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다 온거야.
입장권 가격은 16유로였어. 2만원이 조금 넘는 거금이었지.
이라클리온(=이라클리오)는 이 한가지 유적만으로도 충분히 먹고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입장객이 많았어.
여긴 두번째 오는 거야. 그런 걸 보면 나도 참 복많은 인간이지.
입구는 나무 그늘로 만들어져 있었어.
통과해보니 그건 부겐빌리아 꽃나무였어.
그런 걸 보면 여긴 확실히 남쪽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지. 온화한 지중해성 기후의 영향이기도 하고 말이야.
우리가 방금 통과해온 꽃나무 터널을 찍어보았어.
터널을 지나면 앞에는 돌바닥과 낮은 건물더미가 슬쩍 보이는 너른 유적지가 나타나지. 우린 서쪽 입구로 들어온 거야. 맞은편에 보이는 돌산이 동쪽인 셈이지.
트로이 유적의 발굴자라면 하인리히 슐리만을 떠올리듯, 크노소스 궁전 발굴자라면 당연히 아서 에반스를 떠올리게 돼.
여긴 청동기시대의 유적지야. 미노아 문명의 중심지라고 보면 돼.
그리스 본토에서 발흥한 미케네 문명과 미노아 문명은 다른 거야. 미노아 문명을 어떤 이는 미노스 문명이라는 용어로 부르기도 해.
에반스 박사의 흉상이 유적지를 굽어보고 있어. 학자로서 이 정도의 명예를 얻었으면 성공한 것 아니겠어?
나도 이런 학문 세계에 뛰어들었더라면 하는 생각이 들어. 나 자신 워낙 시골 촌놈이어서 그런 학문이 있는 줄도 몰랐을뿐더러 학자로 평생을 살 수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으니 어리석음의 극치 속에서 청춘을 보낸 거지.
공작새 한마리가 날아들었어. 녀석은 사람들 시선 끌기를 취미로 하는 것 같았어.
아까 이야기한대로 여긴 미노스 문명의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어.
유적지는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산이라고 해봐도 그리 높지는 않아. 골짜기에는 물도 흐르고 있는데 궁전터가 위치한 곳은 살짝 솟아오른 언덕 위라고 봐도 될 거야.
기원전 이천년 경에 궁전이 만들어진 것이라고 보면 되니까 약 4천여년전의 유적지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가 쉬울 거야.
물론 궁전이 만들어지기 전에는 석기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마을 흔적도 발견되었다고 해. 본격적으로 궁전이 건설된 시기가 기원전 2000년 경이라고 추정한다는 말이지.
인간의 몸에 머리는 황소였다는 미노타우루스(=미노타우로스) 전설이나, 들어가면 절대 밖으로 빠져 나올 수 없다는 미궁이었다는 라비린투스(=라비린토스), 그리고 미노스 문명을 상징하는 크노소스 궁전 같은 말을 만들어낸 바로 그 자리에 내가 서 있는 거야. 말로만 하면 이 유적지 전체의 모습을 이해하기 어려울 것 같아서 자료 사진을 가지고 왔어.
사진의 출처는 나무 위키야. 주소는 아래와 같아.
더 명확하게 이해를 하기 위해 이라클리온에 있는 고고학 박물관에서 찍은 모형 사진을 소개해 줄게.
위 그림과 함께 비교해서 살펴보면 파악하기가 편할 거야. 아마도 4층 정도로 이루어졌던 건물이었을 가능성이 높아.
고고학 박물관에는 나무로 모형을 만들어두었더라고. 궁전 내부에는 천여개의 방이 있었던 것으로 파악하고 있지.
미궁(=라비린투스)이라는 말이 왜 생겼는지 이해할 수가 있었어. 다시 현장으로 돌아가자고.
여기 이 터에 거대한 궁전이 만들어져 있었다는 말이지.
발굴된 흔적만 봐도 규모는 어마어마했던 것 같아. 현재까지 파악한 바로는 적어도 한변의 길이가 150여미터 정도에 이른다는 거야.
