말을 안들으면 해치워버리라는 내용으로 이해했다. 좀 뭣한 이야기지만 나는 그런 쪽으로는 기가 막히게 잘 알아듣는다. 그는 안하무인격으로 그 좁은 공간에서 담배를 피워 물었고 차 안에 탄 그 어느누구도 제지하지 않았다.
얌전하게 생긴 기사는 차에 올라타자 말자 속력을 올리기 시작했는데 자그마치 시속 140킬로미터까지 올리는 것이었다. 아침에 우리와 약속한 그 양반은 거간꾼이거나 차주이거나 할 것이다. 우리를 차에 태운 뒤로는 사라져 버렸으니까...... 지금 차에 올라타서 바투미까지 함께 가며 차비를 걷는 다른 사나이는 처음보는 사람이다. 운전수도 처음보는 사람이니 그런 식으로 밖에 생각할수 없게 되어 있다.
무지막지하게 달리는 모습을 보며 깨달았다. 아뿔사! 우리는 총알택시를 타게 된 것이다. 서울과 부산사이 정도의 거리를 무지막지하게 달리는 그런 총알택시 말이다. 이번 경우는 택시보다는 조금큰 차량이니 총알버스나 총알봉고라고 해야겠다. 중앙선 침범은 예사이고 끼어들기와 추월은 하루 굶은 사람이 식은 라면 넘기듯이 해치웠다. 태국과 인도네시아에서 이런 차를 타본 경험이 있으므로 나는 마음을 가라 앉혔다.
처음에는 6차선 고속도로였으므로 총알처럼 달리는 것을 보고도 그러려니 했지만 왕복 4차선 도로에서도 죽기살기로 마구 달릴땐 조금 질리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왕복 2차선 도로에서도 같은 짓을 반복할땐 포기하고 잠을 청했다.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었다. 이럴 땐 죽고 사는 것은 하나님 손에 맡기고 잠이나 자야 한다. 내일 아침까지 버티려면 잠 자는게 제일 속편한 일인 것이다. 좁은 자리에 꽉끼어 앉았으니 잠자리가 편할 리가 없는 것이지만 안자면 또 어떻게 하는가 말이다. 무조건 자야만 했다.
산너머로는 해가 졌고 아름다운 석양이 우리를 배웅하는 듯했지만 마음이 불안하면 아름다운 경치도 감상할 여유가 생기지 않는 법이다. 어지간히 여행 이력이 붙었다는 나도 이내 포기하고 계속 졸고 졸고 자고 깨고를 반복했지만 그렇지 못했던 일행분도 있었던 모양이다. 손님들은 중간 중간에 계속 내리고 새로운 사람들이 타기를 반복했다. 그러다가 휴게소에 들렀는데 부슬부슬 비가 내렸다. 한번씩은 빗방울이 굵어지기도 했고...... 나는 거기가 어디인지 모른다. 그냥 자다가 버스가 섰고 잠시 내렸으며 이슬비를 맞았고 한여름 추위에 벌벌 떨었다는 기억밖에 없다.
한참을 자다가 일어나니 버스는 바닷가를 달린다는 느낌이 들었다. 바닷가라면 틀림없이 흑해 해변 어디쯤인가를 달리는 것이리라. 야자수 비슷한 나무들이 보였고 환하게 불을 밝히고 잔치판을 흥건하게 벌여둔 곳도 있었다. 그렇다면 결혼식 피로연이거나 아니면 야외 디스코장일 것이다. 그렇게 한시간 정도를 달리더니 차가 멈추면서 다른 사람들이 다 내리는 것이었다. 돈을 거두었던 사나이가 뒤를 돌아보며 한마디 했다.
"바투미!"
그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든 나는 다시 확번 확인을 하는 차원에서 물었는데 그는 분명히 바투미라고 대답하는 것이다. 여기가 바투미란 말인가? 터키와의 국경도시인 바투미가 맞다면 너무 이상하다. 시간을 확인하니 새벽 한시가 조금 넘었다. 그렇다면 이 차는 거의 날아온 셈이다. 아침 6시에 도착한다는 이야기는 그러면 무슨 소리였던가? 어안이 벙벙했다.
순간적으로 내 머리속에 떠오른 생각은 노숙을 할것인가 아니면 호텔을 찾아 들어갈 것인가 여부에 대한 판단을 해야한다는 것이었다. 일단 배낭을 차에서 내리고 안전하다고 생각되는 자리를 골라서 앉게 했다. 우리가 내린 곳은 바닷가이다. 군데군데 사람들과 가게들과 택시들이 보이는 곳이니 일단 안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팀 전원을 잠기운에서 빨리 빠져나오게 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노숙을 하느냐 아니면 호텔을 찾아 들어가느냐 마느냐하는 중요한 결정을 해야하므로 정신을 차려야 한다. 조지아의 여행안전도는 그렇게 높은 나라가 아니라고 들었다. 즉 치안상태가 그렇게 양호한 나라가 아니라는 말이다.
리더는 이럴 때가 제일 괴롭다. 돈은 적어서 아껴야 한다, 그런데 한밤중에 도착했으니 노숙하기도 그렇고 호텔을 찾기도 어렵다. 도시에 관한 정보는 하나도 가진게 없다. 앞이 캄캄한 것이다. 돈을 아끼는 것도 좋지만 건강과 안전도 생각해야 했다. 결국 나는 택시기사들의 황당한 요구를 뿌리치고 두 사람을 도로가에 남겨둔채로 다른 청년을 데리고 호텔을 찾으러 나섰다.
새벽 한시반 경에 찾는 호텔이니 눈에 띄는 대로 들어가서 빈방을 찾으니 거의가 다 찼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간신히 한두군데 들어가서 가격을 알아보는데 엄청 비싼데다가 정확한 영어 의미가 안통하니 대화가 겉돌고 만다. 나중에는 어두컴컴한 골목에 자리잡은 귀신나올 것 같은 집에까지 들어갔다가 포기하고 나왔다. 아무래도 매음굴 같았기 때문이다.
호텔을 찾다가 돌아다니면서 보니 도로 한쪽에 교회가 보였다. 교회 부근에 노숙을 할까 싶어서 공간을 찾아보니 그럴듯한 장소는 있었지만 지나다니는 사람이 너무 없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인적이 너무 없으면 범죄행위가 발생할 경우 도움을 요청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 결국 새벽 두시가 되어 원래 자리로 되돌아온 나는 결심을 굳힐 수밖에 없었다.
"노숙한다. 비닐 자리를 바닥에 깔고 침낭을 꺼내서 잔다. 도로 가에는 위험하니 바닷가 산책로쪽으로 가서 밤을 세운다. 몇 시간만 버티면 될테니 걱정은 하지 말기 바란다. 형님도 그렇게 아시기 바랍니다."
일행들은 처음에는 실망한 것 같더니 이내 포기하고 배낭에서 자리를 꺼내 깔고 침낭을 꺼내 들었다. 다행히 인근에 가로등이 조금 환하니 그래도 낫다. 사람들도 조금씩 지나다니는 곳이니 크게 위험한 일은 생기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 자자. 어디서든 못자랴? 몇시간 버티면 날이 샐 것이다. 한 4시간 정도만 견디면 된다."
어이없는 일이었지만 우리는 바투미 해변 산책로 바닥에 침낭을 깔고 하룻밤 노숙을 하게 된 것이다. 어허허허허허~~~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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