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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11 중국-대륙의 극과 극:산동, 청해성(完

당번고도를 따라 문성공주를 찾아가다 2

by 깜쌤 2011. 10. 11.

 

도로 저 앞쪽으로 펼쳐진 골짜기 왼쪽을 덮은 어마어마한 깃발들이 보이는가? 깃발들은 줄에 매달려 이리저리 엮여 있었다.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풍경이 우리 눈앞에 펼쳐지기 시작했다. 

 

 

오른쪽 산봉우리에 태양이 걸려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분위기가 조금 음산했다.  

 

 

날이 흐리거나 비가 오는 날이라면 귀곡(鬼谷)이라 불러도 틀린 말이 아닐 것같다. 찬란함같다기보다는 괴기스럽다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리지 않을까 싶다. 무수히 많은 깃발들을 매단 줄이 골짜기를 가로질러있는데 헝클어진 실타래처럼 마구 엉겨있었다.

 

 

우리는 차를 세우고 잠시 내렸다. 분위기가 너무 괴기스러워서 혼란스러워졌다. 단정한 것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왔다.

 

 

도로옆을 따라 흐르는 골짜기에는 맑은 물이 흘러가는 작은 시냇물이 있었다.

 

 

어떤 줄은 너무 늘어져서 깃발이 물에 닿아있기도 했다. 물에 오랫동안 적셔진 깃발들은 색깔까지 바래고 말았다.

 

 

자동차는 저 줄 밑으로 지나갈 것이다. 도대체 무엇이 있길래 이렇게 거창하게 꾸며놓았을까?

 

 

티벳에 불교를 본격적으로 '문성공주'라고 알려져 있다. 물론 그 전에도 티벳에는 불교가 조금씩 전해져 있었을 것이다. 문성공주가 중국계의 불교를 티벳에 전했다면 인도 계통의 불교를 전한 사람은 브리쿠티 데비라는 왕비라고 알려져 있다.

 

 

공교롭게도 문성공주와 브리쿠티 데비는 모두다 손챈감포(=손쳉캄포, 송첸캄포)왕의 왕비로 알려져 있다. 손챈감포(保 송찬강보, 혹은 松赞干布 송찬간포)왕은 서기 649년까지 왕위에 있었던 티벳의 영웅이다. 

 

 

 

 

구글 지도를 가공한 것이다. 문성공주가 티벳으로 시집간 길을 따라 만들어진 중원과 티벳과의 교역로가 당번고도(唐蕃古道)이다. '당'은 당연히 당(唐)나라를 의미한다. '번'은 번진(鎭)을 의미한다고도 하는데 티벳을 한자로 표현했던 토번을 나타내는 말과는 한자가 다르다. 

 

티벳을 당나라에서는 토번(蕃)이라고 불렀는데 그것을 본다면 당번고도(唐蕃古道)라는 말은 당과 티벳을 연결하는 교역로로 보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위의 지도에서 노란색 점으로 찍혀있는 노선을 당번고도라고 보아도 크게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오른쪽 빨간색 점은 당의 수도였던 장안이다. 오늘날의 서안(西安 시안)에 해당한다. 지도 왼쪽의 빨간색 점은 티벳의 중심도시인 라사이다. 라사에서 남쪽으로 방향을 틀어 히말라야 산맥을 넘으면 네팔로, 그리고는 곧이어 인도로 연결된다. 그렇게 보면 당번고도의 길이와 역할도 결코 만만한게 아니었던 셈이다.

   

 

내눈에는 이 골짜기 전체가 화려하기보다는 귀신스럽다는 느낌으로 다가왔다. 원색의 천들이 온산을 뒤덮었다. 깃발처럼 보이는 천 한장한장마다 불경이 새겨져 있다고 보면 된다.

 

 

단순한 깃발이 아닌 것이다.

 

 

차안에서 바라본 모습이다. 이제 저 모퉁이를 돌면 문성공주묘가 나타날 것이다.

 

 

우리가 탄 승합차는 깃발 밑으로 지나갔다.

 

 

비록 색깔이 많이 바랬다고는 해도 너무 울긋불긋해서 공포스럽다는 느낌이 강했다. 어쨌거나 썩 맑은 기분은 아니었다.

 

 

정말 상상을 넘어서는 풍경이다. 나는 장족들의 종교적인 열성에 탄복을 하면서도 왜그런지 안타까운 마음이 앞섰다. 도롱뇽 한마리까지도 끔직이 아끼는 환경보호론자들이 보면 질겁을 해야하는 장면이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바로 이 건물이다. 문성공주묘로 알려진 곳이다. 옥수에서 라사로 이어진 도로에서 약간 산골짜기로 들어온 곳이다. 오늘의 목표인 문성공주묘는 뒤에 보기로 하고 먼저 부근경치부터 살피기로 했다.

 

 

공주묘로 곧바로 들어가기보다는 부근을 먼저 둘러보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개울가에는 여행자가 타고온 오토바이 두대가 세워져 있었다. 장비들을 보면 대단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개울가에는 화장실과 매점이 자리잡고 있었다.

 

 

우리는 라마탑부터 둘러보기로 했다.

 

 

여기에도 철늦은 민들레가 피고있었다.

 

 

개울가에도.....

 

 

산에도.....

 

 

온천지가 깃발이었다. 이런 깃발을 무엇이라고 부르는지 기억이 나지 않으니 이것도 큰일이다.

 

 

문성공주의 남편은 손챈감다. 그의 출생년도에 대해서는 말이 많다고 한다. 정확하지 않다는 말이다. 서기 605년 설이 있는가하면 617년 출생설도 있는 것으로 보아 7세기 초반에 태어났다고 보면 무리가 없을 것이다.

 

당나라가 건국한 것이 서기 618년의 일이니 일단 그 부근에 태어났다고 보면 된다. 손챈캄포는 열세살이 되던 서기 629년에 고대 티벳의 33대 임금으로 즉위한 것으로 짐작한다. 그의 아버지 남리송첸은 독살되었다고 전한다. 

 

 

나는 티벳문자의 모양만 알지 글자를 쓰거나 읽을 수는 없는 사람이다. 그의 이름을 티벳 문자로 쓰면 아래와 같이 된다. 출처는 위키백과다. 

 

Songtsän Gampo name.svg = 손챈감포

 

 

그는 상당히 용기도 있고 현명한 사람이어서 인도에 사신을 보내어 글자를 공부하게 한뒤 티벳 문자를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그는 수도를 라사로 정하고 많은 개혁정치를 실시했다.

 

 

.

송챈감포는 당태종 이세민에게 딸을 줄것을 요구했는데 그 요구에 응하여 티벳으로 시집을 보낸 사람이 문성공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문성공주는 이세민의 친딸이 아닌 것으로 알려져 있으므로 다른 일가친척의 딸을 공주로 신분을 격상시킨 뒤 시집보낸 것이 아닐까 싶다.

 

 

이 산중에도 티벳 불교의 흔적이 숨쉬고 있었다.

 

 

장족들의 이 놀라운 불심을 어떻게 설명해야할까?

 

 

우리는 저 골짜기를 통해 여기로 들어온 것이다. 우리는 나즈막한 절벽위에 자리잡은 황금색 건물이 보이는 곳에 올라가보기로 했다. 온산을 뒤덮은 이 엄청난 깃발들은 어떤 모습일까 싶은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