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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06 동남아시아-여행자의 낙원(完)

티오만 11 - 몽키 베이를 찾아서

by 깜쌤 2006. 10. 1.

우리가 저녁마다 나와서 쉬고 이야기를 하는 장소에 낯선 백인이 한사람 찾아들었다. 석양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담배를 피워대는 그는 장발을 하고 있었는데 머리를 뒤로 넘겨 묶어서 다녔다. 도대체 얼마나 오래동안 머리를 감지 않았는지는 몰라도 묶은 머리조차 마구 헝클어져 있었으니 몰골이 사납기는 나와 마찬가지였다.

 

나는 그에게서 구도자(求道者)의 분위기를 느꼈다. 그는 어제 저녁에도 우릴 찾아왔었다. 우리가 대화를 나누는 장소 부근에 말없이 앉아 버티던 그는 결국 우리에게 말을 걸어왔었다.

 

"물가진 것 있소?"

 

두말없이 우리 팀 청년이 사가지고 다니던 물통을 넘겨 주었는데 그는 반 이상이나 남은 그 물통을 깨끗이 비우는 것이었다. 생맥주 500cc 정도를 쉬지 않고 한꺼번에 들이마셨다고 상상하시면 된다. 그리고는 물병을 넘겨주는데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는 것이었다.

 

어찌보면 무례했고 안하무인격이었다. 물 한병을 다 마신 그는 고맙다는 말한마디 없이 고개짓 한번 없이 휘적휘적 걸어서 사라지고 말았다. 백인청년이었는데 체격은 그 또래에 비해 작은 편이었다.

 

 

 

그는 오늘도 나타나 말없이 바다만 바라보고 있었다. 도를 닦는 것일까? 아니면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은채로 간직하며 사는 것일까? 나는 그에게서 <이유없는 반항>에 등장했던 제임스 딘의 이미지를 찾아낼 수 있었다.

 

혹시 돈이 떨어져 이 섬에 갖혀 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오늘 저녁에도 그를 만났었다. 으슥한 산길에서 그와 마주쳤었는데 우리는 아무 인사말도 없이 그냥 스쳐 지나갔던 것이다. 그리고 다시 밤에 또 만난 것이다. 

 

 

 

자리에 누웠지만 잠이 잘 오지 않았다. 이런 저런 생각에 잠을 이루지 못하니 나는 또 어설픈 개똥 철학에 빠지는 수밖에 없었다. 온갖 생각을 하다가 결국은 잠이 들고 만다. 파도소리와 외로움을 안고 벗삼아 잤다.   

 

 

 

오늘은 몽키베이를 가볼 생각이다. 가능하다면 스노클링도 해봐야한다. 여기까지 와서 아직 스노클링 한번 안했으니 오늘은 그것이라도 하며 시간을 보낼 생각이다.

 

남태평야 샬레의 주인이 키우는 메기는 매일 자기 수조 안에서 스노클링을 하며 산다. 이녀석은 엄청 커서 물밑에 그 시커먼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사진에 보이는 녀석인데 길이가 족히 1미터는 된다. 그런 녀석이 몇마리 들어있는 것이다.

 

 

 

지금 이 사진에도 앞쪽으로 두 마리가 물밑에 자리잡고 있다. 낚시를 하면 엄청난 손맛을 느낄수 있지 싶다. 

 

 

 

어제 밤 내가 잠을 잔 곳이다. 바다가 바로 코앞에 바싹 다가와 있는 곳이다. 이틀 연속 저기서 잠을 잔 것이다. 자다가 쓰나미를 만나서 떠내려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내가 그렇게 떠내려 갈 운명이라면 방안에서 자도 휩쓸려 떠내려가긴 마찬가지니 그냥 마음편하게 먹고 자는 것이다.

 

 

 

바다, 샬레, 잠자리, 빨래..... 배낭여행자의 재산이 한꺼번에 다 드러났다. 아침을 먹은 우리들은 길을 떠났다. 물 한통, 수건, 수영복, 모자는 기본이다. 가다가 스노클링 장비를 세트로 빌렸다.

 

오전만 즐기고 오면 되므로 반나절 요금을 주고 빌렸다. 한나절 빌리면 우리가 손해이므로 반나절만 사용하겠다고 한 것이다. 물안경인 고글과 호흡기구인 스노클, 그리고 오리발 합해서 일인당 8링깃(우리돈 2,400원 정도)이다.  

