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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살이/옛날의 금잔디 Long Long Ago (고향)

흔적 1

by 깜쌤 2008. 5. 26.

 

 남들이 보기엔 별것 아닌 사진 한장이지만 사람에 따라서는 깊은 의미를 가질 수도 있습니다. 이 사진이 그렇습니다. 나는 지금 40년전의 세월을 따라 가고 있는 중입니다. 

 

 

 

 

 40여년도 조금 넘은 옛날, 나는 여기서 초등학교를 6년간 다녔습니다. 고개 하나를 넘어서 다녔으니 쉬운 길은 아니었습니다. 물론 예전 학교 건물은 말갛게 사라지고 난 뒤입니다.

 

 

 

 이 건물이라고 기억하는데 작은 산골 교회를 다닌 기억이 납니다. 한달에 한두번 가본 교회였지만 그게 오늘날의 나를 있게 만든 작은 조각이 된게 틀림없습니다. 친구를 따라서 가본 것이 발단이 되었는데 결국 내 인생의 방향까지 바꿔버리게 된 것입니다.

 

 

 

 

 지금은 모두 다 포장된 길이지만 예전엔 돌뿌리에 치여 자주 넘어지기도 했던  험난한 길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높아보이고 커보였던 고개지만 이젠 길을 직선으로 내고 포장까지 해서 그런지 낮아졌다는 기분이 듭니다.

 

 

 

 

 작약꽃이 피었습니다. 육쪽마늘로 유명한 의성 지방으로는 작약꽃이 엄청 피어납니다.  하지만 여기는 의성이 아닙니다.

 

 

 

 

 이제는 농촌에서 정말 보기 드문 어린 아이가 자전거를 타고 놉니다. 우린 그냥 흙밭에서 뒹굴고 놀았습니다. 막대기 하나만 있어도 그것으로 놀 수 있는 방법은 꽤 많았습니다. 나는 막대기 하나로 들길을 걸으며 신나게 놀았습니다.

 

 

 

 

 오늘의 목표는 저 먼산 꼭대기 부근에 자리잡은 절간과 그 밑 동네입니다. 가장 멀리 살짝 보이는 봉우리가 학가산입니다. 안동을 대표하는 산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철길 바로 밑으로 내성천이 사진의 오른쪽 산봉우리 밑으로 굽이굽이 감돌아서 흘러내립니다.  

 

 

 

 

 한때는 이 동네에도 많은 사람들이 살았습니다만 석산(石山) 개발로 인해 마을 전체가 이주를 하고 말았습니다. 덕분에 내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흔적은 눈꼽 하나만큼도 찾을 수 없도록 다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너무 오래전 일이어서 그런지 이제는 동네 모습조차 정확하게 기억되지 않습니다. 잊어버린다는게 축복인줄은 알지만 이럴땐 너무 아쉽습니다.

 

 

 

 아무 연고도 없는 산골짜기 동네였으니 사는 것 자체가 힘이 드는 곳이었습니다. 일가친척이 소중하던 예전에는 피붙이가 큰힘이 되었지만 우리집은 친척이 귀한 집이어서 일가조차 없었으니 무리를 지어 사는 토박이들이 너무 부러워 보였습니다.

 

 

 

 

 이 개울에서는 빠져 죽을 뻔하기도 했습니다. 예전에는 모래가 엄청 많았습니다만 너무 많이 퍼가버렸습니다. 김소월의 시에 나오는 나오는 내용들이 저절로 이해가 되었었습니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빛.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그랬습니다. 강변엔 금모래가 가득했었지만 이젠 거의 다 사라지고 없습니다.

 

 

 

 

 대갓집에도 이제는 사람 인기척을 찾아보기가 어려운 모양입니다.

 

 

 

 

 제실이지 싶은데 창호지 바른 문에는 구멍이 숭숭 �렸습니다.

 

 

 

 

 초(草)작약이 여기에도 피었습니다.  목(木)작약은 모란이라고 한다나요.

 

 

 

 

 빨간 줄장미가 피어있습니다만 사람 흔적은 없었습니다. 어디 들일이라도 나가셨는가 봅니다.

 

 

 

 나는 부지런히 발걸음을 재촉했습니다. 이젠 저 논길로 가야할 차례입니다.

 

 

 

 

 서마지기 논배미가 강변에 바짝 붙어 있으니 좁디 좁은 벌(벌판)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래서야 먹고 살기가 고달프기만 합니다.

 

 

 

 

 강변 둑길에는 찔레꽃이 아름다움을 한껏 뽐내고 있지만 봐줄 사람이 없습니다. 배고픔을 잊으려고 찔레순을 꺾어먹었던 날들이 이젠 그립기만 합니다.

 

 

 

 

 이 길을 줄기차게 걸어다녔던 친구는 이 길이 환하게 기억나지 싶습니다.

 

 

 

 

 나는 저 강변 모퉁이까지 걸어와서 새삼(=토사자) 덩굴속 모래밭에 감추어진 물새알을 찾기도 했습니다. 때로는 자갈 밭에서도 찾았습니다. 그런 날들이 이젠 다 꿈결 속에서 꾸었던 한바탕의 헛된 꿈이 되었습니다. 

 

 

 

 

 오늘 내가 이길을 걸어보는 데는 몇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이유를 다 밝히긴 어렵지만 한가지는 벌써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친구의 흔적을 조금이나마 찾아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스물도 안되어서 죽었으니 너무 안타깝습니다. 중학교 다닐때 어쩌다 한번 본 것이 마지막이었습니다.  

 

  

 

 그는 이 길을 걸어서 학교를 다녔습니다. 사는 동네가 달랐기에 하교길 중간에서 항상 헤어져야 했기에 더욱 더 아쉬운 것입니다. 결국 그와 나는 인생길 초입에서 헤어진 셈이 되었습니다.

 

  

 

 

해마다 피는 들꽃은 강변 길에 가득하건만 한번 간 사람들은 어찌된 영문인지 영영 돌아오지를 않았습니다. 못오는 것인지 안오는 것인지......

 

(다음 글에 계속)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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