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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에서 군산까지 : 금강 자전거 기행 - 군산항

by 깜쌤 2021. 8. 20.

 

 

철길마을을 보고 바닷가로 나가자 옛날에 교과서에서 배웠던 내용들이 슬슬 떠오르기 시작했어.

 

 

 

 

군산이라고 하면 그땐 뜬다리가 유명했었어. 뜬다리는 교과서에도 소개가 될 정도였거든. 어제 지나갔던 경포천 위에 걸린 큰 다리를 넘어갔어. 

 

 

 

 

시가지로 들어섰더니 옛날 냄새가 슬슬 풍겨 나오기 시작했어. 

 

 

 

 

축성포를 지나면 진포해양공원이 등장할 거야. 

 

 

 

 

개펄 가운데 박히다시피 우뚝 선 등대가 인상적이었어. 

 

 

 

 

나는 바닷가로 나가서 천천히 달렸어. 이 부근이 축성포인것 같아. 

 

 

 

 

부두에 정박한 상륙함을 보았어. 저기다 싶었지. 

 

 

 

 

건물을 훑어보며 천천히 달리다가 부둣가 벽에 그려진 벽화를 보고 깜짝 놀랐어. 

 

 

 

 

권투선수 김득구 씨가 군산 출신이었다는 건 처음 알았어. 비운의 주인공 김득구 선수의 가슴 아픈 사연은 온 국민의 마음을 저미게 만들었지.

 

 

 

 

우리가 어렸을 땐 모두들 워낙 가진게 없었으니까 뭐든지 해서 먹고살아야 했어. 그랬기에 맨주먹 하나로 성공해보겠다고 권투를 배우는 청년들이 많았지. 가진 건 육체와 주먹 하나가 전재산이던 시절에 운동깨나 하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건 복싱 같은 피 튀기는 스포츠밖에 없었어. 

 

 

 

 

세계 챔피언이 되어 입에 풀칠하는 가난에서 벗어나보겠다고 복싱을 배워 동양 챔피언의 자리에 오른 뒤 세계 챔피언 타이틀을 획득하기 위해 도전자가 되어 링에 올랐다가 챔피언이었던 레이 맨시니에게 수많은 연타를 맞고 실려나갔지만 이내 죽고 말았어. 

 

 

 

 

아기를 가진 신부의 나이가 그때 스물 세살 정도였을 거야. 임신한 어린 아내 하나만 남겨두고 김득구 선수가 세상을 달리했기에 온 국민들의 마음을 찢어지게 만들었던 우리들의 한 많은 영웅이었어. 김득구 씨의 벽화가 그려진 그려진 군산 196 건물은  옛날 사료공장 흔적이었던 거야. 증거를 소개해 줄게. 

 

 

 

 

인터넷을 검색해보면 하망로 196 카페 이야기와 함께 이 건물 사진도 자주 등장하는데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 같아.  바로 인근에 196 카페가 있지. 

 

 

 

 

벽돌 건물이 196 카페야. 

 

 

 

 

바로 이런 식이지. 제법 인기가 많은 것 같더라고. 

 

 

 

 

부근을 문화공간으로 잘 다듬어 두었어. 

 

 

 

 

그 옆 빈터에는 대형 우체통이 하나 자리 잡고 있어. 아참, 젊디 젊은 엄마 뱃속의 김득구 선수 아들은 잘 성장해서 치과 의사가 되었다고 들었어. 그나마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우리 시대엔 그런 비극이 너무나 흔했어. 

 

 

 

 

울산 바닷가에도 이런 우체통이 하나 있지. 간절곶 소망 우체통이지. 

 

 

https://blog.daum.net/yessir/15866568

 

사랑했으므로 진정 행복하였네라

청마 유치환 선생은 편지쓰기에 일가견이 있었던 것 같다. <행복>이라는 시가 그 사실을 증명해준다. 젊었던 날 우연히 구했던 시집속에서 그 시를 읽어보고는 왜그런지 마음에 들어 외워보기

blog.daum.net

 

 

 

 

 

공장 건물 벽 밑 한구석엔 요강을 모아두었더라고.

