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명작 영화만을 골라 녹화한 비디오 테잎을 약 350여개 이상 가지고 있었습니다.
비디오 테잎을 보관할 수 있는 멋진 가구를 제자가 직접 만들어서 서재 벽에 고정시켜주었기에 그 속에 보기 좋도록 가지런히 정리해두었습니다.
그동안 벽에 부착한 비디오 보관장 속에 테잎을 이십몇년 이상 곱게 보관해 오고 있었던 것이죠.
영화만을 녹화해두었던 것이 아니었는데요, 교육적으로 효과가 있다고 생각되는 자료화면들도 수없이 녹화해서 모아두었기에 한동안 정말 유용하게 잘 사용했었습니다.
하지만 컴퓨터 관련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녹화해둔 자료들은 점차 효용성을 잃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좋아했던 귀한 명작 영화들도 이젠 어지간하면 유투브에 상당수 올라와 있으므로 파일로 보관하는게 훨씬 효과적임을 누구나 다 인정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처분해야할 시점이 된 것이죠. 공테이프를 사기 위해 그동안 얼마나 많은 돈을 투자했던가요? 잠을 설쳐가며, 심지어는 밤을 세워가며 녹화를 하기도 했으니 그 귀한 시간은 또 얼마나 많이 허비한 셈이 되었던 것인가요?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재활용을 하기 쉽도록 분해하는 방법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드라이버를 가지고 시범적으로 한 개 분해해보니 그것도 예사 일이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테이프 수량이 너무 많았기에 일일이 분해할 형편이 안되었던 것이죠. 하는 수 없이 시청에 전화해보고 동사무소에는 직접 찾아가서 처분하는 방법을 알아왔습니다.
비상용으로 챙겨두었던 마대자루를 꺼내어 거기에 담았습니다. 그리고 폐기물 스티커 한장당 2천원을 주고 모두 9장을 사왔습니다.
철저하게 포장해서 약속한 날 하루전 밤에 내놓았습니다. 새벽에 와서 차에 실어 가더군요.
다 처분하고나자 홀가분함 보다는 허전함이 밀려왔습니다. 내가 죽고난 뒤 자식들에게 부담을 주고싶지 않았기에 이제는 하나씩 정리하는 중입니다. 한 이년 전에는 여행 잡지와 시사 잡지를 엄청나게 폐기 처분했습니다. 아직도 버려야할 것이 수두룩합니다.
어리
버리