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회때 지휘대 위(혹은 조회대 위)에 올라선 교사가 마이크를 들고 줄을 세우는 모습이나 말을 많이 하는 모습은 사실 매끄럽지 못합니다. 우리나라 교육 현장의 특성상 운동장 곳곳에 성능 좋은 스피커 시스템이 설치되어 있는 것이 아니어서 소리가 골고루 전달되지도 않는 상황에서 안내방송이나 말이 많으면 짜증이 날 수밖에 없습니다.
아이들도 집중하지 않고 있으니 이래저래 난감한 상황이 벌어집니다. 그러므로 손신호와 풍물패 신호로만 게임을 진행하도록 계획을 세워 보는 것도 의미가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장구, 징, 꽹가리, 북으로 구성된 풍물패 소리의 위력은 대단한 것이어서 어지간한 소음 속에서도 의사전달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다르게 생각하면 풍물패의 소리 자체가 소음 공해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적당하게 사용해서 관중들에게 짜증스럽게 들리지 않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풍물패는 아이들에게 지원을 받아서 따로 연습을 시켜둡니다. 제가 사용하는 리듬은 오직 두가지 뿐입니다. 전통리듬에 충실하여 많은 종류의 리듬을 가르칠 여유와 기능이 없거니와 아이들도 수많은 신호를 다 외울 수 없으므로 가장 간단한 소리신호만 제공하여 순서와 맞추어 외우도록 하는 것입니다.
풍물패를 만들때 상쇠만 신경써서 고르도록 하고 나머지는 아이들이 원하는 곳에다가 배치를 하면 됩니다. 보통 한 14명 정도만 해도 훌륭하게 진행할 수 있습니다. 꽹가리를 치는 상쇠 2명, 징 2명, 북 6명, 장구 4명 정도만 되어도 멋지게 할 수 있습니다.
교사의 신호가 없이는 절대 악기 소리를 못내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음악 시간 같은 때도 아이들은 마음대로 악기소리를 내는데 그렇게 소리 내는 것을 방치하면 쉬는 시간이나 수업시간에 엄청 소란스러워지므로 악기를 다룰때는 어떤 일이 있어도 함부로 소리를 못내게 통제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풍물패가 들려주는 첫번째 리듬은 아이들이 손을 잡고 겅중겅중 뛸때 사용하는 것이고 다른 리듬 하나는 그냥 가볍게 두드려서 정적인 행동을 할때 사용하도록 합니다. 입장하는 대형으로 모인 아이들과 풍물패는 모두 조회대 위에 서있는 교사의 손만 보고 있도록 해둡니다.
풍물패의 위치는 입장하는 공간만큼 띄어서 양쪽으로 나누어 서있다가 아이들이 입장하면 가운데로 모여들게 하면 됩니다. 교사가 손을 4박자 정도 젓다가 밑으로 크게 내리면 풍물패가 소리를 내게 하면 됩니다.
그러면 아이들이 그 소리에 맞추어 손을 잡고 입장하게 되는 것이죠. 풍물패의 소리에 맞추어 들어온 아이들은 운동장 네곳에다가 커다란 원을 4개 만들게 됩니다. 사진을 잘 보면 오른쪽에 원 하나가 만들어지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당연히 왼쪽 뒤에도 원이 하나 만들어 집니다.
다시 오른쪽 앞에도 원이 하나, 왼쪽 앞에도 원이 하나 만들어지게 되니 4개가 됩니다. 이런 식으로 하면 아이들에게 줄을 맞추라느니 하는 식으로 잔소리를 할 필요도 없고 순서만 외워서 그냥 놀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남보기에도 편하고 시각적인 효과도 좋습니다.
여자아이들은 운동장에 나올때 종이 가방에 한복을 담아오면 되니까 크게 준비물이 필요한 것도 아닙니다. 운동회날 한복을 입을 것이라는 이야기는 적어도 한 열흘전에는 해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빌려입기라도 할 수 있습니다.
한복값이 만만찮으므로 반드시 허리에 끈을 묶어서 치마를 밟지 않도록 당부를 해 두어야 합니다. 옷은 운동장에서 체육복 위에 그냥 덧입도록 하면 됩니다. 고름 매는 법은 집에서 미리 연습해 보도록 하면 되므로 크게 신경 쓸 것이 없습니다.
이런 경기를 해보면 아이들은 서로 공주를 하려고 나서는데 몸무게 30킬로그램 미만의 아이들 중에서 고르면 되고 공주를 모시고 안전하게 다리를 건너도록 도와주는 시녀는 덩치가 큰 여학생들 중에서 골라 뽑으면 됩니다.
