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깜쌤의 세상사는 이야기 : '난 젊어봤다' - 자유 배낭여행, 초등교육, 휘게 hygge, 믿음, 그리고 Cogito, Facio ergo sum
  • 인생 - 그리 허무한게 아니었어요. 살만했어요
사람살이/옛날의 금잔디 Long Long Ago (고향)

그냥 걷기 2

by 깜쌤 2010. 9. 29.

 

 저 멀리 보이는 산은 청량산이 틀림없습니다. 봉화 청량산 말입니다. 행정구역상으로는 봉화군이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안동에서 접근하는 것이 더 편할 것 같습니다. 도산서원을 방문하거나 퇴계오솔길을 걷는 것을 목적으로 안동을 갈 생각이 있는 분이라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그 부근에서는 얼마 되지 않습니다. 

 

 

 도로변 과수원에는 사과가 지천으로 깔리다시피 달렸습니다.

 

 

 색깔이 이렇게 고울수도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지나다니는 사람도 거의 없는 산골이라 아무도 보고있지 않을 것 같아서 한개 정도 따서 먹고 싶다는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농사짓는 분들의 정성과 피땀을 생각하면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고개마루를 넘어서니 경치가 살짝 변합니다.

 

 

 골짜기 전체의 분위기가 아주 풍요로워 보였습니다. 제가 가고 있는 길이 어디쯤인지 궁금하다면 아래 지도를 눌러보면 됩니다.

 

 

 

 사실 이곳은 너무나 평범한 곳이므로 일부러 찾아가 볼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만 지극히 평범한 곳이 사람에 따라서는 깊은 의미를 지닌 장소가 될 수도 있겠습니다. 사람과 장소나름이라는 뜻입니다.

 

 

 사진에 보이는 길을 따라 가면 안동을 대표하는 명산인 학가산 앞쪽으로 연결이 될 것입니다.

 

 

 나는 어렸을때부터 학가산을 아주 멀리서 보면서 자랐습니다. 산 정상에서 깜박이던 희미한 불빛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라디오 방송국의 중계탑이었더군요.

 

 

 나는 오늘 그쪽으로 걸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사진에 나오는 곳의 반대편으로 걸어가고자 했습니다. 왜냐하면 걷고자 하는 곳이 몇년 안으로 틀림없이 물에 잠길 것 같아서 한번 더 걸어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삼거리에서 나는 왼쪽으로 방향을 잡았습니다. 포장된 도로를 따라 계속 걸어갑니다.

 

 

 작은 마을을 지난 뒤에는 동네 뒤로 난 도로를 따라 올라갔습니다.

 

 

 산골마을 저편에 재실같은 건물이 자리를 틀고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재실(齋室)같습니다. 안동지방 곳곳에는 어지간하면 재실이 자리잡고 있어서 재실만 따로 탐방해도 좋은 구경거리가 될 것 같습니다. 재실의 의미를 다음사전에서 검색해 보았습니다.

 

①무덤이나 사당(祠堂)의 옆에 제사(祭祀)의 소용(所用)으로 지은 집 재각(齋閣)
②능(陵)이나 종묘(宗廟) 등(等)의 제사(祭祀)의 소용(所用)으로 지은 집 재전(齋殿)
③문묘에서 유생들이 공부(工夫)하는 집

 

 

 고개마루를 넘어서면 영주시가 됩니다.

 

 

 블로그에 올리는 여행기에도 워낙 제 모습을 안비춰 드렸더니 어떻게 생긴 사람인가 궁금해하는 분이 조금 계시더군요. 저는 아주 평범하게 생긴 시골 무지렁이에 불과합니다. 아는 것은 개뿔도 없는 인간이지요.

 

 

 이 동네가 왕유입니다. 속칭 머리라고 불립니다. 속설에 의하면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피난을 가던 길에 잠시 머물렀다는데서 그런 마을 이름이 생겼다고 합니다. 이 마을이 제법 이름이 알려진 또 다른 이유는 분처바위때문입니다. 부처바위가 아니고요.

 

 

 분처바위 탐방은 다음 기회로 미루고 오늘은 그냥 넘어갑니다. 겨울이 되어야 찾아보기가 쉬울 것 같아서 말이죠. 분처바위의 정체에 관해서는 말들이 많습니다.

 

 

 나는 시들어가는 채송화 무리 앞에서 발걸음을 멈춰섰습니다. 채송화 색깔이 제법 독특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 동네는 제 평생에 처음으로 와 보았습니다. 굳이 알려고 하면 나를 알아볼 친구도 살고있을지 모르겠지만 초라한 내 행색을 보이기 싫어 아무 말없이 마을 구경을 하며 그냥 지나칩니다.

 

 

 발그레 익어가는 고운 사과와 붉은 금잔화......  

 

 

 나는 벌레먹은 듯이 갉겨먹힌 저 산밑에서 자랐습니다. 댐이 완성되면 어쩌면 저 철길도 물에 잠길 것입니다. 물론 내가 서 있는 이 장소도 잠기겠지요. 도로가에는 자동차들이 제법 서 있었습니다. 아마 송이버섯 채취와 보호를 위해 온 사람들이 세워둔 차들일것입니다.   

 

 기차가 기적을 울리면서 지나갔습니다. 기차가 지나가고 난 뒤에 귀를 기울여 보았더니 온천지에는 벌레소리들이 가득했습니다.

 

 

 

어리

버리

 

 

 

 

'사람살이 > 옛날의 금잔디 Long Long Ago (고향)'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냥소고  (0) 2011.04.11
그냥 걷기 3  (0) 2010.09.30
그냥 걷기 1  (0) 2010.09.28
사그라져 가는 것을 위하여  (0) 2010.05.07
물에 잠기다  (0) 2009.08.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