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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생 - 그리 허무한게 아니었어요. 살만했어요
경주, 야생화, 맛/경주 돌아보기 Gyeong Ju 1 (完)

보림선원

by 깜쌤 2008. 1. 18.

거의 2년만에 보림선원(寶林禪院)을 찾아갔습니다. 그곳을 가려고 간 것이 아니라 다른 볼일로 부근에 갔다가 옛일이 생각나서 찾아가 본 것입니다. 자전거를 타고 갔더니 거의 두시간이나 걸렸습니다. 중간에 산에 잠시 올라갔다가 왔으니 시간이 조금 더 걸린 것이죠.

 

 

 

 

 보림선원은 처음부터 선원으로 지어진 것이 아니고 스님이 한 13년 전에 권씨문중으로부터 집을 구입하여 사용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어제는 드디어 스님을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인상이 좋더군요.

 

왼쪽에 자리잡은 회칠한 집 벽면을 타고 오르는 담쟁이도 그대로였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고양이도 그대로였습니다. 2년전에는 처마밑에 달아놓은 메주가 한줄이었는데 올해는 세줄로 늘어났다는 것이 그간의 차이라면 차이이지 싶습니다.

 

 

 

 처마 밑엔 커다란 말벌집이 자리를 틀었습니다. 저 정도가 되려면 꽤 오래 살았다는 말이 되는데요.......   선원을 지키는 개가 컹컹 짖어대니 외국인이 얼굴을 내밀고 한마디 해왔습니다.

 

"누구세요?"

 

혼자서 선원 앞을 구경하고 있는데 옷매무새를 단정하게 다잡은 스님이 나오셔서 설명을 해주기 시작했습니다. 찾아온 손님 말리지 않고 가는 손님 붙잡지 않는 그런 모습이지만 정감이 묻어납니다.

 

 

 

 

 

 

2년전에 이곳을 방문했을 때 차를 한잔 대접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오스트리아 출신의 외국인을 본 기억이 나는데 그 분이 아직도 계시는가 봅니다. 아까 문을 열고 내다본 분 얼굴이 틀림없습니다.

 

비자 문제로 잠시 출국을 했다가 다시 입국해서 함께 생활을 한다고 합니다. 차를 끓여내오던 분은 이제 안계신다고 하니 왠지 섭섭해져 왔습니다.

 

 

 

 

 

차!

개인적으로 제가 참 좋아하는 음료 가운데 하나입니다. 뭐 거창한 다도까지는 모르지만 차 마시는 것 자체를 즐긴다고 보면 됩니다. 혼자서 즐기는 차마시기는 영혼을 살찌우는 것 같습니다. 중국식 다도에 밝던 이 분은 다음에 어디서 만나뵐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벌들도 해마다 찾아와서 집을 키우는가 봅니다. 아마 저 집 속에서 월동을 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제 서재 처마밑에도 3년 전부터 집을 짓기 시작했는데 어느 날 사라져 버리고 안보이더군요. 말벌이 왔다갔다하니 조금 불안하기는 했습니다만 내가 그들을 해코지 하지 않으면 되니까 서로 함께 사는 것도 나쁘지는 않더군요.

 

 

 

 

 

 지난 늦가을에는 족히 2센티미터는 넘을 듯한 대형 말벌 한마리가 분재 사이에서 맥을 잃고 지쳐가기 시작했습니다. 날씨가 추워지니 기력이 다해가는지 움직이지 않기 시작하더군요. 결국 며칠 뒤에 죽었습니다만 녀석의 집이 틀림없이 처마 밑 어딘가에 만들어져 있지 싶습니다.

 

 

 

 

 

 보림선원의 또다른 처마 밑에는 수명을 다한 말벌집이 있습니다. 벌들이 찾아오지 않으니 이젠 새들이 한번씩 와서 쪼기도 한다고 하네요.

 

 

 

 

선원 뒤에는 대나무 숲이 있고 대나무 숲 밑에는 낯선 나무들이 커오르고 있었습니다.

 

"차나무입니다. 제가 가꾼 것인데 좀 큰나무에서 떨어진 씨앗들이 발아해서 자라는 중이지요. 원하신다면 3월 중순 이후에 오십시오. 묘목을 드릴테니 키워보시기 바랍니다."

 

 

 

 

 

결국 3월 말에 다시 한번 가서 차나무 묘목을 구하기로 했습니다. 인상 좋은 스님이 주시기로 한 것이니 잘 길러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넘칩니다.

 

젊었던 날, 절에 가서 한달 이상 머물렀던 기억이 납니다. 높은 곳에서 백두대간 저 너머로 떨어지는 해를 보며 인생무상에 젖어 눈물 지었던 날들이 이젠 아스라히 멀게, 그러면서도 바로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다음에 중국을 가게 되면 정말 귀한 차를 좀 구해와야겠습니다. 요즘 마시고 있는 용정차는 중국에 가서 치과병원 공사를 하셨던 분이 귀하게 구해와서 나누어 주신 것인데 이제 거의 떨어져 가고 있는 중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작설차도 좋았지만 왜그런지 중국차에 이끌리니 이것도 병인듯합니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