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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야생화, 맛/경주 돌아보기 Gyeong Ju 1 (完)

새로 발견된 열암곡 부처는 어디에?

by 깜쌤 2007. 10. 3.

 

어디서 많이 본 사진이 아니던가요? 올해 9월 11일 경 전국 신문면과 텔레비전 뉴스를 장식한 화제의 사진입니다. 아직까지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국민일보 기사를 인용해서 소개해 봅니다. 신문 기사를 미리 보시는 것이 전체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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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 사회]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남산 열암곡에서의 발굴 조사 중 최근 발견한 통일신라시대 마애대불의 얼굴과 전체 윤곽 등이 처음으로 바깥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 학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문화재청은 "지난 5월 발견된 통일신라시대 대형 마애불상의 상호(相好·얼굴)와 전체 모습을 모두 확인했다"며 "무게 약 70t의 화강암(약 250×190×620㎝)으로 제작된 이 불상은 한 면을 고부조(高浮彫)한 형태"라고 10일 밝혔다. 발견 당시 이 불상은 조각된 암석이 원래 위치에서 경사면을 따라 앞쪽으로 넘어진 상태였고, 따라서 불상의 자세한 모습은 알 수 없었다.

문화재연구소는 이에 따라 최근까지 추가 작업을 통해 불상의 대좌와 양 다리, 가슴과 어깨에 이어 얼굴까지 확인하고 이날 공개했다.

불상은 머리에서 발끝까지 460㎝로 발 아래 연화대좌가 100㎝, 전체 높이는 560㎝에 이르는 대형 마애불인 것으로 드러났다. 불상은 또 육계(부처의 정수리에 불룩 솟아 오른 부분)가 높고 민머리(素髮)로, 타원형의 얼굴에는 오똑하게 솟은 코와 아래로 내리 뜬 길고 날카로운 눈매, 또 도톰하고 부드럽게 처리된입술 등이 자세하게 표현돼 있다.

특히 불상의 귀는 발제선(髮際線·머리털이 난 끝선)에서 어깨에 이를 정도로 매우 크며, 평면적으로 처리돼 있어 지금까지의 불상과는 다른 형태다. 이외에도 목에는 삼도(三道)가 입체적으로 표현돼 있고, 어깨는 넓고 가슴은 당당하게 편 모습이다.

이 불상은 이밖에도 4등신으로 몸에 비해 머리부분이 크게 표현돼 예불하는 신도가 마애불을 우러러 볼 때의 비례감을 살린 시각적인 효과를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1천300년 동안 땅속에 묻혀 있었지만 손상되지 않고 원형에 가까운 모습이어서 상당한 관심을 끌어왔다. 지금까지 경주에서 발견된 대부분의 불상은 상당부분 마모되거나 훼손된 형태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지병목 경주문화재연구소장은 "불교 조각사에서 볼때 이 불상의 볼륨있는 얼굴과 날카로운 눈매에서 느껴지는 엄숙함은 통일신라 불상의 전형적인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며 "따라서 이 불상은 8세기 후반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삼화령 삼존불과 배리 삼체석불, 석굴암 본존불로 이어지는 신라 불상의 큰 흐름을 이어가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고 밝혔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제휴사/ 영남일보 경주=임준식기자 juns@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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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천절인 오늘 평소 친하게 지내는 금강초롱님(경주 사시는 분입니다)과 함께 남산 열암곡에 가보기로 했습니다. 경주에 사시는 분들이라고 해도 열암곡이 어디쯤 있는지를 쉽게 알아내시는 분은 드물 것입니다.

 

 

 

 보통 경주를 방문하시는 분들은 포석정 계곡이나 삼릉계곡, 혹은 용장 계곡이나 칠불암 계곡 정도를 찾습니다. 사실 그게 남산 탐방의 정석이기도 합니다. 지금 우리가 가는 곳은 남산의 남쪽 끝자락쯤 되기 때문에 일반인들은 거의 가지 않는 곳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대중매체에 알려지고 난 뒤로 워낙 많은 사람들이 방문해서 그런지 올라가는 입구 산길부터가 반들반들해져 있었습니다. 남산 구석구석 지리에 환한 금강초롱님과 함께 가므로 제가 훨씬 편해지게 생겼습니다.

 

 

 

 우린 조금 돌아가기로 했습니다. 송이 채취를 위해 줄을 쳐놓은 속으로 들어가서 산길을 걷습니다. 이맘때쯤에는 남산이라고 해도 함부로 아무 곳에나 들어가면 송이버섯 도둑으로 오해 받을 수 있으므로 조심하시는게 옳다고 봅니다.