 

손에 들고 어제 저녁에 걸었던 산길을 지나 몽키베이를 찾아가는 것이다. 어제 저녁에 가본 리조트를 지나면 본격적인 산길이 나타나는데 길이 제법 험하다. 숙소 주인이 위험하다고 말리는 이유를 알겠다.

 

그쪽 길은 인적도 드물고 길 자체가 험하니 고생만 하는 것 같다. 땀을 흘려가며 거의 한시간이나 걸어서야 해변을 만날 수 있었다. 바짝 지친 우리들은 해변을 찾아 내려갔다.

 

 

 

여기가 몽키 베이인지 아닌지는 모른다. 숙소 주인 말에 의하면 거긴 오직 현지인 한사람만이 농사를 짓고 사는 곳이라고 한다. 샬레도 없고 식당도 없다고 했었다.

 

 

작은 후미진 만이 하나 나타났는데 그냥 바다를 향해 열려 있는 곳이어서 그런지 파도가 막힘없이 그대로 밀려들고 있었다. 만 끝에 거대한 바위가 자릴 잡았는데 물속엔 산호 나부랭이 조차도 보이질 않았다. 해변에도 산호조각 하나 보이지 않았으니 산호는 여기에 없는 모양이다. 

 

 

  

만 끝쪽으로는 수심이 제법 깊을 것 같다.

 

 

 

해변에는 작은 모래밭이 자리잡고 있지만 색깔도 밝은 편이 아니어서 전체적으로 멋지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나는 잠시 로빈슨 크루소가 되어 보기로 했다. 일단 어깨에 매고 왔던 작은 배낭을 벗어두고 스노클링 장비만 들고 바닷가를 걸으면서 전체 상태를 확인해 본다.

 

 

 

지금 우리가 서있는 이쪽에는 작은 개울이 하나 바다로 흘러들고 있다. 개울이라기 보다는 도랑 수준이다. 모래는 특이하게 황금빛 비슷한 연한 갈색을 띄고 있다.

 

 

 

사람이 찾아든 흔적은 거의 없다. 발자국조차도 파도에 씻겨 내려갔기 때문이리라. 그런데 공교롭게도 우리가 도착하고 나자 백인 일가족이 곧 도착했다. 두 아들을 데리고 온 중년 부부였다.

 

 

 

황금색 해변을 걸어본다. 파도가 끊임없이 밀려들어서 내가 남긴 발자국을 쓸어버리고 말았다.

 

 

 

우리는 저쪽 바위위에 옷을 벗어두고 온 것이다. 스노클링 장비를 착용하고 물속에 들어가 보았지만 고기새끼 한마리 얼씬거리지 않는다. 여긴 물속조차도 메마른 곳일까? 만 양쪽 옆의 바위 무더기 있는 곳으로 가면 큰 고기들을 볼 수 있을 것 같지만 수영 실력이 미숙한 나는 포기하는게 낫지 싶다.

 

 

 

이런 곳에서는 안전사고가 발생하면 그것으로 끝이다. 그러므로 오지나 외딴 곳에서는 안전제일주의로 움직이는 것이 가장 무난하다.

 

 

 

 

해변쪽으로 열대 숲이 너무 우거져버렸다. 모래도 그럴듯하게 약간은 아름답지만 파도도 세고 전체적으로 보아 경관이 조금 그렇다.

 

 

 

황금색 해변이라..... 아무리 봐도 신기하다. 흰색의 산호모래 찾기보다 어려운 것이 황금색 모래를 찾는 것이 아닐까 싶다.

 

 

 

우리 뒤를 따라온 백인 가족들도 스노클링을 해보지만 별로 재미없어 하는 분위기다. 이 가족은 잠시 물에 들어갔다가 나오더니 이내 짐을 꾸려 돌아가고 말았다.

 

 

 

우리도 재미없긴 마찬가지였고.....   결국 옷을 입고 이 재미없는 만을 벗어나기로 했다. 여기가 몽키 베이인지 아닌지는 아직도 모른다.

 

 

 

사진의 오른쪽에는 바다로 흘러드는 실개천이 보인다. 옷을 갈아입고 난 뒤에 거길 자세히 보고 있으려니 뭐가 움직이는 것 같았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물뱀이다.

