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단 바닥은 화강암을 곱게 연마한 것이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이런 종류의 돌을 보고 대리석이라는 표현을 씁니다만 대리석과 화강암은 완전히 다른 돌입니다.
안전봉 사이로 호수가 보입니다. 저 멀리 홍건적의 난을 피해 피난을 왔던 공민왕이 잠시 머물렀다는 왕유 마을이 보입니다.
마침내, 나는 내가 살았던 동네가 잠긴 그곳을 보게 되었습니다. 산을 흉측하게 깎아낸 바로 그 밑 다리 발 앞쪽입니다.
멀리 보이는 산들은 소백산 줄기입니다.
영주댐이 보이네요. 호수 한가운데 산봉우리 조금 동동 뜬 곳에 금강 마을이 있었습니다.
댐 바로 밑에는 미림 마을이 남아있습니다. 왼쪽 윗부분에 멀리 보이는 산이 학가산이죠.
섬처럼 보이는 산봉우리 밑에 가자골이 있었습니다.
그랬습니다. 어렸던 시절에 옆산에 올라서서 보았던 소백산 자락들이 뇌리 한구석에 그동안 똬리를 틀고 있었던 게 틀림없습니다.
탤런트 안재욱씨가 출연했던 드라마 "에덴의 동쪽"에 황지 역으로 나왔던 그 기차역이 바로 평은역이었는데 물속에 가라앉아버렸습니다.
그 증거가 이렇게 남아있습니다.
2008년 10월 24일에 여길 갔었지요.
그때 찍어둔 사진입니다.
황지 역 표지판이 대합실에 남아있었습니다.
평은역 대합실 안에 말입니다. 촬영을 위해 세운 가건물이 그때도 남아있었습니다.
그것도 이젠 옛날 일이 되었습니다.
수몰되기 전에는 아래 동영상 속에 등장하는 그런 장면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www.youtube.com/watch?v=xnwwjrK8p5c
1967년 1월 중순에 여길 떠나 멀리 이사 가서 열흘쯤 뒤에 그려놓은 그림지도가 옛날 초등학교 일기장 속에 남아있었습니다.
모두 다 헛꿈이었네요. 부모님 삶의 흔적도 이젠 물속에 가라앉아서 녹아 없어졌을 겁니다.
나는 이따가 사진 왼쪽의 낮은 고개를 넘어서 영주로 갈 것입니다.
산비탈 꼭대기에는 상승기류를 타고 맹금류 새들, 이를테면 매 같은 새들이 자주 날아올랐었습니다.
멀리 평은면 행정복지센터가 있는 이주 단지가 조금 보입니다.
이젠 내려가야지요.
모든 것이 덧없습니다.
나는 다시 한번 추억 속의 장소를 향해 작별 인사를 했습니다.
방문자의 집 부근에도 이주 단지가 만들어져 있습니다.
굽이굽이 감아 흐르던 내성천 상류가 그립기만 합니다.
댐 공사가 이루어지기 전 여기를 둘러본 독일 학자가 그런 말을 했다는 소문이 떠돌더군요.
"독일 같으면 여긴 국립공원으로 지정됩니다."
허허롭기만 합니다.
바닥까지 내려온 나는 숨을 고르었습니다.
여길 그렇게 못 잊어서 한 번씩 찾아오는 내가 어떨 땐 부끄럽기도 합니다.
내가 여기를 마지막으로 떠난 것은 1967년 1월의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헤어지고 난 뒤 한 번도 못 만나본 친구들이 수두룩 합니다.
이젠 얼굴도 다 잊어버렸습니다. 유년 시절의 순수하고 아름다웠던 과거는 하얗게 사그라져가는 담뱃재 같은 추억 부스러기라고나 해야겠지요.
어리
버리
'사람살이 > 옛날의 금잔디 Long Long Ago (고향)'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걸 어디에서? - 그래도 안풀린 궁금증 (0) | 2022.02.12 |
---|---|
잃어버린 시절을 찾아서 (0) | 2021.07.02 |
거기 그곳 3 (0) | 2021.05.12 |
거기 그곳 2 (0) | 2021.05.11 |
거기 그곳 1 (0) | 2021.05.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