놀라운 건 말이지, 4천여년 전에 벌써 상하수도 시설을 갖추었다는 사실이야.
물론 오늘날 우리들이 생각하는 현대적인 상하수도 시설은 아니지만 생활에 필요한 일정량의 물이 흘러 들어오고 빠져나갈 수 있도록 시설을 해두었다는게 놀라운 일 아니겠어? 나중에 그런 증거를 더 소개해 줄게.
그런 정도만 파악해두어도 여기가 왜 그리 놀라운 유적지인지 알게 될 거야.
남쪽 비탈면을 찍어보았어. 언덕이라는 말이 이해가 돼?
건물 전체를 복원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 거야.
그래서 부분부분만 조금씩 복원해두었는데 이것 때문에 유네스코와 갈등상황을 빚어냈어.
원래는 대부분의 기둥을 나무로 만들었던 것으로 파악하고 있는데 시멘트를 사용해서 기둥을 복원하기도 했던 덕분에 2019년 현재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어.
내가 살고 있는 도시에서도 무리한 복원을 시도하고 있는 사례가 있어. 이런 글에서 언급하기가 뭣하지만 철저한 고증없이 의욕만 앞서면 일을 망치게 된다는 사실을 행정가들이 알았으면 해.
무식한 자들은 용감한 법이고 무식한 자가 용감한 것에는 막을 방법이 없어. 역사가 그런 사실을 잘 증명해주지.
동남쪽 방향을 찍어보았어. 세월이 흐르면서 궁전 몇개가 중첩되어 만들어졌을 거야. 각 궁전마다 중앙에는 중정이라는 이름이 붙은 정원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어. 중정에서는 행사를 하거나 축제를 벌이기도 했을 거야.
이런 건물은 아래 위층이 동시에 보이도록 되어 있었어.
이런 유적을 복원하는데 시멘트를 사용한다는게 말이 되는 이야기야?
남쪽 비탈의 모습이지.
기둥을 보면 도리아 스타일과 닮았다는 느낌이 들어.
그리스 신화의 주인공은 제우스잖아? 제우스가 여기 크레타 출신이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거야. 제우스는 황소와 연관이 많지. 자세히 보면 크노소스 궁전 여기저기에 황소와 관련된 흔적들이 많이 남아있어.
이 벽화를 보면 신에게 제사를 지내기 위해 여러가지 모양으로 생긴 단지에 무얼 담아 가는 행렬도처럼 보여.
우리가 잘 아는대로 그리스인들은 그리스 신화를 만들어낸 사람들이야. 신화 속에는 역사적 사실을 내포하고 있는 경우가 많지.
벽화는 프레스코화로 전해지고 있어. 가장 대표적인 작품은 백합왕자로 알려져 있지. 원래의 작품들은 이라클리온 시내의 고고학 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다는 거야.
벽에다가 회칠을 하고 회가 마르기 전에 재빨리 수용성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는 기법이 프레스코화의 주류를 이루었어.
단지처럼 생긴 용기의 모양이 다양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어.
엄청나게 큰 항아리들이 나타났어. 토기를 만들어 불에 구운 것이지. 우리는 이런 대형 항아리들을 피토스라고 불러.
평균적으로 1미터 50센티미터 정도가 되는 것 같아. 그렇다면 대형 피토스 속에는 무엇을 담아 보관했을까? 현재까지의 연구 결과로는 보리나 밀같은 곡물과 포도주, 올리브 기름이나 올리브열매와 각종 과일 같은 것들을 저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어.
하나하나 세밀하게 다 보려면 밑도 끝도 없을 지경이야.
황소와 연관지어 볼 수 있는 유물이 멀리 보이지? 뿔 모습의 조형물 말이야.
바로 이런 식이지. 나중에 자세히 소개해 줄게.
정말 거대한 유적지였어.
그러니 사람들이 많을 수밖에....
오늘은 이 정도로만 할게. 다음 글에 다시 이어질 거야.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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