치맛바람이 센 학교의 경우 공주 후보로 전교회장단 중에서 뽑을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만 이제는 그런 습관은 버릴 때가 되었습니다. 기본 원칙을 잘 세워서 소신껏 운영하면 말썽이 생길 소지가 없습니다. 혹시 압력이나 청탁이 들어와도 들어주면 안될 것입니다.
연습과정에서도 아이들이 원을 만들어서 달팽이 모양으로 감았다가 푸는 연습을 하기위해 전체 아이들을 데리고 연습할 필요없이 제일 앞에 줄을 서는 여자 아이 4명만 불러서 차근히 설명을 해주고 나머지 아이들은 앞사람만을 따라 가게 하면 됩니다.
저는 이 글 속에서 철저한 능률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짜증나고 교사는 교사대로 지쳐버리는 그런 연습은 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최소한의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여 최대의 효과를 거두는 경제원리를 학교 교육현장에서도 써먹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아이들이 손을 잡고 신나게 뛰며 놀다가 리듬을 바꾸어주면 절을 하도록 해줍니다. 리듬을 바꾸어 주는 것은 교사가 조회대 위에서 전체상황을 봐가며 다른 손동작으로 표시해주면 됩니다. 결국 풍물패와 교사가 손발을 잘 맞추어 가야하는 것이고 풍물패는 상쇠의 지휘에 따르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아이들이 큰절을 하고 일어서면 다시 원래의 리듬으로 바꾸어줍니다. 역시 신호는 교사의 손짓에 따라 풍물패가 이끌어나가 됩니다.
이런 경기는 연습 시간이 적게들고 줄세우기나 다른 준비물을 갖추는데 대한 부담이 적은데다가 상황에 따라 적당하게 시간을 조절할 수가 있어서 편리합니다. 아이들도 순서만 알면 되니까 즐기는 기분으로 하게 됩니다.
다시 한번 더 놀다가 인사를 할 때처럼 리듬을 바꾸면 이번에는다리를 만듭니다. 시각적인 효과를 위해 본부석 쪽으로 보도록 하고 운동장 가운데 선에서양쪽 끝머리로 다리를 만들게 하면 됩니다.
공주에게는 허리띠 부근을 밟도록 지도해두어야 하고 절대로 못뛰게 이야기를 해둡니다. 그래야 허리를 다치지 않습니다. 공주가 허리위로 올라서지 못하면 덩치 큰 시녀가 올려주면 됩니다. 이때 다리를 만드는 아이들은 허리를 펴지말고 잠시 기다리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실제로 해보면 아이들은 자기편 공주가 어디쯤 가고 있는가 싶어 굉장히 궁금해합니다. 공주가 시녀의 도움으로 다리를 다 건너면 자기 줄 제일 뒤 원래 자리로 가게하면 되고 공주가 다 건너고 난 뒤에는 풍물패의 리듬을 정지시켜 버립니다. 그러면 다리를 만든 아이들이 모두 다 허리를 펴서 지휘대의 교사를 보게 합니다. 승패를 알려 주어야하니까 허리를 펴게 하는 것이죠.
교사는 공주가 다리를 건너는 상황과 전체적인 모습을 살펴보고 이긴쪽을 향해 팔을 뻗어줍니다. 그러면 이긴 쪽에서는 기뻐하는 함성을 지르고 진 쪽에서는 축하를 해줍니다. 교사의 신호에 따라 풍물패가 다시 인사할 때와 같은 리듬을 쳐주면 아이들은 손을 잡고 퇴장 준비를 했다가 리듬이 바뀔때 손을 잡고 뛰면서 퇴장을 하면 됩니다.
응원석에 들어갈 때까지 손을 잡고 가서 풍물패의 리듬이 끝나면 옷을 갈아입고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면 됩니다. 풍물패는 응원석 제일 앞에 가서 앉으면 끝나게 되는 것이죠. 그러면 이제 감이 잡힐 것입니다. 남학생 줄다리기도 이런 식으로 응용하여 재미있게 꾸며 나가면 될 것입니다.
운동회를 재미있게 하는 방법은 정말 다양하게 존재합니다. 하지만 우리 교사들 생각과 경영자의 사고방식이 바뀌어지지 않는 한 우리들은 예전부터 내려오는 구태의연한 모습을 재연하는 것으로 만족하며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이 글속에서 아이들을 효과적으로 다루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드리려고 한 것이지 종목에 관한 자랑을 하지 않으려고 했다는 사실을 이해해주기 바랍니다. 아이들을 잘 다루는 교사가 다 일류교사는 아니지만 일류교사가 될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고맙습니다.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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