 

 

 

 

조선 백의민족 전통 이동식 간이 화장실이지. 우리 집에도 있었더랬는데 어머니 돌아가신 뒤에는 사라져 버렸어. 

 

 

 

 

건물 벽에 태극기가 크게 그려진 사연은 이제 이해가 되는 것 같아. 

 

 

 

 

부근에 해양경비대 소속이었던 배 한척이 전시되어 있었어. 

 

 

 

 

근대 문물을 살피는 데는 군산이 제일인 것 같아. 

 

 

 

 

일제 강점기 시대의 건물들과 유산이 잘 보존되어 있기도 하고 그런 걸 활용하여 멋진 볼거리를 만들어낸 군산 시민들의 의식이 한결 돋보이는 곳이지. 

 

 

 

 

진포 해양공원에 다 왔어. 

 

 

 

 

이젠 공원으로 들어가야지.  이 부근이 예전 군산의 중심지였던 것 같아. 

 

 

 

 

해양 경찰 소속이었던 273함의 위용이 돋보였어. 

 

 

 

 

인근 주차장 시설도 좋았어. 자전거를 세운 뒤 공원에 들어가 보았어. 

 

 

 

 

시사한 공원이 아니었던 거야. 

 

 

 

 

사내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전시물들이 베법 많았어. 

 

 

 

 

단정하게 손질 되어 있었기에 정갈한 느낌이 들었어. 

 

 

 

 

쉼터에서 잠시 숨을 고루었어. 

 

 

 

 

이젠 돌아봐야지. 

 

 

 

 

M 48 시리즈 탱크도 보이네. 

 

 

 

 

수륙양용 장갑차!

 

 

 

 

자주포! 여성들이라면 탱크와 착각하는 사람들도 제법 있을 거야. 

 

 

 

 

F-4 팬텀 전폭기였던가?

 

 

 

 

이순신 제독과 화포같은데....  이순신 장군을 좀 더 위엄 있게 표현했더라면 좋았을 걸....   게임 체인저 역할을 멋지게 하신 성웅(=성스러운 영웅)을 조잡스럽게 표현하면 곤란하지. 

 

 

 

 

어선들이 개펄에 누워 자고 있었어. 

 

 

 

 

밀물이 들어오면 기지개를 켜고 일어나겠지?

 

 

 

 

상륙함 앞에 보이는 시설이 그 유명했던 뜬다리야. 

 

 

 

 

뜬다리 1호!

 

 

 

 

3호까지 있었던 것 같은데....

 

 

 

 

조수 간만의 차를 이용한 과학적인 시설이라고 교과서에 소개되어 있었던 것 같아. 

 

 

 

 

위키 백과에서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어. 

 

군산 내항의 뜬다리 부두는 간조와 만조의 수위 변화와 무관하게 대형 선박을 접안시키기 위해 조성한 시설로서 군산항의 제3차(1926년∼1932년)와 제4차 축항공사(1936년∼1938년)를 통해 건설된 뜬다리와 부유식 함체로 구성된 구조물이다. 일제강점기 쌀수탈항으로서 군산항의 성격과 기능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시설물로서 보존상태가 양호하고 역사적 가치가 우수하다. [1]

현재는 1930년대 초반에 설치된 3기의 뜬다리 각각에서 다리 형태의 구조물 1개씩이 멸실되어 현재는 각 뜬다리의 일부인 총 3개의 다리 형태 구조물이 현존하고 있다.

 

 

 

 

상륙함 위봉함은 문이 잠겨 있었어. 코로나 19 때문이었어. 

 

 

 

 

사람으로 치면 칠순잔치를 하고 은퇴한 정도의 나이구먼. 

 

 

 

 

가지런하게 정박중인 어선들이 보기에도 참 좋았어. 

 

 

 

 

가만히 보니 닻을 내려둔 배가 거의 없었어. 그게 신기했어.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