짚으로 이엉을 엮어 흙돌담위를 둘렀다. 시골 정취가 가득하다. 담장 앞의 반송이 소담스러웠다.
체험학습을 나온 소녀들의 가벼운 재잘거림이 담위에 소복이 내려앉았고......
티없는 동심은 화장실 개수대 위에도 한가득 담겼다.
사립문 열어둔 초가엔 정겨움이 그득하다. 돌아가신 할마니가 나를 보시고는 곧바로 뛰어나오실 것 만 같아서 마음 한구석이 짠했다.
너무 현대식으로 변해버린 경주에서 초가들을 찾아보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사실 말이지 경주에서 이런 집들을 못찾으면 도리어 이상한게 아닐까?
신라시대에는 오늘날과 같은 김치가 없었을테니 그냥 소금에 절인 채소를 땅속에 묻은 옹기에 넣고 보관했을까?
아무나 다 말을 타고 다녔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말의 숫자는 어느 정도나 되었을까?
나는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여기저기를 헤집고 다녔다.
소풍 나온 아이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비가 오면 좋겠다. 처마밑어 서서 비가 긋기를 기다리며 지붕을 이은 짚끝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을 보고 싶었다.
고구려에는 부경(辣京)이라는 창고가 있었다. 부경의 존재와 구실에 대해서 말이 많으나 여기서는 그런 것에 대한 주장을 소개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므로 그냥 넘어가기로 하자. 혹시 이런 창고도 부경과 관련이 있는 것일까? 백제는 건국 당시의 상황으로 보아 고구려 계열이라는 주장에 큰 무리가 없으므로 부경이 있었다고 해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되지만 여기는 신라여서 의문이 생기길래 해보는 소리다.
한반도에는 삼한시대 때부터 벼농사를 지었던 모양이다. 그렇다면 초가(草家)의 기원은 그때부터일까?
짚으로 만들어낸 여러가지 생활용품들마다 조상들의 손때와 삶의 향기가 배여있는 것 같다.
소녀시대! 듣기만 해도 정겨운 낱말이 아니던가?
풍류가 스며들만한 공간으로 정자만한 곳이 또 있던가?
나는 정자와 물레방아를 지나 폭포수가 흐르는 곳으로 다가갔다.
폭포에서는 물안개가 피어 올랐다.
확실히 우리나라 물레방아가 정겹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높은 신분을 지니고 있었거나 경제력이 있으면 살기에 편한 것이 사실이다.
나는 신선이 노닐 것만 같은 폭포 앞을 지나....
백결선생이나 우륵선생이 살면서 가야금을 뜯고 있을 것만 같은 외딴 집을 지나갔다.
다시 토우들이 즐비한 일반 서민들의 집을 거쳐 드디어 체험학습을 하기에 알맞은 공간으로 돌아왔던 것이다.
뒤란 쪽으로도 정겨운 우리 얼굴들이 그득하다.
나는 이런 공간들이 좋았다.
표정 같은 것이 하나도 없으니 너무 좋다. 마치 진시황 병마용갱 속의 병마용들을 보는 것 같다.
하지만 여기엔 병마용들이 지니고 있는 살기와 터무니 없는 위엄이 없는 곳이다. 푸근함이 그득하니 사람 사는 맛이 나는 그런 공간이다.
염색공방 터에는 온 천지에 우리색들이 묻어 있었다.
얼마만에 보는 지게이던가?
멍석, 장독, 돌담, 초가......
메주.........
가버린 날들의 아쉬움이 곳곳에서 하나 가득 스며 나왔다. 나는 치밀어오르는 향수를 누르며 이 공간을 벗어나려고 애썼다.
여긴 이것 저것 시도해볼만한게 너무 많다.
초가에 플라스틱 의자들이라.....
나는 금방이라도 그리운 얼글이 다가올 것만 같은 동구밖으로 나가 보았다.
과연 거기엔 그리운 얼굴들이 여기저기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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