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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깜쌤의 세상사는 이야기 : '난 젊어봤다' - 자유 배낭여행, 교육, 휘게 hygge, 믿음, 그리고 Cogito, Facio ergo sum
  • 인생 - 그리 허무한게 아니었어요. 살만했어요
배낭여행기/05 유럽 남동부-지중해,흑해까지(完)

그래 또 간다

by 깜쌤 2005. 8. 30.


 

그래 또 간다. 가자. 가보자. 자꾸 가다보면 언젠간 끝장을 보리라. 여행이나 인생이란게 이런 게 아닐까? 끝이 어딜지는 모르지만 자꾸 가보는 것 말이다.

 

배낭을 주섬주섬 꾸려보았다. 7월 23일 어제 오후에 여름방학을 시작했으니 준비할 날은 토요일 오늘 하루 뿐이다. 내 전용 서랍속엔 배낭여행 용품들로 채워진 곳이 있다. 배낭용품이라고 해봐야 비닐 주머니와 복대, 비상용 우의, 반짓고리와 손전등 등으로 이루어진 잡품들 뿐이지만 이런 소소한 것들을 미리 준비해 두면 시간절약이 된다.

 

약품들은 반드시 미리 챙겨두어야 한다. 4명으로 이루어진 올해 우리 팀 속엔 약품에 밝은 어머니를 모신 청년이 있어서 의약품 걱정은 안해도 된다. 참, 물파스 하나는 꼭 챙겨두어야 한다. 물파스는 보기보다는 쓰임새가 많은 물건이어서 요녀석은 잊어버리면 곤란하다.

 

아내는 역마살이 붙은 나를 이제는 완전히 포기를 했는지 출발할 시간이 가까워지자 염려하는 이야기를 자주 해준다.

 

 "올해는 어디로 가시우?"

 "마누라님이 그런 걸 다 묻소? 올해는 유럽! 한달 내에 안돌아 오면 어디 험한 산 구석에 가서 죽은 줄로나 아시오."

 "집안 걱정은 말고 잘 다녀 오시우. 이왕 갈거 기분이나 좋게 해서 다녀 오시우."

 

대화는 늘상 이런 식이다. 말려봐도 소용없는 줄을 알므로 이젠 포기하고 사는 것 같아 조금은 안쓰럽다.

 

 "그나저나 예산이 한 200만원 부족하니 돈이나 좀 빌려주시지."

 "어이그, 못 말리는 양반! 그런 줄 알고 빌려 두었으니 갔다와서는 군말없이 갚으시오. 아들녀석 등록금도 내어야 하니 나는 여유가 없네요."

 

 

 


 아, 이런 현실이 치사하면서도 고맙다. 사실 올해는 여행갈 돈이 없어서 아내에게 돈을 빌렸다. 7월 말이나 8월 초에 성과급이 나온다니 그 돈을 꼬불침 없이 몽땅 갚고 더 아껴쓰고 쫌생이짓에다가 자린고비, 스쿠루지 영감탱이짓까지 섞어하면 다녀와서는 갚을 수 있을 것 같다.

 

부부사이에 돈을 빌려쓰고 갚는다니 이상하게 생각하실 분도 있겠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거래이다. 아, 요즘 세상에 어떤 오줄 없는 아내가 남편이 한달동안이나 집을 비우는 일에 선뜻 찬성해 준다는 말인가? 그리고 빌린 돈은 확실하게 갚아주어야 다음 여행 계획을 꾸미는데 지장이 없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알수 있는 일이다.

 

 그래도 어리버리한 내가 복이 있으려니 구식 사고방식에 사로잡혀 남편 일에 순종해주는  전통 순수 국산 마누라를 얻어서 이렇게 나다닐수 있지, 요즘 신세대 같으면 이건 완전 귀싸대기를 왕복으로 터진 후에 위자료 다 물어주고 이혼당할 그런 남편이 아닌가 말이다.

 

"아내여, 고맙소. 다녀오리다. 시골 계신 팔순 부모님 명은 하늘에 딸렸으니 하나님 그분께 맡기면 되고 한양가서 공부하는 아들 녀석은 제가 알아서 할테고 중국어 선생하는 딸아이는 때가 되면 시골 내려오리니, 덜 심심할거요. 그럼 안녕~~"

  

이렇게 설레발이를 치고는 길을 떠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