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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08 일본문명의 시원-큐슈(完)

집으로

by 깜쌤 2008. 4. 25.

 

 하카다 역에는 11시 25분 도착이니 유휴인에서는 기차로 약 두시간 20분 정도 걸린다고 보면 된다. 점심먹고 항구까지 걸어가면 딱 알맞은 시간이다. 하카다 항구에서는 오후 2시 반에 부산으로 가는 배가 출발한다. 물론 2시에 떠나는 배도 있지만 우리가 탈 배는 그보다 30분 늦은 배이니 좀 더 여유가 있는 것이다.

  

 

 

 

 기차는 정확한 시각에 하카다 역에 도착했다. 일본 여행의 좋은 점은 삐끼(호객꾼)가 없다는 것이다. 여행자 입장에서는 조금 불편한 것은 있을지 몰라도 너무 편하고 좋다.

 

 

 

 

 우리는 지하도를 건너 똑바로 걸었다. 이 길은 저번에 걸어왔던 길이 아니던가? 

 

 

 

 우리 한국인이 가지고 있는 정서로 보면 정말 인정하기 싫은 일 가운데 하나이지만 내가 보기엔 일본은 진정한 선진국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한다. 선진국의 요건 가운데 하나는 국민들의 의식 수준이 높다는 것이다.

 

 

 

 

 언제쯤 되면 우리가 그들의 의식 수준을 따라 잡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내가 보기로는 한세대 정도쯤 뒤진 것 같다.

 

  

 

 

 나는 일본예찬론자가 아니다. 굳이 내 성향을 밝히라고 요구한다면 극일주의자라고 답변하고 싶다. 나로 하여금 세상을 넓게 보도록 영향을 만들어준 인물은 미국인 변호사였던 노먼 M 도프만씨였다. 배낭여행자였던 Norman M Dorfman씨를 만난 것은 1980년 12월 31일 저녁 경주 우체국 앞에서였다고 기억한다.

 

 

 

 

 그 분은 7개 나라의 말과 문자를 이해할 수 있는 분이셨다. 정말 존경스러운 분이셨다. 내 이름자 가운데 중간자를 한자(漢字)로 비슷하게 쓸 수 있는 분이었으니 그 실력은 정말 놀랄만하다.

 

 

 

 

 그때만 해도 우리나라의 보통사람으로서 해외로 나가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굳이 나가려면 고급 공무원이나 외교관 신분이 되든지 아니면 종합상사 직원이 되든지 해야했다.  그 양반은 전세계를 여행하면서 나에게 많은 엽서를 보내주셨다.

 

 

 

 

 

 내가 해외여행의 꿈을 키우게 된 것은 그 분의 영향이 컸다. 이젠 소식이 끊어져 버렸지만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다. 그 분은 스스로를 코스모폴리탄이라고 하셨다. 지금의 내가 그렇다. 나는 세계주의자이며 평화애호자이며 환경주의자임과 동시에 낭만주의자라고 스스로 평가하고 싶다. 

 

 

 

 

 남이 그렇게 여기지 않더라도 나는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일주일간의 단기 여행이었지만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 처음부터 배우려고 간 여행이었으므로 충분히 목적을 달성했다. 여행 기간으로만 본다면 성에 차지 않는다. 그 비싼 비행기 요금 때문에라도 본전을 뽑기 위해 보통 한번 나가면 한달을 기본으로 해서 돌아다니며 보고 듣고 배우다가 들어왔는데 이번은 고작 일주일이었지 아닌가? 

 

 

 

 

 

 나는 그들 일본인의 실력을 알았고 장점을 찾았다. 내가 찾아낸 그것을 이젠 자기화하면 된다. 배울 것은 배우되 꼭 지키고 가꾸어 나가야 할 내 것은 지켜야 하는 것 아니던가? 

 

 

 

 

 앞으로 일본은 3번을 더 가볼 생각이다. 단기여행으로만 말이다. 다음번에는 오사카, 나고야, 교토를 중심으로 하는 칸사이(關西)지방을 볼 예정이다. 그 다음에는 동경(토쿄)을 중심으로하는 칸토오 지방이다. 그 다음은 당연히 북해도 지방이고.....   오키나와는 좀 더 두고 가볼 생각이다.

 

 

 

 

 점심으로는 라면을 먹었다. 하카다 라면으로.....

 

 

 

 

 하카다 항구로 걸어가다가 부산에서 일본으로 배를 타고 건너온 미국인을 만났다. 그에게 길을 가르쳐주고 다시 걸어서 항구에 도착하니 거의 1시가 되었다.

 

 

 

 

 이젠 출국수속을 밟으면 된다. 

 

 

 

 내 배낭이다. 다른 하나는 수재학생 것이다. 나는 항상 배낭덮개를 덮어 씌워서 매고 다닌다. 그래야 배낭끈에 다른 사람이 걸리거나 물건이 걸려 떨어지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아울러 배낭껍질을 빠는 것이 배낭 전체를 세탁하는 것보다 쉽기 때문이기도 하다.

 

 

 

 

 1층에서 체크인을 하기 전에 미리 승선신청서를 작성했다.

 

 

 

 

 초보자를 위해, 그리고 나 자신을 위해 승선아내문을 찍어서 올려둔다. 그대로 따라하면 되므로 누구나 쉽게 여행 할 수 있을 것이다.

 

 

 

 

 출국신고서도  미리 작성해두고......

 

 

 

 

 항만 사용료도 내고...... 부두세 500엔을 지불하기 위해 마지막까지 500엔 정도는 남겨두어야 한다. 그 돈이 없으면 다시 환전해야 하는 비극을 맞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출입국 관리소를 지나가서 배를 탔다.

 

 

 

 

 배는 2시 반이 되자 정확하게 출발했다. 부산까지는 2시간 하고도  55분 정도 걸릴 것이다.

 

 

 

 

 대마도를 지나고 나자 드디어 휴대전화가 켜지기 시작했다. 비로소 대한민국 생활권 안에 들어온 것이다. 입국 수속을 밝고 나와서 S대 약대에 다니는 수재 총각과 헤어졌다.

 

박군!

정말 고마우이. 너무나 멋진 비서였고 동료였다네. 거듭거듭 고맙다네.

 

내가 생질 정도로 생각하는 수재청년과 헤어지고 난 뒤 지하철을 타고 고속버스 터미널로 향했다. 그리하여 15번째 배낭여행을 끝낸 것이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