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가 자기들 땅이라고 우기면서 우리의 허파를 한번씩 뒤집어놓는 일을 저지를 때 단골로 등장하는 일본 행정구역이 시마네켄이다. 시마네현이라고 하면 훨씬 쉽게 알아듣지 싶다. 지금 이 글속에서 이야기하는 츠와노가 바로 시마네현 소속이다.
조선후기의 애국자이신 안용복님은 시마네까지 가셨던 어른이니 정말 대단한 분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그럼 아래 지도를 보기로 하자.
지도에서 붉은 색점을 찍고 1번이라고 표시한 곳이 츠와노의 위치이고 37번으로 표시된 행정구역이 시마네현인 것이다. 우리가 떠나온 시모노세키는 46번 야마구치현에 소속된 도시이다. 동해 한가운데 푸른 점으로 찍어둔 곳이 독도의 위치인 셈이다.
왜인들 때문에 속상하는 사람들은 일본 지도와 영토의 크기와 길이를 유심히 비교해보기 바란다. 일본! 사실 알고보면 그리 만만한 나라가 아닌 것이다. 인구수로나 영토 크기로나 기술력이나 경제력, 군사력으로 비교해봐도 뭐하나 우리가 그들보다 앞서 나가는 분야는 찾기가 어렵다.
지금 일본은 건국이래 최대의 번영을 누리고 있는 중이다. 일찌기 일본이 세계 2,3위의 군사경제력을 자랑하던 때가 있었던가? 그들은 벌어들인 엄청난 자금력을 바탕으로 해서 작은 시골마을조차 국제적인 문화도시로 바꾸어가고 있는 것이다.
츠와노의 마을 구성은 아주 간단했다. 산골짜기를 흐르는 개울을 따라 그냥 일직선으로 도로를 따라 발달한 그런 마을이지만 수많은 미술관과 전시관이 자리잡은 리틀 교토 행세를 하고 있는 중이므로 엄청난 관광객이 몰려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마을 간선도로를 따라 내려가다가 골목으로 들어가서 호텔과 여관 상황을 파악해보았지만 모조리 만원이라는 대답만 듣고 나왔다. 오늘 오후 시간을 투자해서 구경을 한뒤 곧바로 여기를 떠나야 한다. 문제는 어디로 가느냐 하는 것이다.
골목길 하나로 어수룩하게 만들어진 곳이 없다. 극도로 깔끔하게 정비를 해놓은데다가 수많은 전시관들이 수두룩하니 사람들이 몰려들지 않고 어찌 배기랴?
1800년대 후반 큐슈 지방에서는 기독교인에 대한 대대적인 박해가 있었다. 그때 많은 사람들이 강제이주를 당했는데 많은 수의 천주교인들이 여기 츠와노에 살았던 모양이다. 그 사건을 기념해서 독일인 신부가 성당을 건립했다고 한다.
마을을 따라 흐르는 개울물이 한번 가로지르기를 하는 곳에는 당연히 다리가 놓여져 있고 부근에 조카마치 거리가 자리를 잡고 있다. 조카마치(城下町)란 성아래 마을 거리라는 뜻이다. 도쿠가와 바쿠후 시대때로부터 상공인들은 지방 영주인 다이묘오(大名)가 거주하는 성 아래 마을에 살도록 강요받았다고 한다.
다이묘오를 모시는 부시(武士 사무라이)계급은 당연히 더 가까이에 모여살게 되었는데 그런 구역은 보통 조카마치에 있었던 모양이다. 안그런 경우도 있었다지만 말이다.
인구 육칠천을 왔다갔다하는 츠와노에도 당연히 사무라이 계급의 집단거주구역이 있다. 다른 거리와 조금 차이가 나는듯하지 않은가?
그 부근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렸기에 찾아가 보았다.
나는 두리번거리며 주위를 살폈다. 구경을 하는 사람, 휴식을 취하는 사람, 발걸음을 옮기는 사람들로 부근 장소는 성황을 이루고 있었다.
