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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교육, 초등교육/교육단상(敎育短想)

할머니들, 정말 대단하십니다

by 깜쌤 2021. 1. 6.

요즘 젊은이들도 야학(學)이라는 말을 알고 있는지 궁금해집니다. 한국민족 대백과 사전에서는 야학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습니다. 

 

야학 - 근로 청소년이나 정규교육을 받지 못한 성인을 대상으로 야간에 수업을 하는 비정규적 교육기관. 사설강습소·사설 학술 강습회

 

 

 

 

제가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만 해도 졸업생의 반 정도는 중학교 진학을 못했습니다. 저는 산골짜기에 있는 시골 초등학교 - 당시에는 국민학교라고 불렀습니다 - 를 졸업했는데 산골이었음에도 불구하고 2개 학급에다가 졸업생들만 120여 명이 넘었습니다. 전교생이 8백여명에 육박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졸업생 120여명 가운데 반 정도는 중학교 진학을 못한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중에서도 3분의 2는 여학생이었습니다. 멀리 살펴볼 것도 없이 우리 집에서도 바로 위의 누님은 저 때문에 중학교 진학을 못했었습니다. 그 사실을 생각하면 두고두고 미안하고 죄송해서 아직도 그 일을 생각하면 눈물이 쏟아집니다. 

 

한글을 떼지 못하였거나 더 배우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위해 시골에서는 선각자 분들이 야학을 열기도 했었는데 제가 살았던 동네에서도 산을 넘어 다니며 밤에 글공부를 하시던 분을 보았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도시에서는 야간학교를 열어 못배운 한을 풀어드리기 위해 뜻이 있는 분들이 많은 애를 쓰셨습니다. 특히 기업체에서 운영하는 야간학교에 진학했던 우리 누이들의 - 낮에는 공장에서 일을 하고 밤에는 야간학교를 다녔습니다 - 고생은 정말 말로 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교직생활을 하며 한글을 떼지 못하고 졸업시킨 아이가 두 명 있었습니다. 이름까지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만 그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너무 미안하고 부끄러워서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습니다. 그중에 한 명은 세월이 흐른 뒤 결혼하기 전에 만나보았습니다만 직장에 다니면서 야간학교에 진학해서 한글을 떼었더군요. 

 

 

 

 

집안 환경이 아주 불우했던 남학생 한 명은 졸업시켜 보낸 뒤 아직까지 한 번도 만나지 못했습니다만 두고두고 미안하기만 합니다. 다른 건 몰라도 한글만은 능숙하게 읽고 쓸 수 있도록해서 졸업시켰어야 하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그걸 못했으니 부끄러움만 가득합니다. 

 

 

 

 

칠순 팔순이 넘은 할머니들이 늦게 야학에서 한글을 배워 만들어낸 문집을 살펴볼 기회가 생겼습니다. 읽어볼수록 마음이 짠하고 송구스러워서 사진만 대충 찍어 온 뒤  집에 와서야 세밀하게 볼 수 있었습니다.  

 

 

 

 

못 배운 한과 서러움이 얼마나 컸을까를 생각하니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늦게 배웠음에도 글씨체가 얼마나 단정한지 모르겠습니다. 글씨를 보면 성품을 대강 짐작할 수 있다는 게 아이들을 가르쳐보며 느낀 사실이었는데, 이 할머니들의 사연과 필체를 보고 깊은 감동을 받지 않았다면 그건 거짓말일 것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사람을 평가할 때 신언서판(身言書判) 이 네 가지를 기본으로 보았던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닐 것입니다. 한국 고전용어사전에서는 신언서판을 다음과 같이 풀이하고 있습니다. 

 

 

신언서판 [身言書判] 한국고전용어사전

인물을 선택하는 데 표준으로 삼는 네 가지 조건. 곧 신수•말씨•글씨•판단력. ≪당서(唐書)≫ 선거지(選擧志)에 의하면, 신(身)은 풍채가 늠름하게 생겨야 하고, 언(言)은 말을 정직하게 해야 하며, 서(書)는 글씨를 잘 써야 하고, 판(判)은 문리가 익숙해야 한다고 했음.

 

 

 

 

남편을 먼저 보낸 할머니의 사연을 읽어보고는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뭐 이런 것을 가지고 그렇게 감동받느냐고 할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도 없는 집에서 맏이로 태어나 장남 노릇을 하느라 죽을 고생을 다해본 사람이기에 충분히 이해를 할 수 있는 부분들이죠. 

 

 

 

 

할머니들! 부디 행복하시고요 편안한 노후 생활을 보내시길 빕니다. 한글을 떼지 못하고 졸업시켜 보낸 누구누구 두 사람에게 이제는 늙어버린 선생이 진심으로 고개 숙여 미안하다는 말씀을 전합니다. 두 사람도 아무쪼록 행복한 삶을 살아가길 빌어봅니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