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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깜쌤의 세상사는 이야기 : '난 젊어봤다' - 자유 배낭여행, 초등교육, 휘게 hygge, 믿음, 그리고 Cogito, Facio ergo sum
  • 인생 - 그리 허무한게 아니었어요. 살만했어요
사람살이/세상사는 이야기 1 My Way (完)

얼어죽기

by 깜쌤 2008. 1. 17.

 

어리석기로 치자면 나같은 사람도 없지 싶다. 한때 대물(大物) 분재에 대해 욕심을 낸 적이 있었다.  이십여년 전의 일이지만 분재에 대해 아무것도 모를때, 큰 것을 가지고 싶다는 욕심에서 산채(山採)를 가서 여러 나무를 작살내기도 했으니 지금 생각하면 어찌 그렇게 어리석었을까 하는 생각에 아직도 낯이 뜨뜻해진다.

 

 

 

 

 

 

요즘은 작고 앙증맞은 것에 대해 관심이 있다. 산채를 끊은지도 이십여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죄책감이 앞서므로 이제는 실제로 밭에다가 씨를 뿌려서 기른 실생(實生)나무들을 좋아하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화분 크기가 작아서 손바닥에 올려두고 감상할 수 있는 그런 소품(小品)분재를 좋아한다.

 

 

 

 

 

 

작년 여름에 어쩌다가 필라칸사스 소품 분재를 몇개 구하게 되었다. 대구 인근에 소품 분재를 싸게 파는 곳이 있다기에 남에게 부탁을 해서 한 열개 정도를 구했는데 아는 친지들에게 조금씩 나누어주고 이젠 몇개 남지도 않았다.

 

필라칸사스는 겨울이 되어도 잎이 떨어지지 않고 푸르게 있는데다가 빨갛게 달리는 나무 열매가 너무도 강렬한 인상을 풍기므로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다.

 

 

 

 

 

남에게 드릴 때는 나쁜 것을 드리기가 무엇하므로 좋은 것부터 골라드리다가 보니 이젠 어설픈 것 몇개만 남았다. 얕은 분에 심은 소품이므로 추위에 약하다는 것이 문제다. 올 겨울 날씨는 지금까지 그렇게 춥지 않았으므로 밖에 내놓았었는데 어제는 이게 아니다 싶었다.

 

 

 

수요예배를 드리고 밤 10시경에 집에 도착하니 모든게 다 얼어붙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부랴부랴 소품분재들을 보일러실 속으로 옮겨두었지만 걱정이 앞섰다. 오늘 새벽기도를 마치고 돌아올때는 얼굴이 따갑고 화끈거릴 정도로 날씨가 차가와졌다.

 

 

 

 

 

 

굶어죽는 것과 얼어죽는 것 만큼 비참한 게 없다고 하는데 제일 위 사진에 나오는 앙증맞은 녀석은 저번에 물관리를 잘못해서 윗부분을 말려 죽이고 말았다. 얼마나 마음이 아팠는지 모른다. 지난 여름에 조금 신경을 썼더니 새로 잎이 돋아나긴 했지만 이미 나무 형체가 다 망가져 버리고 말았으니 아직도 가슴이 저리다.

 

 

 

 

 

 

 

나무 하나 죽는 것에 대해서는 이렇게 마음 아파하면서도 이 추위속에 굶주리는 이웃들과 북녘동포에 대해 아직도 무덤덤하기만 나는 너무 이중적인 인격을 갖춘 사람임이 틀림없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