개울물을 끌어들인 작은 웅덩이에도 잉어들이 가득살고 있었다. 여기 츠와노는 거주 인구의 열배가 된다는 잉어떼들로 유명하단다. 마을을 가로지르는 강에도 잉어들이 바글거리고 마을 속으로 끌어들인 수로 속에도 잉어들이 살았다.
바쿠후(=막부)시대 이후 마을이 포위당할 경우를 대비해서 비상식량 확보차원에서 기른 것들이라고 한다.
그런 전통이 남아서 그런지 곳곳에 잉어들이 그득했다. 그런 것들이 이제는 다 관광자원이 되는 것이다. 죽으나 사나 잡아먹을 생각을 하는 사람들과, 기르면서 보고 즐기는 것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철저히 차원이 다른 법이다.
공자의 이름은 구이다. 아들은 리인데 잉어 리(鯉)자를 쓰는 모양이다. 그런 연고로 유교정신에 철저히 물든 일부 중국사람들은 잉어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말이 있지만 일본인들의 잉어사랑도 유별나다고 해야하지 싶다.
사무라이들이 거주했던 집앞을 흐르는 작은 수로가 보이는가? 나는 오래전부터 도심으로 물길을 넣자고 주장해왔다. 하수도를 낼줄은 알아도 맑은 물이 흐르는 도랑을 낼줄은 왜 모르는가? 수원(水源)과 수량(水量)이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의지다. 도시를 아름답게 만들고자 하는 의지와 안목과 식견의 문제라는 것이다.
이제는 문화가 사람을 먹여살리는 시대다. 물론 군사력과 경제력이 밑받침되고 난 뒤의 일이긴 하지만 인간은 빵만으로 사는 존재가 아닌 것이다.
콘텐츠가 풍부한 나라가 선진국이다. 단순히 돈만 많이 있다고 해서 선진국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인도네시아가 자랑하는 세게적인 휴양지 발리에는 주민생활양식과 종교 자체도 독특하지만 무엇보다 예술가들이 들끓고 있다는 점을 높이 사주어야 할 것이다. 우붓 같은 마을은 화가들과 조작가들을 포함한 미술가들의 세상이었다.
프랑스의 화가 루소(Rousseau, Pierre-Etienne-Theodore)같은 화가가 그린 유형의 그림은 발리섬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었다. 과연 누가 누구에게 영향을 준 것일까? 혹시 장 자크 루소같은 계몽주의 학자를 두고 이야기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실 분도 있을지도 모르겠다.
강물은 맑다. 론리 플래닛에 보면 수정같다는 표현을 쓰지만 그 정도는 아니다. 이 정도의 마을은 우리나라에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문제는 마을 자체가 안고 있는 컨텐츠 아니겠는가?
강에는 유유히 노닐고 있는 잉어들이 그득했다.
그리 큰 강은 아니다. 아니 작은 강이다. 문제는 물의 맑기이고 관리상태이다. 내가 경북 북부지방을 흐르는 내성천을 참 아깝게 생각하는 이유가 이것이다. 그런 종류의 강은 세계적으로 귀하다. 요즘 세상에 맑은 모래가 그득한 강이 어디 그리 흔하던가?
어찌 그 아름다운 모래를 가만히 둘 줄 모르고 퍼내가서 시멘트 블록을 만들 생각만 하는가 말이다. 무슨 견해를 근거로 모래채취를 허락해주고 마구 반출하도록 하는가 말이다. 철교 저 너머 산속에 보이는 깃발 비슷한 것은 신사 주차장이다.
이제는 문화가 사람을 먹여 살리는 시대다. '예술의 나라'라는 멋진 이미지를 가진 프랑스가 이미 그것을 잘 증명해주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왜 상공인과 문화계로의 진출을 우러러 보기보다 권력과 출세에 그렇게 목을 매는 사회가 되었는가?
어떤 집앞을 지나가는데 입구의 꽃나무가 너무 예쁘길래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나비떼들이 가득 앉은 꽃나무 같았다.
붓꽃 종류같은데 꽃이 너무 단아했다. 나중에 나는 신사가 있는 산을 오르다가 이런 종류의 꽃이 자라는 군락지를 찾아냈던 것이다.
관광객을 가득 실은 기차가 우리 곁을 스쳐 지나갔다.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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