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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안 자전거 여행 : 울진에서 강릉까지 - 오죽헌

by 깜쌤 2021. 11. 30.

오죽헌으로 가다가 만나 작은 꽃밭에서 나는 걸음을 멈추었어. 

 

 

 

 

진한 분홍과 연분홍으로 무장한 코스모스들이 키 자랑하듯 서있는 그 앞에 온갖 색깔을 담은 맨드라미들이 화려한 융단처럼 장식하고 있었기 때문이야. 

 

 

 

 

꽃들을 남겨두고 앞으로 나가려니 걸음이 떨어지지 않았어. 

 

 

 

 

횡단보도를 건넜어. 

 

 

 

 

오죽헌을 찾기란 너무 쉬워.

 

 

 

 

천년들이 ㄱ부장니께 셔터를 눌러달라고 그러더구먼. 

 

 

 

 

요즘은 모든 시설이 너무 잘 갖추어져 있는 것 같아. 

 

 

 

 

오죽헌과 시립박물관을 함께 관리하는가 봐. 

 

 

 

 

우린 방금 이 문을 통해서 들어온 거야. 

 

 

 

 

율곡 선생이 우릴 맞아주셨어. 

 

 

 

 

이젠 작고하신 최인호 선생이 남긴 유림이라는 소설 속에 이율곡의 일생이 자세히 묘사되어 있지. 

 

 

 

 

여섯 권짜리 소설인데 당연히 가지고 있지. 안 읽어보고 내가 그런 소리를 하겠어?

 

 

 

 

중국 남부 절강성 무이산에서 퇴계선생을 언급한 증거물을 보고 감동한 일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해. 

 

 

 

 

율곡과 퇴계라면 조선 새대 중기 성리학의 대가들 아니겠어?

 

 

 

 

과학이 발달한 지금의 기준을 가지고 보면 공리공론에 지나지 않겠지만 그렇게 간단히 무시해버릴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 

 

 

 

 

오죽헌과 문성사를 먼저 보고 율곡기념관은 마지막에 들러볼 생각이었어. 

 

 

 

 

문성사 건물이 보이지?

 

 

 

 

오죽헌 맞은 편에는 멋진 배롱나무가 자라고 있어. 

 

 

 

 

오죽헌과 배롱나무가 있는 공 간보다 한 계단 높은 곳에 문성사가 자리 잡고 있는 거야. 

 

 

 

 

까마귀 오에다가 대나무 죽을 썼으니 줄기가 검은 대나무가 자라기에 붙여진 이름이라는 식으로 생각할 수 있어. 

 

 

 

 

사실이 그래. 오죽헌 현판 옺른편에 몽룡실이라는 현판이 붙어 있었어. 

 

 

 

 

쉽게 말하자면 신사임당의 친정집이지. 

 

 

 

 

조선 시대 중기 건물이기에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고 해. 

 

 

 

 

율곡 선생이 태어난 방이야. 

 

 

 

 

간단히 살펴보고 문성사로 올라가 보았어. 

 

 

 

 

문성사라고 하니 절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사당이라는 말이지. 한자가 다르잖아?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율곡은 조선 중기의 천재였어. 

 

 

 

 

온갖 종류의 과거시험에서 9번이나 장원을 한 경력이 있으니 말해 무얼 하겠어?

 

 

 

 

열세 살에 이미 진사과 초시에 합격했다니 할 말을 잊을 정도지. 요즘으로 친다면 이율곡 선생은 외무고시, 행정고시, 사법고시에 모두 합격을 한 데다가 그것도 모조리 전국 수석을 했다고 보면 틀림이 없을 거야.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는 고등고시 3개를 모두 합격한 사람은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있긴 하지만 수석으로 모조리 통과한 사람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어. 요즘에는 거기다가 기술고등고시라는 것이 있잖아? 그것까지 합격을 한다면 그건 어찌 된 사람일까? 

 

 

 

 

율곡선생의 실력을 아는 터라 기가 죽을대로 다 죽은 나는 입 다물고 조용하게 오죽헌 옆을 통과해서 다음 공간으로 갔어. 사진은 몽룡실 뒷부분을 찍은 거야. 

 

 

 

 

몽룡실 뒤쪽으로 신사임당의 친정 건물이 펼져지는 거야. 

 

 

 

 

규모를 보면 적은 게 아니었어. 굉장해. 적어도 내 눈에는 그렇게 보였어. 

 

 

 

 

건물에 기품이 배여 있었어. 

 

 

 

 

크게 엄청난 고대광실은 아니었지만 기품과 단아함이 넘치는 공간이었어. 

 

 

 

 

방마다 품격있는 작품들이 걸려있었어.

 

 

 

 

이 시는 내가 초등학교 때 교과서에 나왔었던가?

 

 

 

 

아마 그랬던 것 같아. 

 

 

 

 

눈에 익은 글씨체도 보였어. 

 

 

 

 

뒤란의 모습이지. 

 

 

 

 

다시 앞으로 돌아나왔어. 

 

 

 

 

워낙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들이 구경하고 나가기를 끈기 있게 기다렸어. 

 

 

 

 

마침내 조용해진 거야. 

 

 

 

 

기둥에 붙여둔 글씨가 놀랍게도....

 

 

 

 

 

추사 김정희 선생의 필적이라는 거야. 

 

 

 

 

주련이 김정희 선생의 글씨로 채워진 집이 우리나라에 얼마나 있을까?

 

 

 

 

나는 어안이 벙벙해져서 글씨 감상하는 것도 잊어버릴 정도였어. 

"세상에나...."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어. 

 

 

 

 

다음 공간으로 가봐야지. 

 

 

 

 

운한문을 통과해서 나가야 해. 

 

 

 

 

바로 이 문이 운한문이지. 

 

 

 

 

정조대왕이 율곡 선생의 유물을 보고 싶어 하셨다는 게 놀라워. 

 

 

 

 

은하수를 두고 운한이라고 부른다는 것은 처음 알았어. 

 

 

 

 

 

어제각으로 가보았지. 

 

 

 

 

어제각이 어떤 공간인지 이해가 되었지?

 

 

 

 

 

임금을 높인다는 뜻에서 자를 높여두었지 싶어. 

 

 

 

 

정조께서 보고 싶어 하셨다는 벼루가 바로 이 벼루일까?

 

 

 

 

격몽요결!

 

 

 

 

나는 어제각 건물을 한바퀴 돌아보았어. 

 

 

 

 

오죽이 가득했어. 

 

 

 

 

우리나라 돈이 왜 거기 왜 있느냐고 ?

 

 

 

 

어머니와 아들이 함께 화폐에 등장하는 건 세계에서도 처음이라고 하던데....

 

 

 

 

다시 신사임당의 친정 건물로 돌아 나왔어. 이젠 기념관으로 가보아야겠지?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