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지도 않은 세월 동안 살면서 그동안 많은 아이들을 가르쳐보냈습니다. 다른 분들은 어떤지 모르지만 돌이켜 가만히 생각해보면 졸업시켜 보낸 아이들에 대한 미안함과 더 잘 해주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만이 가득합니다. 며칠전에 전화를 받았습니다. 1980년대 초반에 졸업한 학생이었으니 이젠 마흔이 되었을터인데 한번 만나뵙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바른 말이지 그런 전화를 받으면 반가움 반, 미안함 반으로 채워지고 맙니다. 어찌해서 나처럼 어리버리하고 모자라고 부족했던 선생을 기억해서 불러주는가 싶은 미안함과 너무나 오랜 세월 동안 만나볼 수 없었던 얼굴들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솟아오르는 반가움 반으로 채워진다는 이야기입니다.
13일 목요일, 어제 저녁에 약속 장소에 나갔더니 그때 가르친 여자아이들(?) 3명이 나와 있었습니다. 모두 다 한눈에 알아보았습니다. 얼마나 털털하게 이야기를 잘 하는지 모처럼 웃어보았습니다. 사실 저는 크게 소리내어 웃는 사람이 아니어서 그냥 씨익 웃으면 그게 정말 우스운 것인데 어제는 씨익 웃는 정도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모두들 나름대로 터잡고 잘 살아가고 있으니 흐뭇하고 대견스러웠지만 아파서 병원 생활을 오래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마음이 아팠습니다. 병원 생활을 하느라고 힘들었을터인데도 밝게 받아들이고 환하게 웃어주는 아줌마(?)들 수다에 시간 가는 줄을 몰랐습니다.
식사가 끝나갈 무렵 부부 의사로 점잖게 살아가는 제자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세월이 흘러 이젠 모두가 주부가 되고 듬직한 가장이 되어있으면서도 예전의 개구쟁이들 마냥 이야기를 주고 받는 모습들이 왜 그리 보기 좋았던지 모릅니다.
너무 오래 앉아 있으면 그렇다 싶어서 적당한 시간에 일어나기로 했습니다. 제가 자리를 비워주어야 자기들만의 이야기를 쏟아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이 들고 보니까 그런 판단을 잘 해야 한다는 사실을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어제도 저녁 일정이 바빴지만 일부러 시간을 늦춰가면서 기다린 보람이 있어서 그리운 얼굴 하나라도 더 볼 수 있었으니 너무 행복했습니다. 가르쳐 보낸 아이들이 사회 곳곳에 나름대로 터를 잡고 행복하게 잘 살아가는 모습들이 왜 그리 보기 좋은지 모르겠습니다.
나이들면 어린 아이들만 귀여워지는 줄 알았는데 제자들이 잘 된 모습을 보는 것도 인생의 커다란 즐거움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을 느껴봅니다. 정말이지 모두들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잘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서 자기 재능과 소질을 살려 아름다운 일을 열심히 해나가며 살기를 빌어봅니다.
부모님들께 안부를 전해달라는 당부를 못하고 왔으니 또 실수를 한 셈이 되었습니다. 제 사는 것이 이렇게 헛점 투성이입니다. 갑자기 저도 동문수학(同門修學)했던 초등학교 동기들 생각이 떠 올랐습니다. 모두들 다 잘 살고 있겠지요.
오랜 이별 뒤의 짧은 만남이었지만 진정 그 순간만은 행복했었습니다.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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