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세점에서 나온 우리들은 산길을 올라갈 준비를 했다. 한 두시간 정도는 족히 걸어야 하니까 왕복 4시간 이상 걸릴 것이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 준비가 필요하다. 물과 가벼운 간식이 있어야 할 것인데 그런 것들을 사러 들어간 작은 가게에서 마침 두리안이 향기를 내뿜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두리안은 ‘과일의 왕’이라고 불리는 과일이다. 너무 향기가 강하고 맛이 독특해서 거짓말 조금만 보태면 50m 밖에서도 냄새를 맡을 수 있을 정도이다. 그러므로 호텔 같은 곳에 절대 가지고 들어가면 안 되는 과일이기도 하다. 먹고 난 뒤 술을 마시면 쓰러지기도 한다니 조심해야 한다고 한다.
생긴 모습은 조금 특이해서 껍질이 울퉁불퉁한데다가 뾰족한 굵은 가시 비슷한 것으로 단단하게 무장을 하고 있으므로 들때도 조금은 조심하는게 좋다. 맨발등에라도 떨어뜨리면 고통은 말로 할 수 없을 정도가 될 것이다. 그런대로 익은 녀석은 껍질이 연두색 빛깔이 나면서도 누르끼리한 색이 감도는데 덩치도 제법 커서 코코넛만하다고 여기면 된다.
우리나라 부엌에서 흔히 쓰는 그런 식칼로 푸욱 찔러 넣어 쪼갠 뒤 손아귀에 힘을 들여 껍질을 양쪽으로 열면 누르딩딩하면서도 끈적끈적한 크림 덩어리(좋은 말로 하자면 그렇고 나쁘게 표현하면 꼭 뭐 같다) 같은 것이 나온다. 그 속에 과육( 果肉 )이 있는데 분위기도 그렇거니와 맛과 향이 너무 강해서 비위가 약한 사람은 입에 대기도 어렵지 싶다.
이 과일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두리안의 독특한 냄새가 향기로 여겨지겠지만 처음 냄새 맡는 사람은 거짓말 조금 더 보태서 뭐뭐 냄새가 난다고 표현하는 사람이 있을 지경이다.
하지만 과일 가격이 비교적 헐한 동남아에서도 이 과일만은 비싼 값에 팔리니 어쨌거나 한번은 시도해 볼만한 멋진 과일인 것이다. 과일의 왕이라는 소리가 왜 나오겠는가? 괜히 그런 소리가 나오겠는가?
7링깃을 주고 하나 샀다. 주인 아주머니가 힘들어하길래 내가 칼을 들고 덤벼들어 쪼개어 보았는데 역시 짐작한대로 기막힌 향기를 내뿜는 것이었다. 비닐 봉지를 하나 얻어 과육을 담았다.
일단 내가 하나 맛을 보고 다른 사람들에게 권했더니 한분이 입에 한번 넣어 보시더니 기겁을 하고 도래질을 하기 시작했다. 덩달아 다른 분들도 모두 코를 싸잡아 쥐고 피하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졸지에 혼자 두리안 한개를 다 처치해야할 지경이 된 것이다.
그럼 할 수 없다. 혼자 다 먹을 수밖에..... 비닐 봉지 속에 과육을 담아 가지고 가는데도 냄새가 사방에 진동하니 같이 가는 사람들이 옆에 오지도 않으려고 한다. 어허 그것 참......
비행장 입구를 지나서 활주로 끝에 있는 산길 입구를 찾아 갔다. 나는 혼자 슬금슬금 두리안을 먹는다.
"으음.... 이 멋진 향기.... 이런 과일을 안먹고 멀리 하다니......."
내 혼자만 먹고 다니는 처지이니 입에서 나는 냄새가 어느 정도인지 알길이 없다.
동네 어귀를 벗어나면 곧 산길로 오르게 된다. 이젠 본격적인 정글 트래킹이 시작되는 것이다. 바람이 없는 산속으로 들어서니 워낙 울창한 숲속인데다가 분위기 자체도 어두컴컴해지면서 단번에 땀이 비오듯 쏟아지기 시작했다.
하늘로 치솟은 티크 나무들이 앞을 가로 막기도 하고 ...... 워낙 위로 까맣게 치솟으며 자라니 높이가 짐작이 안될 지경이다.
