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와 70년대만 하더라도 어지간한 시골 기차역 구내에는 기차로 탁송되는 화물을 열차칸에 싣고 내리는 일을 하던 회사의 작은 지점이 있었다. 대한통운이라는 국영기업체의 시골 사무소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 회사는 오늘날로 말하자면 독점적인 지위를 누리던 택배회사였던 셈이다. 70년대에 경부고속도로가 처음 만들어졌을 정도로 우리나라의 도로 사정이 열악했던 시대상황속에서 열차화물 운송업은 그야말로 돈이 되는 사업이었다.
당시 우리나라안에 굴러다니는 전체 차량 대수가 11만대가 채 안되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대한통운 지점은 거의 모든 역마다 자리를 잡았는데 그곳에서 잡부로 취직해서 화물을 싣고 내리던 사람들을 내가 살던 시골에서는 '마루보시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는 식으로 불렀다.
도대체 마루보시라는 것이 무엇인지 너무 궁금했다. 얼핏 짐작해도 물자운송과 관계가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짐작이 맞았다. 인터넷으로 자료 검색을 해보았더니 대략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었다.
마루보시(丸星) : 일제강점기 각 철도정거장에서 물자운송 및 하역작업을 전문으로 하였던 운송회사, (주)조선운송으로 불리다가 광복이후 국영회사가 되었고 나중에 대한통운이 합병함.
내가 중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대한통운에서 일을 하셨던 이웃동네 어른이 한분 계셨다. 덩치가 아주 크고 힘이 장사여서 동네사람들이 '곰'이라는 별명으로 불렀는데 그 양반은 퇴근 시간이 거의 일정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우리집 옆으로 뻗어나간 기찻길을 따라 철길 침목을 밟으며 걸어가시던 모습이 생각난다.
대한통운 사무실은 사업의 특성상 기차역 부근에 자리를 잡는 경우가 많았다. 내가 살았던 동네에서도 사무실은 기차역 부근에 있었는데 일하는 사람이 제법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참으로 오랫만에 사무실이 있었던 곳을 찾아가보았다. 화물을 올리고 내리던 공간에 자라잡았던 창고건물은 이제 다 사라지고 말았다.
나는 컴퓨터를 뒤져 2005년에 찍은 사진 중에서 대한통운의 흔적이 담긴 창고건물 사진을 간신히 찾아내었다. 디지털 카메라를 처음 구입했던 해가 7년전인 2005년이었는데 그때 찍은 사진을 없애지 않고 잘 갈무리해두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연한 노란색 나무 벽을 가진 건물도 이제는 사라져버렸다. 한때는 눈에 익숙했던 풍경이었지만 모두들 하나씩 사라지고 있다는 것은 정말 슬픈 일이다. 한때는 사람들이 바글거렸던 시골 기차역에 무궁화호 열차조차도 서지 않는 곳이 되었으니 화물 탁송을 할 사람도 받을 사람도 다 없어졌다.
창고건물이 있었던 자리는 그야말로 말갛게 정리되어 있었다. 정겨웠던 흔적이 하나씩 사라지는 모습을 보자 괜한 안타까움이 마음 한쪽을 가득 채웠다.
이제 이 건물도 언제 철거될지 모르겠다. 그저 하나씩 둘씩 없어지고 사라져간다. 주위 사람들도 한분 두분씩 먼길을 떠나서는 돌아올 줄을 모르고 있으니 조금씩 삶의 허무함을 느낀다.
마루보시! 이 이름조차도 이제는 점점 잊혀져서 나중에는 낯선 낱말로만 존재할 것이다. 아니, 그런 말이 있었다는 것조차 모르게 되는 날이 곧 다가오리라.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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