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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교육, 초등교육/내반 아이 일류만들기

꾸중도 요령이 필요하다 2

by 깜쌤 2006. 5. 2.

 

<이해를 돕기 위해 저번 글의 마지막 부분을 다시 소개합니다)

 

깜쌤 : (손가락으로 책상을 가리키며) 이게 뭐지?

아이 : (당연하다는 듯이) 책상!

 

제가 이런 대화의 예를 드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이런 대화는 학교에서 흔하게 벌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선생님들은 이런 대화를 하면서도 무엇이 문제인지를 깨닫지 못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이 대화에서 벌어지고 있는 잘못은 무엇일까요?  

 

첫번째, 아이의 말버릇입니다. 이 아이는 지금 어른들(선생님께조차도)께 반말 하는 것을 당연히 여깁니다. 아마 자기 집에서 부모님과 그런 식으로 대화를 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두번째, 이 아이에게는 벌써 예절이라는 단어가 실종되어 가고 있는 중입니다. 말 한두마디 나눈 대화를 가지고 그렇게 함부로 단정한다는게 너무 하지 않느냐하고 말씀하실 수도 있겠습니다만 몇마디 대화를 해보면 그 분위기에서 무엇인가 느끼는게 생깁니다.

 

이대로 두면 이런 아이들은 커서 자기만 알게 됩니다. 집에서 최고였으니 학교와서도 최고 대접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어디에서나 남으로 부터 대접을 받아야 직성이 풀립니다. 남이 그렇게 안해주면 자기를 무시한다고 그러기도 하고 어른이 되면 자기는 훌륭한 인재이지만 사회가 나를 몰라준다는 식으로 자기중심적으로만 생각하고 행동할 수도 있습니다.

 

남과 함께 사는 법을 모르므로 자기중심적이 되고 버릇없이 행동하게 되는거죠. 그러므로 안하무인격이 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해외에 나가보면 그런 어글리 코리언들을 무수히 만나게 되더군요.

특히 힘깨나 쓴다는 사람들과 돈깨나 있다는 사람들이 그런 경향이 강하더군요. 봉사와 섬김, 나눔과 타인 존중, 사랑과 이해보다는 자기만족과 자기과시, 교만과  아집으로 뭉친 인생을 살게 될 확률이 높아진다는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다시 원래의 대화로 돌아갑니다.

 

깜쌤 : (책상을 가리키며) 이게 뭐지?

아이 : (당연하다는듯이) 책상!

 

이런 반응이 나오면 아이를 쳐다보며 한마디 합니다.

 

깜쌤 : 그렇게 반말 하는 법을 어디서 배웠니? 집에서 부모님께도

          그런 식으로 말하니?  다시 한번 해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책상을 가리키며) 이게 뭐니?

아이 : 책상입니다.

깜쌤 : 잘 아네. 그렇게 잘 하면서 아까는 왜 그렇게 대답했니?

         (이번엔 걸상을 가리키며) 이건 뭐지?

아이 : 걸상입니다.

 

학생은 그자리에서 즉시 행동과 말을 수정한 것입니다. 저는 이런 것이 교육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지금까지 아이와 한 대화를 자세히 보면 반드시 아이가 그런 식으로 대답이 나올 수밖에 없도록 유도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것이 학생들과 대화하는 요령이라고 생각합니다. 자기 스스로 자기 잘못을 찾아가도록 대화를 해나가는 것이죠. 소크라테스의 대화기술이 어땠는지 저는 잘 모르지만 자기모순을 자기 스스로 알아가도록 하는 것이 아이들과 나누는 대화의 기술 아닐까요? 행동을 잘못한 아이에게 이제 마지막 결정타를 날립니다. 항상 좋은 모습으로 끝을 맺도록 하는 것이 좋습니다.

 

깜쌤 : (다정스럽게) 내가 보기에 너는 오늘 어쩌다가 실수를 한 것

         같구나. 평소에는 행동을 아주 잘 하는 것 같은데 말이다. 살다가

         보면 그럴 수도 있단다. 다음에는 행동을 잘 하도록 하여라. 

 

위 사진에 보이는 아이들은 체육대회에 응원을 나갔다가 자리를 지키지 않고 나와서 군것질을 하는 중에 저에게 현장을 잡힌 아이들입니다. 제가 담당하는 학년의 아이들은 어지간하면 정해진 자리를 벗어나지 않습니다. 저를 잘 모르는 아래 학년의 아이들이죠.

 

이럴때도 그 자리에서 꾸중을 하지 않습니다. 그냥 슬쩍 사진만 찍어두었다가 하루나 이틀 뒤에 교실의 프로젝션 티비에 사진을 띄워놓고 아이를 확인한 뒤 불러와서 화면에 나타난 자기 사진을 보여 줍니다.

 

대개의 아이들은 그정도만 해도 얼굴색이 변합니다. 얘들이 돌아가서 어느 선생님이 무섭다느니 어떻다는니 하는 소문을 내고 다니죠. 그러니 저는 가만히 앉아서 아이들 생활지도를 다 하는 셈입니다.

 

 

 

결국 어제 오늘 이야기의 핵심은 이것입니다. 아이들을 꾸중하거나 잘못을 교정할때 교사가 먼저 성질을 내는 것은 옳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교사가 화를 낸 상태에서 아이들을 지도하는 것은 자기 감정의 절제가 안된 상태이므로 실수를 하기 쉽고 과잉행동이 나오기 쉽다는 것이죠.

 

이것은 부모님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이들을 최대한 존중해주되 잘못은 확실하게 아이 스스로가 인정하도록 해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무조건 교사나 부모라는 권위로 아이들을 누르려고 하면 반발을 맛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죠.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