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깜쌤의 세상사는 이야기 : '난 젊어봤다' - 자유 배낭여행, 교육, 휘게 hygge, 믿음, 그리고 Cogito, Facio ergo sum
  • 인생 - 그리 허무한게 아니었어요. 살만했어요
자녀교육, 초등교육/교육단상(敎育短想)

울산에서 제자를 만났는데....

by 깜쌤 2017. 8. 26.

 

1986년과 1987년에는 영덕에서 아이들을 가르쳤습니다. 교직경력 10년 정도에서 만난 아이들이었으니 그 당시만 해도 상당히 어설프게 가르쳤던 시절이었습니다.

 

 

어찌어찌하다가 연락이 닿아 울산에서 우선 한두명을 만나보기로 했습니다. 

 

 

나는 기차를 타고 울산으로 향했습니다. 태화강역(옛날 동해남부선의 울산역) 앞 광장에서 먼저 연락이 된 여학생을 만났습니다.

 

 

여학생이라고 표현했지만 이제는 40대의 아줌마가 되었습니다.

 

 

커피숍에서 또 다른 제자를 만나 음식점으로 갔습니다.

 

 

고급 음식점에다가 예약을 해두었더군요.

 

 

워낙 부족했던 선생이었던지라 아이들에게 그리 잘해준 것도 없는데 귀한 대접을 받으려니 미안함부터 앞섰습니다.

 

 

이리저리 제자들의 소식을 묻고 들었습니다. 모두들 열심히 잘 살아가고 있는 모양입니다. 

 

 

돌이켜보면 나는 부족하기 짝이 없는 삼류선생이었습니다.

 

 

당시 내 인생은 여러 면에서 최하층 밑바닥을 훑고 있었던 시절이었죠.

 

 

세월이 흘러 조기 은퇴를 앞두었을 때, 나는 지난 일을 되돌아보며 한평생 살아오며 바른 선생이 되지 못한 것에 대해 깊이 뉘우치며 부끄러움을 많이 느꼈습니다. 그래서 내가 아이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일을 하나하나 떠올려가며 옛날에 기록해 둔 주소록과 앨범을 세밀하게 훑었습니다.

 

 

그리고는 알음알음으로 연락이 되는대로 사과 전화를 했습니다. 연락이 안되는 아이들은 마음속으로라도 사과를 했습니다.

 

 

가만히 헤아려보니 그런 아이들이 제법 되더군요.

 

 

대부분의 제자들은 선생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그런 것이 아니었냐며 오히려 고맙다고 하더군요. 그럴 수록 나는 부끄러웠습니다.

 

 

내가 이야기를 할 때 조용히 수화기를 내려놓은 제자가 딱 한명 있었습니다.

 

 

삼년전의 일이지만 아직도 마음이 아픕니다. 그건 두고두고 짐이 될 것 같습니다.

 

 

울산에서 나를 대접해 준 제자는 졸업후에 세상을 살면서 여러 가지로 마음고생을 많이 했더군요.

 

 

형편이 그리 넉넉치 않았을텐데도 이리저리 마음을 써주었기에 너무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습니다. 

 

 

 바닷가에서 살아온 아이들어서 그런지 거친 면도 있었지만 정이 많은 아이들이기도 했습니다. 

 

 

차를 가지고 온 여자 아이(?)가 기어이 태화강 역까지 데려다주었습니다. 

 

 

 그녀를 돌려보내고 혼자 남았습니다.

 

 

참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르치고 가르침을 받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인연의 끈을 놓치않고 살아가는 게 선생과 학생사이인가 봅니다. 나는 좋은 스승이 되지 못했기에 제자라는 말을 쓰려니 낯이 화끈거립니다.

 

 

사실 그런 것은 선생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이 아닐까하고 생각해봅니다.

 

 

이틀전 경주 예술의 전당에서 연극을 하는 제자를 만났을 때도 그런 특권에서 오는 기쁨을 맛보았습니다. 

 

 

승장강에 홀로 서서 선생으로서 내가 살아온 모습을 반추해보았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자랑스런 일보다는 모자람과 어리석음이 더 많았던 삶이었다고 결론내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내 마음을 아는지 그날 울산의 하늘은 흐렸지만 경주에 도착할 무렵에는 비가 세차게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7월 마지막 날의 일이었습니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