 

 

 

 대나무 숲을 지나고 솔밭 사이를 걸어 갑니다. 청설모와 다람쥐가 함께 휴식을 취하다가 사람을 보고는 잽싸게 나무에 올라갑니다. 꿀밤나무가 많은 곳이니 바닥에 꿀밤알주머니가 수북했습니다. 꿀밤이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녀석들이 저장했거나 먹어치운 것 같습니다. 

 

 

 

 불상이 아무렇게나 굴러 다니는 곳도 있습니다.

 

 

 

 중간에 숲이 조금 트이면서 사방을 살펴보기에 적당한 전망대(?)가 나타났습니다. 당연히 쉬면서 아래를 굽어 봅니다. 저 멀리 아득하게 치술령이 있는 산이 나타납니다. 신라의 충신이었던 박제상과 망부석 전설 아시죠? 그 이야기에 등장하는 치술령 말입니다.  

 

 

 

 

 

 들판에는 황금물결이 가득합니다. 이제 벼가 영글어 가는 막바지 철이기도 합니다.

 

 

 

 잔대꽃을 보았습니다. 어렸을때 잔대를 캐먹었던 일들이 생각나네요. 보라색 자그마한 잔대꽃이 마음을 아리게 만듭니다.

 

 

 

 며느리밥풀꽃도 등장합니다. 계절을 밝혀주는 야생화가 사방에 흐드러지게 피어있다는게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 모릅니다.

 

 

 

 드디어 최근에 만들어진 원길과 마추쳤습니다. 사람들이 하도 밟아서 그런지 도로가 된 것 같습니다. 저같은 사람까지 한번 와 볼 정도이니 그럴 수밖에 없지 싶습니다.

 

 

 

 

 이제 거의 다 왔습니다. 원래 이 부근에는 사진에서 보는 것과 같이 빽빽한 대나무 숲이 자리잡고 있었다고 합니다.

 

 

 

 소나무 사이에 자라는 대나무를 제거하고 잡목과 풀들까지 반듯하게 정리를 했습니다. 여기서부터는 정해진 길로만 다녀야 합니다.

 

 

 

 

 

 통로를 알기 쉽게 표시해두었으므로 길만 따라가면 됩니다.

 

 

 

 누워 버린 바위 앞에 커다란 부처상을 프린트해서 걸어두었습니다. 바로 저런 모습의 부처를 새긴 바위가 누워 있다는 것이죠.

 

 

 

 

 

 카메라를 대고 찍어 보았습니다. 플래시를 안터뜨리고 찍는게 낫지 싶습니다. 이게 현재의 모습입니다.

 

 

 

 녹색 철망으로 감싸둔 바위 밑에 부처가 새겨져 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원래는 바위가 서 있었던 모양인데 앞으로 넘어진 상태라고 보는 것이죠.

 

 

 

 

 

 넘어져 있는 바위를 반대편에서 찍어보았습니다.  이젠 이해가 잘 되지죠?

 

 

 

 

 절터라고 짐작되는 부분까지 모두 발굴 중입니다.

 

 

 

 나무들은 가만두고 발굴을 하는 모양입니다. 푸른 천막 밑에도 문화재가 하나 있다고 합니다.

 

 

  

 부근엔 화강암 바위들이 가득합니다. 바위 틈 사이로는 며느리 밥풀꽃이 그득합니다.

 

 

 

 

 몰려든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있습니다.

 

 

 

  바위의 뒷부분입니다.

 

 

 

 

  초록색 철망 안에 부처의 얼굴이 새겨져 있습니다.

 

 

 

 

 절터에서 출토된 기와 조각들을 가지런하게 정리를 해두었더군요.

 

 

 

 나무 뒤로 넘어진 바위가 보입니다.

 

 

 

 

발굴지 바로 옆에 있는 자그마한 도랑에는 맑은 물이 흐릅니다. 그냥 마셔도 될 정도로 깨끗합니다. 

 

 

 

 

 푸른 색 비닐 밑에 이 유물이 있는 모양입니다.

 

 

 

 다시 발걸음을 돌려 내려오다가 중간에 쉬면서 찍은 아름다운 우리 산하의 모습입니다. 정말 가을이 발치까지 다가와 있다는 생각이 저절로 듭니다.

 

 

 

  

  

 넘어진 모습으로 있는 사진을 세워보았습니다. 원래는 이런 모습이었지 싶어서 말이죠. 내려오는 길에 보니까 많은 분들이 산으로 오르고 있었습니다. 예전에는 등산객이 드문 길이었지만 차와 사람으로 붐비는 곳이 되었습니다.

 

삼릉입구까지 차를타고 와서는 남산명물 우리 밀로 만들었다는 칼칼한 칼국수를 먹고 다시 시내로 들어왔습니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