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7일 월요일 낮 12시, 그녀와 25년만에 만나기로 한 날이다. 어렵게 어렵게 전화 연락이 되었는데 그녀가 나를 보기 위해 경주로 찾아오겠다고 했다. 가슴 설레도록 기다리던 날이어서 혹시 약속시간을 어길까 싶어 미리 약속장소에 가서 기다리기로 했다. 하지만 만나기로 한 장소가 너무 넓다는 것이 문제다. 약속 시간이 10분정도 지났을 때 내 휴대전화기로 그녀가 보낸 문자가 날아왔다.
"혹시 약속을 잊어버리신 것은 아니겠죠?"
황급히 전화를 걸어 기다리는 장소를 확인하고 찾아가니 그녀가 저만치에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렇다. 거의 25년만의 만남이다.
예전의 얼굴모습이 그래도 제법 많이 남아 있었다. 너무도 오랫만에 만나는 순간이어서 긴장감이 살짝 감돌았지만 그녀의 얼굴 표정이 너무 환하고 편안해서 보는 순간부터 내 마음은 밝아지고 있었다.
"선생님! 그동안 잘 계셨습니까? 정말 너무 보고 싶었습니다."
그녀의 맑은 목소리가 가슴에 와 닿았다. 그녀는 내가 약 25년 전에 졸업시켜 학교를 떠나보낸 제자다. 이젠 30대 후반의 중년 아줌마가 되어 내 앞에 나타난 것이다. 저번에 전화를 해왔을때 부터 그녀는 나에게 점심이라도 한번 대접하고 싶다고 했다. 시가지를 벗어난 곳에 자리잡고 있는 깔끔한 한정식 집으로 가서 음식을 앞에 두고 마주 앉았다.
약 두시간 후 그녀는 몰고 온 승용차를 타고 사라져 갔다.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며 천천히 세월 속으로 사라져 간 것이다. 그녀와의 인연은 내가 그녀를 담임하면서 부터 시작된 것이다. 6학년 다른 여학생들보다 덩치도 훨씬 크고 성숙했던 그녀는 또래의 아이들이 언니로 대접할 정도였는데 거기에는 그만한 사연이 있었던 것이다.
그녀의 가정형편은 담임을 맡으면서 조금씩 알게 된 것이었지만 슬플 정도로 어둡고 한많은 것이었다. 오랜 세월을 지나보낸 뒤 마주 앉은 자리에서 그녀가 풀어서 꺼낸 가정사 이야기는 한편의 장편 소설이었다.
선생을 하다보면 특별히 기억에 나거나 정이 가는 아이가 있는 법이다. 그녀가 바로 그런 경우였다. 사춘기에 접어든 소녀가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옆길로 가지 않고 반듯하게 자라 어엿한 하나님의 일꾼으로 거듭난 것이 믿지지 않을 정도였기에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울컥울컥 치밀어 오르는 감동에 눈가가 젖어 왔던 것이다.
졸업을 한 뒤 그녀는 중학교에 진학해서 두어달을 다니다가 그만 둔 뒤 큰 도시로 가서 회사에 취직했단다. 밤낮을 바꾸어가며 두개의 직장을 다니기도 했고 돈을 모으기 위해 추운 겨울에도 연탄불을 피우지 않고 잠을 자기도 했었다고 한다.
그렇게 하면서도 공부를 계속해서 검정 고시를 치뤄 중고등학교 졸업 자격을 땄단다. 결혼도 해서 두 아이의 엄마가 되고 다시 신학대학을 졸업한 뒤 이제는 반듯한 전도사로 변신한 것이다.
생부와 동생들과의 이별, 남편의 사업 실패로 인한 고민, 하나님을 알게 되고 믿게 되면서 생긴 시댁과의 엄청난 갈등...... 무엇하나 순조로운 것이 없었던 그녀의 과거살이가 가슴을 아리게 만들었다.
어려움 속에서만 헤매고 있었던 그녀의 아픔을 잘 보듬어주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6학년때의 담임 선생을 기억해서 찾아와준 그녀의 마음씨가 그지없이 고맙기만 했다.
세월이 흐르고 보니 참으로 공교롭게도 그녀는 전도사가 되었고 철딱서니 없이 천방지축으로 놀았던 선생은 장로가 되어서 같은 믿음 속에서 만난 것이니 아무리 생각해도 기막힌 섭리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알고 보니 그녀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살고 있었다. 다음에 내가 자동차라도 구한다면 왕복 두시간 정도로 그냥 간단히 다녀올 수 있는 그런 곳에 살고 있으니 괜히 마음이 든든했다.
그녀를 보내고 나서 난 걸어서 시내로 들어왔다. 곧 이어 만나야 할 사람과 나누어야 할 이야기 내용도 미리 정리할 겸 천천히 걸어나온 것이다. 강변으로는 겨울답지 않은 포근한 바람이 스쳐지나갔다. 이제 서너달만 있으면 이 길도 벚꽃으로 환하게 덮히지 싶다.
그녀는 나에게 책을 한권 선물로 주고 갔다. 내가 방랑벽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그리스 섬들에 관해 써놓은 아름다운 책을 주고 간 것이다. 그녀는 몇년 전에 그리스를 다녀왔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나도 에게 바다에 자리잡은 그리스의 섬들을 돌아다닌 것이 벌써 십여년 전인 것 같다.
방학이 되어도 바쁘다며 집에 내려오지 못한다는 딸 아이가 그리스에 간다고 했음을 기억해 냈다. 갑자기 딸아이가 보고 싶었다. 작년엔 남동생과 엄마와 함께 싱가폴을 배낭여행으로 다녀오더니 올해는 친구와 함께 유럽을 다녀오겠다고 했다.
오늘 화요일은 오후에 들어 와서 연탄불 피운 방바닥에 배를 깔고 엎드려 책을 읽었다. 요즘은 자주 엎드려 책을 읽는다. 어려서 부터 길들인 익숙한 습관이다. 그리스의 유명한 섬들에 대해서 워낙 자세하게 써둔 책이어서 정겹기만 했다.
그녀는 나에게 자기 동네 부근에 있다는 야생화 학습장에서 채집한 꽃씨 봉투를 건네주었다. 내가 채송화 좋아하는지를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겠다. 나는 백일홍과 채송화, 공작초와 나팔꽃 같은 수수한 꽃들을 좋아한다. 올 봄 작은 화분에 가득 길러 서재 앞 분재를 놓아둔 부근 여러 곳에 깔아두고 즐겨보아야겠다.
아무리 바빠도 아침마다 오늘은 채송화 꽃이 몇송이 필 것인지를 확인해 보아야겠다고 생각하니 너무 행복하기만 하다.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 이후로는 못해본 습관이니 이 기회에 다시 해보고 싶었다.
인터넷 자료 검색을 통해 풍접초 모습을 미리 살펴두었다. 풍접초는 무꽃 종류들처럼 십자화 모습으로 피는 모양이다. 아직 겨울인데 벌써부터 왜 이리 봄이 기다려지는지 모르겠다. 그녀와 함께 졸업한 아이들은 이제 30대 중반으로 접어 들었을 것이니 한참 사는 재미를 느낄 나이가 되었으리라.
그녀와 헤어지고 난 뒤 만난 몇몇 사람들은 나를 너무 힘들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런 중에도 가끔씩 경험하는 이런 아름다운 만남 때문에 나는 사는 멋을 느낀다. 오늘 새벽, 나는 그녀의 가족과 주위의 모든 분들이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간절히 빌어주었다. 앞으로도 자주 빌어주리라.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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