길가 고무나무엔 흠집을 비스듬히 내고 고무나무 액을 받는 비닐 주머니를 매달아 놓았다. 이 정도의 고무나무라면 엄청 굵은 나무가 아닐까 싶다. 보통 고무나무 농장에 가보면 이렇게 굵은 녀석은 만나기 어렵기 때문이다.
참 신기한 것은 처음에 받을 때는 저렇게 하얀 액체인데 나중에는 검게 변한다는 것이다. 고무 나무 농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유난히 피부가 검게 보였었다. 그건 또 왜 그럴까?
정글 속에도 단풍이 든다. 열대지방의 단풍은 우리나라 가을 단풍처럼 붉게 잎이 변하면서 떨어지는게 아니고 오래된 나뭇잎이 그냥 뚜욱 뚜욱 떨어지는 형태를 취한다는 것이다. 길바닥엔 떨어진 나뭇잎들이 그득하다.
어두컴컴한 숲 사이로 난 길은 끝없이 위로만 뻗어있다. 이런 길을 혼자 걸으라면 겁이 날만도 하겠다. 머리 위로 올라오는 대형 배낭을 맨 백인청년 둘이 맞은 편에서 다가왔다. 저런 대형 배낭을 매고 이런 정글 속을 걸어서 산을 넘어오다니...... 인내심과 체력이 대단한 녀석들이다.
산 아랫 부분은 사진에서처럼 길이 저런 식으로 나있다. 워낙 숲이 짙으므로 앞이 잘 안보인다. 이런 곳에서 길을 잃으면 조난 당하기 딱 알맞겠다. 그런데 왜 물을 찾기가 이렇게 어려운 것일까? 산의 경사도가 너무 급해서 그렇까?
어쩌다가 도랑이라고 발견해도 썩은 듯한 물이 조금 고여있는 정도이므로 함부로 손을 넣기조차 무서워진다.
밀림 속에는 온갖 나무들이 뒤섞여 자란다. 가끔씩은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들려서 긴장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린 지금 네명이 걷는 중으므로 크게 겁나는 일은 없다.
이런 산길에 친절하게도 계단을 만들어 놓았다. 고맙기도 하셔라......
비가 쏟아지면 어떻게 될까 하고 상상해본다. 잎이 크므로 소리도 크게 들리지 싶다. 빗소리는 머니머니 해도 비닐 하우스 안에서 듣는게 두번째이고 조용한 시골집에서 듣는게 첫번째이다.
위로 솟은 나무의 모습이다. 어떤가? 내가 알기엔 티크 나무 같은데......
어떤 녀석의 허리 둘레에는 양치식물이 붙어 자라기도 한다. 거인의 발 같은 뿌리 내림은 또 어떤가?
이 정도 굵기의 나무는 흔했다. 기념 촬영 한방 때리고 넘어가기로 한다.
표현이 조금 그렇다. 때리고 넘어가다니....
나무 위에서 뭐가 떨어질까봐 겁이 난다. 떨어지는 이파리에도 정통으로 맞으면 아플 것 같다.
우린 이 숲 속에서 아주 희귀한 식물을 하나 찾을 수 있었다. 잎이 청녹색으로 보이는 식물이다. 이런 녀석은 처음 본다. 관상용으로 가치가 있지 싶은데...... 크면 어떻게 될까?
땀은 비오듯 쏟아지지 목은 마르지..... 그러다가 고개마루 부근의 어두컴컴한 숲속에서 물소리를 들었다. 물소리를 따라 내려가자 이 깊은 산속에 작은, 정말 작은 미니 댐이 나타나고 폭포가 보였다.
폭포에 다가가서 발을 넣어보았다. 얼마나 시원한지 모른다. 한참을 앉아 쉬면서 원기를 회복한다. 물은 준비해 온 것으로만 마셨다. 정글 속에서 흐르는 물을 함부로 마시는 것은 위험하기 때문이다.
힘을 낸 우리들은 다시 길을 걷기 시작했다. 걸어도 걸어도 끝이 나지 않을 것 같던 길이 어느 덧 환해지면서 드디어 하늘이 보이기 시작했다. 내리막으로 변하더니 이윽고 숲 밖으로 나온 것이다.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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