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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09 일본-서부 일본(完)

시모노세키 역부근 1

by 깜쌤 2009. 5. 11.

 

 우리가 머물렀던 "국민여관 천해(天海)"가 저만치 보인다. 나는 여관에서 시모노세키 역으로 향하는 길을 따라 걸었다. 잘모르긴 해도 무엇인가 깊은 역사적 사실을 품은 여관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모퉁이 부근에서 신사를 발견했다. 올라가봐야 하지 않겠는가하는 생각이 들어 올라가보기로 했다.

 

 

시모노세키(下關)! 알보고면 여기는 우리나라 역사와 아주 관련이 많은 곳이다. 우선 여기 출신의 인물들을 한번 살펴보자. 최근의 거물로는 2006년 9월부터 그 이듬해인 2007년 9월까지 일본의 제90대 총리대신을 역임한 아베 신조(安倍 晉三)의 지역구가 바로 시모노세키 시내에 있다.

 

그의 아버지는 일본 정치계의 거물이었던 아베 신타로(安倍 晉太郞)인데 자민당 간사장과 외무대신을 역임한 인물이다. 아베 수상이 한번씩 우리 허파를 뒤집는 소리를 하지 않던가? 경상도식으로 표현하자면 이렇게 된다.

 

"이기 머 이런기 다 있노? 남의 허페를 히이떡 디비시놓고."

 

아베 신조의 외할아버지가 너무나 유명한 기시 노부스케(岸 信介) 수상이다. 그는 1957년 2월부터 1960년 7월까지 총리대신을 역임한 자인데 일제가 패망한 후 A급 전범으로 3년하고도 석달이나 옥살이를 한 뒤에도 용케 수상까지 오른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는 만주국 경영에 관여한 혐의를 가지고 있다. 기시 노부스케의 친동생이 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이고.....

 

친형제간이면서 성이 다른 이유는 친동생인 에이사쿠가 사토가문으로 양자입적을 했기 때문이다. 사토 에이사쿠가 수상(=총리대신)으로 있을때 우리나라와 외교관계를 정상화시켰다. 제2차세계대전에서 패배한 일본을 오늘날의 모습으로 부흥시킨 인물 가운데 한명이 바로 요시다와 기시 및 사토 수상으로 평가를 받는 모양이다.  

 

 

 그 유명한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이 지방 출신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는 오늘날의 야마구치현 출신인데 당시에는 조슈 한(長州 藩 장주 번)이라고 불렀다.

잠깐! 이토 히로부미를 모른다고? 그렇다면 그대는 "봉중근 의사가 이치로 히로부미를 저격한 그 사실은 알고 있는가? 그 말의 의미를 안다면 자동으로 이해가 될터이다.

 

여기 시모노세키는 그런 곳이다. 일본의 오늘을 있게 한 메이지유신(明治維新 명치유신)의 숱한 지도자들이 바로 이 부근 출신들인 것이다. 그들 때문에 오늘날의 일본이 있게 된 것이지만 대신 우리나라는 숱한 고통을 겪게 되었다.

 

사진을 보면 "명치유신의 사적"이라는 제목으로 된 글 속에 보면 다카스기 신사쿠高杉晉作 고삼진작)이라는 이름이 등장하지 않는가? 위에서 이야기한 일본 수상 '아베신조'의 이름가운데 신(晉)은 '다카스기 신사쿠'의 '신'에서 따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카스기 신사쿠는 도쿠가와 바쿠후(德川幕府 덕천막부)의 숨통을 끊은 사람으로 유명하다.

 

 

 이러니 시모노세키는 일본 근대사의 핵심으로 떠오르는 도시가 되는 것이다. 나는 지금 그 역사의 현장에 와 있는 것이고...... 땅바닥에 그려놓은 이 길을 따라가면 어지간한 유적지는 다 훑어보게 되는 모양이다.

 

 

 형님과 나는 신사로 오르는 계단을 따라 올라가 보았다.

 

 

 신사 앞에는 그린 호텔이 자리잡고 있는데 일박에 약 5000엔을 주어야 했다. 지금 환율로 따지자면 약 7만원인 셈이다. 1인당 가격을 의미한다.

 

 

 고요한 신사에도 아침부터 찾아와서 참배를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대세 신사는 작은 언덕배기에 자리잡고 있으므로 다른 가정집들이 신사부근의 언덕에 다닥다닥 함께 붙어있다. 

 

 

 저 멀리 시모노세키 여객터미널이 보였다. 부산에서 출발하는 배가 저 터미널 앞쪽에 도착하는 것이다.

 

 

 신사는 그냥 휙 둘러보는 것으로 만족한다.

 

 

 일본에 온 사람이라면 신사구경은 정신이 없어지도록 많이 해야하기 때문이다.

 

 

 건너편에 보이는 섬이 큐슈이고 이쪽은 혼슈인 것이다.

 

 

 건너편 큐슈 지방의 산봉우리에 비구름이 묻어 있었다.

 

 

 시모노세키를 상징하는 타워가 보였고....

 

 

 일본인들에게 신사참배는 생활의 일부분인 것 같다.

 

 

 산동네 골목을 포장한 길에 식물들이 포장재를 뚫고 솟아오르고 있었다.

 

 

 나는 골목길을 따라 걸어보았다. 이들이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는지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산동네라고는 해도 골목길은 정말 깨끗했다.

 

 

 자전거를 끌고 걸어갈 수 있도록 계단 한쪽 옆을 비스듬하게 만들어 두었다.

 

 

 계단을 색깔을 달리하여 쉽게 눈에띄게 했고.....

 

 

 담이 없으니 골목이 환하게 보인다.

 

 

 그 언덕배기에도 여관이 자리잡고 있었다.

 

 

 팔 집은 이런 식으로 표시하는가 보다.

 

 

 일본의 여관은 머무르는 가격이 호텔보다 비쌀수도 있으므로 숙박을 할 경우에는 특별히 신경써야 한다. 언덕배기에 자리잡은 여관이라고 해서 우습게 보면 절단나는 수가 있다.

 

 

 우리는 다시 큰길로 내려왔다.

 

 

 그랬더니 저 앞에 우리가 묵었던 여관이 보였다.

 

 

 그냥 한바퀴 돌아버린 셈이 되었다.

 

 

 아침을 먹기전에 잠시 타워쪽으로 가보았다.

 

 

 어느 도시나 랜드마크에 해당하는 건물은 하나씩 있는 법이다. 그런 상징적인 건물조차 하나 없는 도시는 비참한 것이고.....

 

 

 가로수로는 야자 종류를 심었는데 제법 운치가 넘쳐났다.

 

 

 확실히 여기만 해도 남쪽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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