 

 

 

나무 막대기 끝에 움직이는 뱀이 보인다. 모르고 민물에 몸을 행구기 위해 들어갔더라면 물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장난끼가 발동하기 시작한 우리들은 나무 가지를 주워와서 찝쩍거려 보았는데 확실한 뱀이었다.

 

 

 

바닷가 모래밭엔 개미귀신 집이 가득했다. 장남삼아 한마리 잡아보기로 했는데 녀석의 모습만 구경할 수 있었다. 얼마나 잽싸게 숨어버리는지.....

 

 

 

어렸을때 강가 모래밭에 가서 개미귀신을 잡아보았던 생각이 났다. 녀석은 이 모래 웅덩이 속에 산다. 깔때기 모습을 뒤집어 놓은 모양으로 함정을 파놓고 개미가 지나가기를 기다린다. 개미가 어쩌다가 이 함정 속에 굴러 떨어지면 탈출 본능을 살려 모래 언덕을 기어오르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모래 언덕을 기어오르기가 그리 쉬운 일이던가? 모래가 흘러내리면 웅덩이 속에 숨어 있던 녀석은 모래가 진동하는 것을 느끼고 나와서는 먹이감을 재빨리 나꿔채서 모래 속으로 끌고 들어가 버리는 것이다.

 

그러니 개미귀신이다. 개미가 그 녀석에게 걸려들면 살아나올 재간이 없는 것이다. 그 무시무시한 녀석이 나중에 아름다운 명주잠자리로 우화하는 것이니 자연의 신비로움은 끝간데가 없는 것 같다.

 

 

 

우리는 다시 산길을 걸어서 돌아왔다. 원래 장소까지 돌아오는데 한시간이 걸렸다. 스노클링 장비를 반납하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꽤 남아 있었으므로 결국 우리는 우리가 머무는 숙소앞에서 스노클링을 하기로 했다.

 

 

 

사진에서 보다시피 바위와 자갈이 많으므로 여기는 훌륭한 스노클링 포인트다. 물속에는 역시 고기들이 많았다. 얕은 바다라고 해서 깔보지 마시기 바란다. 제법 큰 고기들이 수두룩하다. 경상도 말로 하자면 천지삐까리리고 수두룩빽빽한 것이다.

 

 

 

물 위에 떠서 헤엄쳐가며 한시간 정도만 놀면 이내 지치고 만다. 그 정도로 수영은 에너지 소모가 심한 운동이다. 나는 10여년전 여기 이 섬에서 처음으로 스노클링이라는 것을 해보았다. 혹시 열대지방으로 여행을 떠나고자 하는 분들은 결코 스노클링하기를 망설이면 안된다. 반드시 해보고 오시기 바란다.

 

 

 

 

내가 만난 어떤 미국인은 자기 일생에서 자연을 보고 충격을 받은 적이 딱 두번 있었다고 했다. 한번은 그랜드 캐년을 방문했을 때였고 또 한번은 열대의 바다에서 스노클링을 할 때였다는 것이다. 

 

정말 바닷속 세계는 환상적으로 아름답다. 절대로 놓치면 안된다. 수영 못한다고 겁먹을 필요도 없다. 수영을 못하는 분들은 구명조끼를 착용하고 스노클링을 즐기면 된다. 구명조끼를 입으면 저절로 물위에 뜨게 되므로 절대로 겁먹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상어가 나타나면 어떻게 하느냐고? 그럼 자동차가 무서워서 길에는 어떻게 나가시는가? 상어가 나타나는 바다에서는 당연히 스노클링을 하면 안된다. 상어출몰 여부는 현지인들이 훨씬 더 잘 알고 있으므로 걱정하지 말고 도전해보시기 바란다.

   

 

 

그렇게 오후 시간을 보냈다. 무료하게..... 그리고 느슨하게...... 스노클링 기구들을 반납하고 나서는 한숨 자둔다. 이럴땐 쉬는게 최고다.

 

 

 

오후에 접어들자 며칠 동안 물결이 일었던 바다가 드디어 잔잔해지기 시작했다. 바다가 잔잔해지면 열대바다의 진정한 아름다움이 드러나기 시작할 것이다.

 

 

 

나른한 오후다. 오늘은 좀 멋진 석양을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나는 서서히 멋진 저녁노을에 대한 기대감을 높여가기 시작했다.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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