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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05 유럽 남동부-지중해,흑해까지(完)

로마 헤매기 4 - 트레비 분수

by 깜쌤 2005. 9. 22.

 

 

 

 

 

 

 

 

 

 

 

 

 

 

 

 

 

 

 

 

 

 

 

 

 

 

 

 

퀴리날레 광장 부근에 베네치아 광장과 트레비 분수가 있다. 그냥 베네치아 광장으로 바로 가버리면 트레비 분수로 다시 올라와야 하므로 먼저 트레비 분수를 보기로 했다. 얼마 안되는 거리이므로 당연히 걸어간다.


퀴리날레 광장에 들어갔다가 110번 버스가 다니는 도로로 나와서 조금만 걸으면 이렇게 베네치아 광장과 쉽게 마주쳐버린다. 그러므로 트레비 분수를 먼저 가기로 한 것이다. 어설프게 기억하면 여기가 스페인 광장인 것으로 착각할 수도 있으므로 꼭 확인해 볼 일이다.

  

 


베네치아 광장의 한구석 계단에  앉아 쉬던 우리들은 몸과 마음을 추스리고 다시 일어서야만 했다. 날이 너무 더워서 일어서기가 싫었지만 너무 퍼질고 앉아 있으면 곤란하다 싶어 용기를 내어 일어선 것이다.

 

 이 계단에 앉아 앞을 보면 바로 위,위의 사진처럼 보인다. 우린 일어서야만 했다. 베네치아 광장 주위에는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기념궁전(기념관)을 비롯한 로마 관광의 핵심지인 포로로마노가 펼쳐지므로 일단 발을 넣어 들어서면 여기만 보는데도 엄청 시간이 빼앗기기 때문이다.

  

 


일방통행의 좁은 골목길을 따라 한 오분 걸었을까 싶었는데 갑자기 어마어마한 구경꾼들이 앞을 가로 막는다. 트레비 분수에 온 것이다.

 

 


여긴 워낙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으므로 극도로 혼잡스럽다. 이런 곳에서는 소매치기를 조심해야 한다. 테러의 영향때문에 경찰들이 좌악 깔렸다고는 해도 스스로 조심하는 것이 상책이다. 이런 곳에서는 작은 배낭을 앞으로 매고 다니는 것이 현명하다.  

 

나보다 더 까만 얼굴을 가진 사람들이 여러가지 물건을 판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이 몰려들기 때문인지 장사치들이 한국말도 그런대로 한다. "싸다. 싸다."  이 정도는 거의 다 할줄 안다.

 

 


 이 분수대의 양식은 바로크 식이란다. 미술에 어두운 나는 무엇이 바로크식인지 무엇이 로코코 식인지 구별하기가 어렵다. 1732년 니콜라 살비라는 사람이 설계했다고 전해지는데 분수 하나도 이런 식으로 화려하게 꾸민 것을 보면 하여튼 이들의 기술력 하나는 대단하다고 인정해주어야 할 것 같다.

 

 햇볕이 너무 뜨거워서 그런지 어떤 사람들은 물에 손발을 넣어보기도 했다. 이 분수에서는 사람들이 분수를 등지고 돌아서서 동전을 던지는 것이 유행이다. 그렇게 하면 다시 한번 더 방문하게 된다는 속설이 있기 때문이란다.

 

나는 동전 한푼이라도 아끼기 위해서라도 그런 짓 따위는 하지 않는다. 분수대에 빠뜨린 동전을 수거해가는 사람이 분명 따로 있을 것이다. 관광객 주머니를 훑어내는 재주도 각양각색에다가 가지가지이다.

  

  
분수대의 아름다움은 사실 굉장한 것이다. 중앙에 자리잡은 상이 바다의 신인 넵튠이라고 한다. 주위에 있는 상들은 반인간 반짐승인 트리톤이다. 원래 분수가 있던 자리는 기원전 19년 6월 9일에 완성된 아쿠아 비르고 수로(水路)의 끝부분이었다고 전해진다.

 

 시오노 나나미 여사가 쓴 "로마인 이야기"에 의하면 비르고 수로는 총길이 약 21km, 하루 송수량 103,846 입방미터라고 하니 수량이 대단함을 알 수 있다. 라틴어로 비르고는 '소녀'혹은 '처녀'라는 뜻이라고 한다.

  

 


 여기에 공급되는 샘물은 오늘날에도 그냥 마냥 마실 수 있다고 한다. 스페인 광장의 분수에 공급되는 물도 이 수로의 물을 쓴다고 한다. 천연샘물이므로 소독약을 가지고 살균하지 않아도 된다니 어안이 벙벙해지고 만다. 그러니 그냥 마실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이런 것들을 볼 때마다 로마인들의 위대함에 감탄하고 만다. 기원전 19년이라면 우리 나라에서는 이제 삼국시대가 시작되던 시점이다. 나는 이런 글을 통해 우리 역사를 비하시킬 생각은 추호도 없는 사람이다.

 

 그러나 말이다, 나는 지나친 국수주의와 맹목적 애국주의는 배격하고자 한다. 인정할 것은 인정해주고 넘어가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잠시 이야기가 딴길로 샜다. 이 수로 공사를 진행시킨 사람이 아우구스투스의 오른팔이리고 자타가 공인했던 아그리파이다. 그는 이 수로를 완공시키고 나서 7년 뒤에 죽고 만다.

 

 


 아그리파가 240명의 노예들로 이루어진 기술자들을 지휘하여 만든 비르고 물길은 르네상스 시대에 다시 사용 가능하도록 보수되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그 물이 흘러 이런 분수대를 유지시킬 수 있는 것이다. 2000년을 줄기차게 솟아오른 샘물 속에 동전들이 가라앉아 세월을 먹고 산다.

 

  
이런 시설물들이 로마로 이탈리아로 관광객들을 줄기차게 불러모은다. 이탈리아인들은 참 대단한 조상을 둔 사람들이다.

  

 


  이 분수 하나에 기(氣)가 죽은 나는 슬그머니 일어서서 자리를 뜨고 말았다.  허허 참 나....... 우리 한국인들은 그들 로마인들보다 더 나은 것들을 후손들에게 남겨야할텐데....

 

 

깜쌤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